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통장으로 사용하는 입출금통장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어 A은행 고객센터로 전화한 이윤희(28·가명)씨는 상담을 다 받고도 쉽사리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상담원이 "고객님 저희 은행의 OO통장이라는 상품이 있는데요, ATM 입출금 수수료와 온라인뱅킹 수수료 면제 혜택이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고객센터나 지점에서 상담 가능하십니다"라며 부탁도 안 한 상품 안내를 했기 때문이다.
카드 한도 문제로 카드사 고객센터에 전화한 김영준(30·가명)씨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개인 신용카드 관련 상담은 8번을 누르세요"라는 안내에 따라 8번을 눌렀더니 "OO카드 카드론은 저금리에 빠르고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며 녹음된 카드론 광고 멘트가 흘러나온 것이다.
최명희(40·가명)씨는 금융사가 아닌 대형마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마트 할인 행사를 소개해 주더니 머지않아 화제가 바뀌었다. "고객님께 좋은 보험 상품 소식 있으면 알려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죠?"라는 것이었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라는 단어는 쏙 뺀 채 "좋은 소식을 알려드린다"는 말로 '낚시질'을 한 것이다.
12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 초 터진 카드사 정보유출 사고로 금융당국이 전화마케팅(TM) 영업 제한에 나서면서 영업망이 막힌 금융사들이 고육지책으로 변칙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초기에 일부 금융사에서 시작된 것들이 최근에는 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회사로 확대되고 있다.
가장 흔하게 이용되고 있는 방식은 콜센터로 걸려온 고객에게 고객이 요청하지 않은 상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일부 보험사들은 개인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소식을 보내드린다" 같은 말로 어물쩍 개인정보 동의를 얻어내는 사례도 발생한다.
금융사들이 콜센터로 걸려온 고객의 전화에서까지 홍보를 하는 이유는 금융사 마케팅의 중요한 수단이었던 TM 영업이 지난 4월1일부터 시행된 금융당국의 비대면영업 가이드라인에 따라 제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전화 영업을 할 수 없고 영업목적의 대고객 전화는 1일1회만, 고객이 사전 동의한 경우에만 메시지·e메일 마케팅 허용된다.
실제로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 직후 TM 영업이 완전히 중지된 지 약 한 달 만인 3월 캐피털사와 저축은행 등 21개 금융사의 개인대출 실적 총액이 2,769억원으로 전월 대비 45.6% 감소하고 생명보험업계의 TM 실적도 전월 대비 48.4% 줄어든 49억4,400만원에 그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변칙이라는 걸 알면서도 떨어지는 실적을 올리기 위한 금융사들의 안간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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