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수분많아 수압 잘견뎌… 자체 발광으로 먹이 유인도
| 심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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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해 해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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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유인잠수정을 통해 바라본 수심 5,000m 깊이의 태평양 심해저 평원. 고요속에 묻혀 있는 별천지였다.
눈이 없는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치고, 코끼리 귀처럼 생긴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펄럭이며 문어가 춤을 춘다. 바닥에는 어른 신발 두 짝을 이어놓은 것 만큼이나 길쭉한 보랏빛 해삼이 몸보다 더 긴 꼬리를 곧추 세우고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다.
눈을 돌려보니 쟁반만한 하얀 불가사리가 진흙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고, 튤립 꽃을 닮은 해면이 마치 식물처럼 긴 가지 끝에 달려 바닥 위로 솟아올라 있었다.
심해는 대략 대륙붕이 끝나는 지점, 수심 200m보다 깊은 곳을 가리킨다. 바다 깊이 들어갈수록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변화는 빛이 없어진다는 점. 심해는 빛이 없는 암흑의 세계다. 때문에 식물이 살기도 어렵다.
수온도 낮다. 반면 수온이 낮은 물은 밀도 커 무겁기 때문에 아래로 가라 앉는다. 따라서 수천미터 바다 속의 수온은 고작 1~2℃밖에 되지 않는다. 냉장고 속보다 더 추운 셈이다. 수압도 높아진다. 수심 1,000m에서 수압은 수면보다 100배가 높다. 수심 1만m의 수압은 수면보다 1,000 배나 높아진다.
이번에 탐사를 한 태평양 심해저 평원의 수심은 5,000m. 수압은 약 500 기압으로 1㎠ 면적을 500㎏으로 내리누르는 것과 같다. 우리 손톱 위에 소형 승용차 한대를 올려 놓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사람이 맨 몸으로 심해에 가면 말린 오징어처럼 납작해진다.
빛이 없고, 수온은 낮으면 수압이 높은 심해는 생물들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 때문에 이곳 생물들은 심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체형이나 색체가 특이하게 변화했다. 어스름한 빛만이 있는 박광층에 사는 어류는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고 먹이를 찾기 위해 큰 눈을 갖고 있다. 반면 빛이 없는 무광층에 사는 어류의 눈은 오히려 퇴화됐다.
빛이 없으니 볼 필요가 없기 때문. 심해에 사는 어류인 풍선장어나 아귀는 입이 커서 큰 먹이도 삼킬 수 있고, 한번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시무시한 이빨이 입 안쪽으로 휘어져있다. 먹이가 부족하다 보니, 한번 찾은 먹이를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심해 동물들은 높은 수압에 견디기 위해 몸 구조도 바뀌어 있다. 대부분의 심해 무척추동물은 어류의 부레나 사람의 허파와 같이 압력을 받으면 수축하는 기관이 없다. 때문에 높은 수압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심해어류는 부레 대신 몸 안에 가벼운 기름을 많이 가지고 있어 부력을 조절한다.
또 심해생물은 수축이 잘 안 되는 수분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어 높은 압력에서도 잘 견딜 수 있다. 속이 빈 단단한 쇠 공을 수 천 미터 바다 속에 넣으면 찌그러져도, 음료수가 가득 찬 알루미늄 깡통이 찌그러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빛을 내는 생물도 많다. 도끼고기는 배 주위에 있는 발광세포에서 빛을 내기 때문에, 빛이 반짝이는 수면을 배경으로 하면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심해아귀는 이마에 솟은 낚싯대 모양의 돌기에서 빛을 내어, 먹이를 유인하여 잡아먹는다. 또 심해에 사는 생물들은 숫자가 많지 않아 짝을 찾기 힘들다. 때문에 수컷 심해아귀는 암컷을 만나면 배를 물고 달라붙어 평생 같이 산다.
심해에 사는 동물들의 모습이 기이하고, 습성이 특이한 것은 살아 남기 위한 환경 적응의 결과다. 심해 생물을 연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아직 심해의 대부분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앞으로 심해 잠수정을 비롯하여 다양한 심해연구 장비들이 개발되면, 신기한 심해 생물들이 더 많이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글 : 김웅서 -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자원연구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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