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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K2등정] 박영석 그는 누구인가
입력2001-07-23 00:00:00
수정
2001.07.23 00:00:00
◇박영석 그는 누구인가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고산등반가다. 국내에서는 몇안되는 진정한 고산등반가중의 한명이다. 고상돈, 허영호, 엄홍길씨등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져있지만 이번 K2(8,611m)등반 성공을 통해 국내 최고의 클라이머로 급부상했다.
산악계에서는 남달리 정이 많지만,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못하는 정의파로 정평이 나있다. 동국대학교 산악회에서 활동하던 그가 히말라야에 발을 처음 디딘 때는 지난 89년. 박씨는 히말라야 첫 원정에서 랑시사리(6,247m)를 오른 데 이어 90년 두번째 원정에서 히말라야 7,000m급 봉우리 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랑탕리(7,205m)를 동계시즌에 세계 처음으로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지금까지 14좌를 모두 오르는 영광을 안았지만 그만큼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지난 91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해발 7,000m대의 절벽에서 1,000m나 아래로 추락했다. 또 93년에는 피붙이와도 같은 후배 두 명을 잃었다.
지난 95년 티벳쪽으로 에베레스트 북동릉에 도전했을 때는 대원들, 사다(셀파들의 우두머리) 락파, 셀파들과 함께 눈사태에 휩쓸려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 왔다.
박씨는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으며 촉망받는 젊은 사다 락파는 목숨을 잃었다. 그는 강한 근성과 고집을 가진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지난 94년 초오유에 이어 96년 북면 노멀루트로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박씨는 97년 봄 다울라기리 등반에서 다시 한 번 그의 근성을 보여주었다. 다울라기리는 95년,96년 겨울과 96년 봄 시즌 두 차례나 도전했으나, 두 번 다 강추위와 폭풍설 속에 갖혀 죽음 직전까지 가다 겨우 살아나오곤 했던 그에게는 악몽의 산이었다.
그런데 그는 세 번째 도전하여 끝내 성공했다.
박씨가 세계 산악계를 경악케 한 해는 지난 97년. 그는 해발 8,000m가 넘는 고봉을 한해 동안 무려 다섯 개나 올랐다.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는 그해 봄 다울라기리 (8,167m), 여름 가셔브룸1봉(8,068m)과 2봉(8,035m)에 이어 9월 초오유(8,201m), 그리고 10월 로체(8,516m)마저 등정했다. 비록 이 기록은 지난해 박씨가 로체 정상을 밟지 않았다는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수정됐으나, 그의 괴력은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 부인 홍경희여사(38)와 지난 89년 결혼해 성우(11), 성민(7)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박동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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