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삼성화재배 결승3번기제1국
○ 조훈현 9단
● 왕레이 8단
(2003년 1월13일 베이징) 8강전에서 뤄시허8단에게 거의 다 졌던 바둑을 초인적인 버티기로 역전한 조훈현은 준결승에서 왕위후이(王煜輝)7단에게도 간단히 이겼다. 무려 돌의 수효가 35개에 달하는 대마를 잡고 대승을 거둔 것이었다. 결승3번기의 상대는 왕레이(王磊)였다. 중국 랭킹1위인 왕레이는 무서운 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의 다케미야와 사토루, 한국의 최명훈, 그리고 같은 중국팀의 신예 후야오위를 꺾고 결승에 안착한 터였다. 특히 그는 3년전 LG배에서 조훈현에게 ‘1백년만의 묘수’를 얻어맞고 패한 통분한 빚을 갚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원숭이왕’이라는 별명의 왕레이는 뤄시허와는 대조적으로 명경지수와 같은 대국태도로 소문난 사람이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건너온 바 있는데 그는 하루종일 바둑을 두어도 말은커녕 기침소리 한번 내는 일이 없는, 그야말로 바위 같은 부동심의 사내로 한국의 애기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결승 제1국을 두기 위해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조훈현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한 기자가 짓궂은 질문을 했다. “나이 50에 삼성화재배를 2년연속 제패한다면 너무 심한 거 아닐까요?” “아마 질 거에요.” “우승하면 크게 한턱 낼 용의가 있나요?” “그럴 리가 없지만 우승한다면 해당화에서 한턱 크게 낼께요.” ‘해당화’는 북한대사관에서 운영하는 유명한 북한음식점의 이름인데 기왕 낼 거라면 거기서 내겠다고 공언을 한 것이었다. 드디어 제1국의 공이 울렸다. 왕레이는 기세에서 우선 앞설 생각인지 흑5로 위풍당당하게 협공하고 흑9로 발빠르게 전개하는 독특한 취향을 선보였는데…. /노승일ㆍ바둑평론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