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동북아 4개국 순방이 22일 러시아 방문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라이스 장관은 이번 순방으로 ▦북한의 핵무기 불용 ▦유엔 결의 이행 ▦6자회담 필요성 등 ‘총론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각국의 나침반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ㆍ 일본과 중국ㆍ러시아가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를 놓고 ‘제재’와 ‘대화’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한국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위를 지키며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 ‘높지도 낮지도 않게’=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일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을 만난 자리에서 “유엔 결의 이행은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기준으로 삼아 적절히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결의를 이행하지만 외교적 수단도 병행한다는 ‘중립적인’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주변국의 행보를 봐가며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PSI 참여와 개성공단ㆍ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3국 외무장관 회담 직후 PSI에 대해 ‘안보리 결의에 부합되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경협은 ▦개성공단은 북한 개방 촉진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금강산 관광도 상징성이 큰 사업이기 때문에 유엔 제재위원회 세부 지침이 나오면 필요한 조정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하는 등 대북 문제에 대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의지다. ◇미ㆍ일,‘안보리 결의 충실이행’ 목청=미국과 일본은 유엔 결의에 입각해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북한의 ‘양자회담’과 ‘금융동결 해제’ 주장에 대해 검토해볼 가치도 없다고 재확인했다. 특히 라이스 장관은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오히려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주변국에 대해서는 ‘대북 제재 동참은 유엔 회원국의 의무’라며 적극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는 대북 경협이 북 핵개발 자금으로 유용되고 있다며, 중ㆍ러에 대해 “결의에 찬성을 했으면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압박의 일환이다. 양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도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라이스 장관이 귀국한 뒤 금융제재 및 PSI 확대 등 종합적인 대북 추가 제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일본도 15개 기관과 개인 1명으로 돼 있는 은행 계좌 동결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은 상태다. ◇중ㆍ러, “평화적 해결” 강조=중국과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 ‘대화 모드’로 전환한 모습이다. 특히 탕자쉬안 특사의 방북 이후 ‘대화’에 대한 강조는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웹사이트를 통해 “라이스 장관이 북한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완전한 지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라이스 장관이 출국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무조건’ 복귀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 것과는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역시 21일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는 추후 좀더 논의하고 구체화할 내용이 들어 있다”며 결의 이행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모습을 보인 것도 눈에 띈다. 이는 중ㆍ러가 북핵 사태의 주도권을 미국과 일본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미국이 과도한 제재를 가할 경우 ‘북한 체제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