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언더시즈 2’, ‘007 골든아이’, ‘007 어나더데이’.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지구 전체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막강한 화력의 전투용 군사위성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전투 위성들은 각각의 영화 속에서 압력파와 레이저, 태양열 등으로 도시 전체를 일거에 파괴시켜 버릴 수 있는 엄청난 파워를 갖춘 무기로 등장한다. 이들 영화를 보며 ‘소름끼치는 시나리오지만 SF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가상의 산물’이라고 웃었을지 모른다. 물론 사실이다. 지금 현재 이 같은 전투 위성들은 1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안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앞으로 20여년 후에는 첨단무기를 장착한 전투 위성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 위를 지나다닐 지도 모르니 말이다. 실제 세계 각국은 지금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공간을 군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데 매년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 공중전(air battle)과 전자전(electric warfare)을 넘어 우주전(space combat)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전을 공중전이라고 부를 만큼 제공권의 장악 여부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전투기들보다도 높은 대기권 밖 우주공간에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 어떤 전쟁일지라도 승리는 불문가지다. 더욱이 우주는 아직까지 영공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고 있어 군사 전략가들에게는 적국의 머리에 항상 총구를 겨누고 있을 수 있는 더없이 매력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우주를 장악하는 자가 종국에는 지구 전체의 패권을 거머쥐게 될 것이라는 군사 전문가들의 주장도 이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 더 높이, 더 빠르게 현재 전투형 군사위성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가는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자 세계 최고의 우주항공기술 보유국인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방위구상(SDI, 일명 스타워즈 계획) 발표를 계기로 군사적 용도의 우주공간활용 기술 확보에 전(全)방위적인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0년간 무려 300억 달러(약 30조원)가 투입된 SDI의 당초 목적은 미국 영토를 목표로 발사된 적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BM)이나 핵탄두를 조기에 파괴하는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공위성에 초강력 레이저를 탑재, IBM을 요격하는 기술이 중심 연구과제가 됐다. 이는 결국 구(舊) 소련을 비롯한 전 세계 열강들의 우주전 참여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이후로도 미국은 관련기술을 발전시켜 지난 2000년 뉴멕시코 주 소재 화이트 샌즈 미사일 기지에서 레이저 빔으로 탄도 로켓을 공중 폭파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2001년에는 세계 최초로 우주전쟁에 대비한 워 게임(war game)을 실시하는 등 우주공간 선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말 수명을 다한 자국의 인공위성을 탄도미사일로 격추하는 실험을 실시한 것이나 일본, 인도 등이 군사위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뒤쳐질 수 없다는 긴박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법. 우주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넘어야할 산이 아직 많다. 미국을 위시한 각국은 현재 우주전의 예비 단계로 ‘준(準) 궤도전(semi-orbital combat)’을 구상중이다. 준 궤도란 인공위성이 활동 중인 궤도권에 조금 못 미치는 지상 100km 정도의 높이로서 군사강국들이 우주전에 앞서 이 준 궤도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학자들은 한 나라의 영공을 지표면으로부터 대기권까지로 구분하고 있지만 국제 관례상 지상 80~100km 이상은 영공의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준 궤도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즉 자국의 영공에서 준 궤도에 진입, 초음속으로 적국의 영공으로 날아간 뒤 적진 바로 위에서 재진입하는 전투기를 개발해낸다면 타국(우방이든 아니든)의 영공 침해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나 최단거리 루트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지난 2004년 영국 버진 캘럭틱사의 민간 우주여행선 스페이스쉽 원(Spaceship One)이 지상 111km에서의 비행에 성공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공격형 위성과 달리 준 궤도 비행체는 이미 관련기술이 안정화·검증화 단계에 도달해 있다. 이와 관련, 대표적인 군용 준 궤도 비행기 개발 계획은 미 해군우주사령부의 ‘서스테인(Sustain) 프로젝트’와 미 공군의 ‘오로라(Aurora)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먼저 서스테인은 준 궤도를 통해 해군 특수부대를 수송하는 일종의 우주 수송기다. 13명의 대원을 태울 수 있는 착륙기 ‘핫 이글(Hot Eagle)’과 이를 대기권 밖으로 싣고 갈 모선(mother ship)을 결합한 형태로 고안되고 있는데, 오는 2025년 프로토타입 모델의 시험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잭 와싱크 대령은 “핫 이글에는 최대 마하 10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첨단 ‘스크램 젯(scram jet)’ 엔진을 장착할 계획”이라며 “동남아시아 지역은 단 몇 분이면 파병이 가능하고 가장 멀리 떨어진 국가라 해도 2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스테인이 단순한 군용 수송기라면 오로라는 공격 기능까지 갖춘 전투기다. 극비 프로젝트로 분류돼 존재 자체가 베일에 싸여있기는 하지만 램젯(ramjet) 엔진을 채용한 마하 5 이상의 정찰기 겸 공격기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 공군이 총 1억 달러(약 1,000억원)를 투자해 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과 함께 개발 중인 차세대 극초음속 비행기 ‘팔콘(Falcon)’은 이미 연구개발을 완료, 상용화에 가장 근접해 있는 모델로 꼽힌다. 팔콘은 내년 중 시험비행을 목표로 캘리포니아 주 팜데일 공군기지에서 2대가 제작되고 있는 상태다. 이 비행기는 대기권 상층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최대 속도가 마하 8에 달한다. 이외에도 최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터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무인항공기(UAV) 또한 전투형 무인항공기(UCAV)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무기를 장착한 채 궤도 진입과 극초음속 비행에 도전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X-43, 보잉의 X-45, 노드롭그루먼의 X-47 페가수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무주공산, 우주를 선점하라 준 궤도 전투기 개발의 궁극적 지향점은 전투용 군사위성과 같이 미래 우주전쟁에 대비한 초강력 우주무기의 확보다. 