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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38)씨 부부는 얼마 전 딸 아이 생일에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정씨는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 위해 실내 조명을 끈 후 사진을 찍었다. 유일한 조명이라면 케이크 위에서 은은히 타오르는 촛불뿐이었다. 포토프린터로 사진을 뽑아보니 활짝 웃는 아이 얼굴의 보조개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정용 디지털카메라로 이런 사진을 찍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둡거나 빛이 약하면 희미하거나 얼굴만 하얗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정용 디카의 감도가 낮기 때문에 조명이 약하면 사진 찍을 때의 셔터 스피드도 늦어진다. 이렇게 되면 카메라가 흔들려 좋은 사진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디카 업체들이 어두운 곳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고감도 카메라를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디카 시장에서는 ‘화소가 높은 게 최고’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업체들도 고화소 경쟁에만 매달렸다. 최근에는 초기 구매가 어느 정도 끝난 뒤 교체수요가 점차 늘어나면서 화소보다 감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디카 업계는 ‘고감도’를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화소는 사실 화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A4용지 이상 크기의 사진을 뽑아보려면 300만 화소 이상의 카메라가 필요하지만 사진을 그저 미니 홈피에 올려놓거나 PC에 저장할 경우 고화소는 불필요하다. 반면 빛에 반응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감도(단위 iso, 수치가 클수록 감도가 높다)가 높은 카메라는 야간 또는 어두운 실내에서도 흔들림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따라서 화소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도가 높아지면 사진에 붉은 점들이 보이는 ‘노이즈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디카 업체들은 iso 수치를 400 정도로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이즈 제거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카 업계는 ‘어두운 곳에서 강한’ 고감도 카메라로 교체 수요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iso 400을 넘는 디카가 나오기 시작한 데 이어 올해는 1,000을 웃도는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소니의 슬림형 디카 T9은 iso 640까지 지원하며 올 1월 출시된 W30, 40, 70 등의 경우 최대 iso 1,000까지 보장한다. 후지필름도 iso 1600을 지원하는 Z2과 V10을 잇따라 출시했고 올림푸스는 촛불 모드를 선택하면 iso 2500까지 지원되는 뮤700과 최대 iso 3,200을 자랑하는 뮤810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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