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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전가’의 사회

지금까지 가출은 청소년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였다.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니더라도, 성적이나 다른 문제로 뒷동산에 날이 저물도록 앉아 있으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 가출이 최근에는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10대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20대 이상의 성인이 72%나 되고, 그 중에서도 3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가출한 자녀보다 집 나간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3배나 많다는 것이다. 가정불화, 빚독촉, 자아실현 등 이유도 가지가지이다. 빚독촉이나 가정불화에 의한 가출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가출은 이전의 생계형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부분 무분별한 소비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자아실현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신용불량자 300만 시대와 경기침체에 그 원인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피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은 문제이다. 남은 가족이 겪을 고통이나 황당함은 안중에도 없는 무책임한 이기주의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증가 추세에 있는 자아실현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가족의 의무가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더 나아가 가정은 자신의 문제를 더 힘들게 하는 문제의 원천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주의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집단보다는 개인에 대한 존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무책임한 이기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인가출은 이혼의 계기가 되거나 부모 모두의 가출로 이어져 소년소녀 가장을 양산한다. 또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생계 혹은 정서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고 일탈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로 확대된다. 개인의 무책임이 사회의 건강성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20ㆍ30대는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고 있다. 이들이 책임을 피하는 나약한 태도와 더 나아가 범죄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 사회가 역동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개인과 가정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시급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遇)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오세훈(국회의원ㆍ한나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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