준 궤도 전투기는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기술 확보 및 기술고도화 차원의 도전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술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이 준 궤도 비행기가 상용 배치되기 시작한 후 늦어도 5~10년 뒤에는 인공위성을 활용한 우주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르면 2030년경 우주무기의 개발을 알리는 뉴스를 TV에서 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초기의 우주무기는 인공위성 형태를 띠게 될 공산이 크다. 항상 지구 궤도를 돌고 있어 지상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수 초, 혹은 수 분 안에 목표물 타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격 가능 지역도 지상, 공중, 우주 등 제한이 없으며 평상시에는 감시위성이나 통신위성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다. 미 공군이 작성한 ‘미래무기제안(Future Weapons Proposals)’과 ‘전투계획의 전환(Transformation Fight Plan)’라는 문서에 의하면 이 전투 위성들의 1세대는 크게 3가지 무기를 사용하게 될 전망이다. 바로 고성능 레이저, 고출력 극초단파(HPM), 그리고 태양열이다. 이중 가장 많은 국가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단연 레이저. 이미 미국, 러시아는 지상에서 수 메가와트(㎿)급의 레이저를 쏘아 미사일과 인공위성을 격추할 수 있는 정밀 제어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지금은 전투기나 군함에 이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노드롭그루먼이 미 해군으로부터 1억8,000만 달러(약 1,800억원)를 지원받아 개발 중인 차세대 구축함 장착용 자유전자레이저(FEL) 무기가 이 같은 예가 될 것이다. 이 레이저 무기를 인공위성에 탑재했을 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메리트는 출력에 따라 2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고출력 전투 모드에서는 공격무기로서, 저출력 감시 모드에서는 조명영상(illumination imaging) 장치로 활용 가능하다. 일명 전자폭탄(E-bomb)으로 불리는 HPM시스템 또한 레이저와 함께 위성 탑재용으로 주목받고 있는 무기다. 레이더나 TV에 사용되는 파장 1m 이하의 전자파를 특정지역에 순간적으로 다량 방출시켜 해당지역의 모든 전자 장비를 파괴하는데,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지상(해상)과 공중의 적 장비를 일거에 마비시킬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전자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지상기지는 물론 전투기, 군함, 항공모함 등 모든 군사장비에 첨단 전자장비들이 도입되고 있는 추세여서 HPM 우주무기 확보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태양광 무기의 경우 인공위성에 거울 등 반사판을 부착시켜 특정 목표물에 태양빛을 집중시켜 파괴하는 것. 007 어나더데이에 나오는 군사위성 ‘이카루스’와 개념적으로 정확히 일치한다. 레이저나 전자폭탄 무기와 비교할 때 아직은 구상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지만 무한한 태양광을 차세대 에너지로 사용하려는 민간차원의 연구들에 힘입어 미래 우주무기로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더해 한때 펜타곤은 지하 깊숙이 숨어 있는 적의 기지를 파괴하기 위해 우주에서 길이 6m, 직경 30cm의 텅스턴 화살을 발사하는 ‘다트 위성(dart satellite)’의 개발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 위성은 지상의 목표물에 운석과 동일한 초당 10km의 속도로 화살을 발사, 벙커버스터(GBU-28)로도 파괴하지 못하는 지하 30m 이하의 기지까지 일거에 초토화시킬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여러 기술적 문제들 때문에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디에선가 비밀스런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 같은 전투 위성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전투위성 방어무기에 대한 연구도 별도로 진행되고 있음은 당연하다. 제2의 냉전시대 오나 이처럼 우주무기의 개발은 철없는 아이들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의 현실이다. 하지만 우주항공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국가들, 즉 강대국들의 우주 영토 확장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국가들 입장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달가울 리 없다. 국가안보, 전쟁 억지력, 세계평화 등 이유야 거창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남의 머리에 항상 총구를 겨누고 있겠다는 불순한(?) 발상이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자칫 특정 국가가 우주를 장악하게 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국제안보 전문기업 글로벌 시큐리티의 군사분석가 존 파이크는 “신속성, 정확성, 파괴력 등의 측면에서 우주무기는 핵폭탄을 능가하는 강력함을 지닌다”며 “이 점에서 미국 등 군사강대국들은 우주를 장악하는 국가가 인류의 운명을 한손에 거머쥘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하나의 국가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까. 전문가들은 그런 최악의 상황은 전개되지 않겠지만 우주무기 군비경쟁의 가속화로 ‘제2의 냉전시대’가 도래할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미국과 구(舊) 소련이 수천발의 핵폭탄으로 무장한 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보호자로 군림했듯 가장 이른 시점에, 가장 많은 우주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다시한번 각 나라들이 줄서기를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레이건 행정부에서 방위분야 비서관을 역임한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FR)의 레리 코브는 “과거와 달리 줄서기의 기준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자국의 지리적·경제적 이해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륙별 경제 카르텔 결성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미주, 유럽, 아시아 등 각 대륙별로 지도자 국가가 탄생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이 경우 세계 정세는 급변할 수 있으며, 현재 서방 7개국 정상회담(G7)과 같은 새로운 지도자 그룹이 출범할 수도 있다. 올해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과연 앞으로 50년이 더 흐른 뒤 우리의 위성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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