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벤처 거품이 사그러들고 창업이라는 말조차 금기시되던 때였다. 정보기술(IT) 벤처의 사정은 더했다. 신호처리·정보보호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혁(44·사진) 인포마크 대표가 창업을 결심했을 때 모두가 우려의 시선을 보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학원 시절 졸업 후 입사를 전제로 지원받은 삼성 장학금마저 물어내며 창업을 강행했다.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는데는 꼬박 8년이 걸렸다. 세계 최초로 와이맥스 모바일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중계해주는 장치) '에그'를 개발하는데 성공하면서부터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웨어러블 단말기 시장의 급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앞선 무선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개발에 착수해 지난해 7월 최초의 키즈 전용 웨어러블폰 '준'을 내놨다. 이제 인포마크는 웨어러블 단말기 선두업체로 올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코스닥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8일 경기도 성남 인포마크 본사에서 만난 최 대표는 "지난해 첫 모델 출시에 이어 4월초 '준' 새 버전을 내놓으면서 키즈폰 누적 판매량이 20만대를 넘어섰다"며 "올해는 웨어러블 비중이 50%까지 올라가면서 지난해 706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 1,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포마크는 최근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다. 공모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웨어러블 단말기 라인업 확대에 활용할 계획이다. 상장에 맞춰 성인용 웨어러블 단말기도 개발중이다.
현재 키즈폰 '준'은 SK텔레콤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손목 시계 스타일에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화면을 터치하면 최대 30명까지 통화가 가능하고 부모가 설정해 놓은 안심존을 벗어나면 자동 경보음이 울린다. 전용 메신저를 통해 문자 발신이 가능하고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이모티콘이나 음성 녹음을 보낼 수 있다.
웨어러블 시장에서 인포마크의 강점은 콤팩트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과 최고의 성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회사라는 점이다. 회사 내에서 최 대표는 기술 파트는 물론 디자인까지 직접 챙기고 있다. 최 대표는 "통신칩에 배터리까지 넣은 제품이 손목시계 크기에 불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능 못지 않게 디자인이 제품 성공 여부를 가른다는 신념이 있었다"며 "보통의 IT기업에서는 디자인 파트가 기술 파트에 밀리지만 인포마크는 대표가 둘 다 챙기기 때문에 대충 타협한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라우터 수출로 확보한 전 세계 30개국의 통신 사업자 네트워크 역시 큰 자산이다. 최 대표는 "라우터를 공급했던 전세계 통신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와 스페인 등에 키즈폰 수출을 추진중"이라며 "올 하반기에는 일부 국가에서 서비스 론칭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대표가 그리는 인포마크의 청사진은 핏빗(Fitbit)이나 페블(Pebble)처럼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웨어러블 단말기를 꾸준히 선보이며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이른바 '롱테일 비즈니스 기업'이다. 최 대표는 "키즈폰처럼 타깃이 분명한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웨어러블 단말기 대표 주자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