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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집단소송법의 허점
입력2003-08-11 00:00:00
수정
2003.08.11 00:00:00
지난 몇년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던 증권집단소송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함으로써 사실상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단 한번의 송사로 자본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게 됐다.
천연자원이 전혀 없어 기업의 고용창출만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번 증권집단소송법 제정은 그 어느 법 제정보다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장지배방식의 기업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영미법계 국가들은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수단의 하나로 증권집단소송제도를 이용해왔으나 이 제도가 그 어느 제도보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이유는 손해배상액이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승소 여부를 떠나 해당기업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경영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미 오래전부터 증권집단소송제도를 운영해온 국가들의 경우 이러한 점을 우려해 여러 가지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왔다.
가장 핵심은 남소방지장치다. 즉 악의적 소송을 예방하는 장치다. 이는 증권집단소송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법을 제정한 모든 국가들이 예외 없이 채택하는 법 제도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회사 관련법 첫머리에 남소방지장치로서 당사자자격제한 규정과 담보제공 규정을 두고 있다.
당사자자격제한은 이해관계가 없는 자가 소송을 제기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 담보제공은 원고가 소송을 통해 잃을 게 전혀 없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이 같은 원칙들은 증권집단소송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든 국가들이 당사자자격제한과 담보제공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번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우리나라의 증권집단소송법안에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남소방지장치를 두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미 일반화된 남소방지장치 중 담보제공원칙이 법안에서는 배제됐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증권집단소송의 경우 다른 소송과는 달리 법원의 허가가 전제돼야 하므로 담보제공장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법의 목적을 완전히 무시한 법질서 파괴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법을 제정하는 가장 큰 목적은 재판관의 자의적 판단을 최소화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한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을 소송에 있어 법제도적으로 일반화된 원칙을 배제하고 이를 재판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중세시대의 법제도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증권집단소송법 제정의 가장 큰 목적은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해 `국가경제의 신인도를 높이고 자본시장을 발전시킨다`는 공익을 확보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익확보의 목적은 법치주의 아래에서만 실현이 가능하다. 법치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 집행은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발생하는 권한남용을 합법화하는 우를 범할 여지가 너무나 크다.
최근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의 모델이 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주가하락과 관련, 집단소송을 당한 기업들의 주식시가총액이 1조9000억달러(2,100조원)나 감소했다고 한다. 이미 지난 1934년부터 증권거래법을 통해 소송비용공탁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 이러하다는 점은 자본시장의 규모가 미국의 1%도 안되는 우리의 경제현실을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증권집단소송법의 제정은 경영 투명성 제고라는 공익 차원에서 볼 때 그 정당성이 부여돼 있다. 그러나 법이 한번 제정되면 그로 인해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법을 제정할 때는 반드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논의를 함에 있어서는 법치주의하에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최우선적 과제를 둬야 한다. 만약 이를 간과한다면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전삼현(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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