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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 것은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요구를 정부가 처리해야 한다'는 개정안 문구가 강제성을 띠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존 국회법 98조2항은 '시행령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는 소관 부처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여야는 이를 '국회는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부처의 장은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로 바꿨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 문구가 '권고조항'이 아니라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강제조항'으로 해석될 소지가 클 경우 개정안에 대해 반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략적 계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청와대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장 변화와 국민 여론의 지지를 기대하며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거부권 카드'를 꺼내 드는 강공책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靑 "黨은 강제조항 거부해야"=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소지가 큰 만큼 이미 찬성표를 던진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회선진화법으로 국정 운영에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발목을 아예 절단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가 '강제조항'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새누리당 의원들도 입장을 재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국회법 개정안이 제2의 국회선진화법으로 전락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현실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조항을 부각시켜 위헌소지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일 "개정된 국회법을 통과시킨 여당과 야당이 해당 조항에 '강제성이 있다, 없다'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어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강제성 유무에 대한 여야 입장이 통일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성이 없는 것으로 국회가 합의하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지만 강제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위헌소지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에 대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강제성이 없다"면서 "(야당 지도부를) 만날 때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강제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개정안, 국정운영 발목 잡아 동력 상실"=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정면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나선 것은 개정안이 국정운영 발목을 잡는 족쇄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계의 한 의원은 "공무원연금에 이어 앞으로 노동시장 개편, 4대 부문 구조개혁, 공공기관 혁신, 일자리 창출 등 핵심 국정과제들이 대거 기다리고 있다"며 "개정안이 그대로 발효된다면 야당이 개정안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해 국정운영에 딴지를 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국민들에게 약속한 국정과제와 혁신작업에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휘둘릴 경우 국정동력을 상실하면서 레임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그리고 우리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깊은 우려를 나타낸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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