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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 찍은 투신사
입력2003-03-13 00:00:00
수정
2003.03.13 00:00:00
“SK글로벌 채권 편입비중에 대해서는 말하기 곤란합니다. 펀드 환매규모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장불안을 초래해서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 언론에서도 협조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적발로 촉발된 대규모 환매사태에 대한 투신사들은 한결같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 창구에서는 고객들의 환매요청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데도 정작 투신사에서는 “아직 별다른 징후가 없다”는 말 뿐이다. 다만 투신사들은 이번 사태가 투신제도 자체의 불신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고객들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고 그래서 SK글로벌 채권에 대한 환매연기도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투자자들의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까. 지난 12일 환매액은 8조원에 달했고 순환매 규모도 5조원을 넘어섰다. 이중 90% 이상은 초단기 금융상품인 마켓머니펀드(MMF) 자금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투신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춘다고 감춰질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몇 달 전부터 예견됐던 것이었다. 지난 1월 MMF 수탁액이 60조원을 넘어섰을 때 시장에서는 이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다. 펀드를 대형화해야 하고 수탁액 경쟁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이어졌고 대규모 환매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는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했다. MMF는 그칠 줄 모르고 증가했고 투신사들 역시 이들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혈안이었다. 투신사와 금융감독당국은 계속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결국 이 같은 사태를 맞았다.
물론 이번 환매 사태가 일시적인 파문에 그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놔둔다면 제2, 제3의 환매사태가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말로만의 대책이 아니라 투신사 구조조정, 시장 투명성 강화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는 도끼로 제 발을 찍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
<송영규기자(증권부) sk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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