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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3-4.`기업하기 좋은나라`가 국가경쟁력의 요체

“두산중공업 던져. 던져.” 지난 1월 9일 오전. 여의도 A증권사. 한 딜러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배달호 두산중공업 노조원의 분신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산중공업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두산중공업 주가는 이틀만에 주당 6,190원에서 5,790원으로 폭락했다. 두산중공업 IR담당 직원은 “지난해 노조의 47일간 파업으로 회사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실을 기억하는 투자자들이 노사문제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주가가 5,000원 안팎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노사문제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으면 주가가 오르기 힘든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두산중공업은 최근 작년 순이익 규모가 770여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지만, 주가는 노사관계 악화라는 악재에 발목을 잡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자=노사관계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유독 기업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업에서 산업으로, 다시 국가경제로 확대재생산된다. 두산중공업의 노사관계 악화는 결국 한국의 대외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실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 것도 낙후된 노사문화 때문으로 지적된다. 이를 일컫는 말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외부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가늠자인 대외신인도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한반도 정세와 함께 노사문제”라며 “특히 차기 정부가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도약을 달성하거나 외자유치에 나설 때 외부에서 보는 한국의 노사관계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면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 부문도 노사관계다. 전경련이 국내 주요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최고 국가인 미국의 54% 수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사관계의 성숙도`는 기업부문에서 가장 낮은 31% 수준으로 평가돼 기업경쟁력 강화를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노사관계의 국제경쟁력 순위`보고서는 더욱 충격적이다. 경쟁국인 싱가포르(1위), 말레이시아(7위), 일본(10위), 타이완(15위) 등은 안정된 노사관계가 국가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는 반면 한국은 최하위 수준인 47위에 머물렀다. 노사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국가경쟁력 강화, 나아가 새정부의 정책목표이기도 한 선진국 진입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성호 전경련 상무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것은 단순히 국민소득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원배분과 소득분배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며 “이는 노사관계가 대립과 갈등에서 협력과 대화로 바뀌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노사문화의 고배제, 고투쟁 등과 저신뢰, 저대화, 저협력 등을 일컫는 `3고(高) 3저(低)`문제를 해결하려는 노사 양측의 양보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미친듯이 일할 수 있도록 우리를 내버려달라.” 최근 전경련 회장직을 맡은 손길승 SK 회장이 몇 년 전 내뱉은 말이다. 이 말에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이 다시 경제를 살리는 첨병이 되겠다는 굳은 결의와 함께 기업을 경영하기 힘든 현실적 애로가 담겨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대외 경영환경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안감마저 가세해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한 대기업의 임원은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기업이 모두 짐을 싸서 중국이나 동남아로 떠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한국에 남아있을 까닭이 없다는 게 이유다. 이는 노사관계뿐 아니라 경영환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경제학ㆍ경영학의 기본원리가 뭔가. 경제활동은 인간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기업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적이다.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방향도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기업이 살아야 노조도 살고, 나라도 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민감한 노동현안은 주5일 근무제 도입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다. 특히 사회적 합의가 우선시 되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해 노사 양측이 공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정부가 적절히 중재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국민 대화합과 단결, 자율적인 참여정신 등은 앞으로 우리 노사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노사갈등이 과거의 교훈으로 기억되는 날,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 날이다. "성숙된 노사문화로 경제성장 이끌어야" 대부분의 국가들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사간 극렬한 대립과 마찰을 경험했다. 하지만 결과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노사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한 나라들이 오늘날 부국(副國)으로 성장했던 데 반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나라들은 경제파탄과 빈곤으로부터 비켜나지 못했다. 네덜란드가 화훼ㆍ원예농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정보기술산업을 겸비한 유럽의 물류관문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노사가 대화와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역시 노동자단체와 경영계가 힘을 합쳐 경제난을 극복,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노조가 파업 대신 협상테이블을 고집한 결과다. 아르헨티나는 강대국에서 80년 이후 4차례의 경제위기를 반복하는 중남미 최빈국으로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정책의 오류와 정치적 문제가 복합적인 이유로 꼽히지만, 경제의 중요한 주체인 노사가 대립구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세력화 된 것도 반복되는 경제난의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겪으면서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남홍 경총 상근부회장은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외국인이 외면하는 변방국가로 남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며 “우리의 경제형편, 문화, 의식수준에 맞는 노사관계를 정착해 한국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고] 박래영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21세기 노사관계발전위원회 위원장) 노사관계 바꾸자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산업화과정에 진입한 이후 40년, 87년 여름의 노동자 대저항 이후 15년,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지 5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안정적인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채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노사간의 갈등은 여러 부문에서 심하게 표출되고 있으나 정부의 소극적 대응으로 인해 노사관계의 의식, 관행, 행태 및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노사관계를 4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잡았으나 초기의 노사정 합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구조조정과 공공부문개혁에 대한 노동조합의 저항이 표출된데다가 노동시간단축문제로 노사관계가 지난 5년간 오히려 불안해졌고 노사분규도 이 기간에 다시 증가했다. 그 결과 국제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 등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경쟁력을 세계 최하위로 평가하고 있다. 평가방법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노사관계가 대립ㆍ대결의 투쟁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고 보아야 한다. 새정부의 출범이 임박했다. 국내외의 현안들이 얽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아직 봄기운이 돌기 전인데도 벌써 노사관계의 기류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연초부터 끌어오던 현안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양 노총은 곧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한다. 곧이어 기업들은 임금 및 단협교섭을 맞게 될 것이다. 금년에도 한국은 노사의 격돌장인 것처럼 비춰질 여지가 없지 않다. 노사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외국인 투자유치로 연 7% 경제성장을 이끌어 내겠다는 공약도 공약(空約)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 노사관계, 이대로는 안된다. 바뀌어야 한다. 세계는 국경없는 무제한 경쟁 속에서 산업사회로부터 지식기반사회로 바뀌고 있다. 경쟁국들은 참여ㆍ협력의 새로운 노사관계로 바뀌고 있다. 오직 우리나라만 대립ㆍ대결의 노사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사의 의식과 행동, 노사관계의 법과 제도 등 바뀌어야 할 것은 너무 많다. 그러나 한꺼번에 모두를 바꾸기는 어렵다. 우선 새정부는 담판과 결단을 통하여 다음 세가지 문제를 시급히 풀어야 한다. 첫째, 노사의 신뢰회복과 국제적인 경쟁력 평가개선을 위해 노사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양노총과 사용자단체 사이에 `21세기 노사행동협약`을 맺도록 하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사용자단체는 사용자들의 불법경영과 교묘한 부당노동행위 등을 막도록 하며 양노총은 스스로 총파업을 자제하고 단위노조의 불법파업과 요란한 파업ㆍ시위행동을 막도록 하는 신사협정을 맺고 이를 산업현장에 확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 공무원노조 등 노동기본권의 보완을 서둘러 매듭지어 노동기본권이 국제수준에 미달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비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조속히 복귀하도록 해 노사관계의 제반문제를 공식적인 대화와 협의의 장에서 풀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노사관계의 기반구축은 정권교체 초기가 아니면 해내기 힘든 일이다. 새정부의 대통령과 주축을 이룰 386세대의 개혁인물들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이러한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6월에 있었던 국민적 화합의 감동과 선거과정에서 보인 국민적 변화의 요구를 살려서 진정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안정적 경제성장을 이룩해 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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