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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무심의 돌' 조훈현 제2전성기
입력1999-07-01 00:00:00
수정
1999.07.01 00:00:00
최형욱 기자
『너무 그러지들 마세요. 우리 남편, 오랫만에 결승전에 올라갔다구요.』지난 5월 조훈현9단의 평창동 자택. 현대상선의 무성의로 무산된 「금강산유람선 선상대국」과 관련해 기자간담회가 열리던 자리였다. 마침 춘란배 세계바둑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지라 기자들이 농담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자 부인인 정미화씨가 내지르듯 던진 말이다. 그때 조9단의 반응이 묘했다. 빙긋이 웃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표정. 이창호9단에게 밀리고 있다는 주위의 평가가 새삼스러웠던 탓일까.
그런 조9단이 오랫만에 활짝 웃었다. 지난달 29일 중국 난징에서 열린 춘란배 결승3번기에서 제자인 이창호를 285수만에 누름으로써 종합전적 2승1패로 우승, 15만 달러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지난 96년 동양증권배 이후 3년만에 맛보는 세계바둑대회 우승이다. 승부에 항상 초연한 기색을 보이던 조9단도 이번에는 부인 정씨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승리의 기쁨을 함께 했다고 한다.
올해 46세의 조훈현. 그가 요즘들어 「늙은 생강이 맵다」는 속담을 실력으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발판은 지난해 말 제42기 국수전에서 이창호를 2대 0으로 물리치고 타이틀을 방어하면서부터.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30일 현재 종합전적 27승6패를 기록중이다. 승률이 82%에 달한다. 98년 10월 이후 최대의 난적 이창호와도 6번 싸워 4번 이기고 2번 지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사실 조훈현은 지난 88년 이창호가 두각을 나타내면서부터 「바둑황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92년까지는 연평균 승률이 70%대를 유지했으나 93~98년에는 승률이 60%대로 떨어졌다. 타이틀도 하나둘씩 이창호에게 빼앗기더니 95년에는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했다. 급기야 98년에는 35승26패로 승률이 57%로 급강하했다. 그해 이창호와 사제대결 성적도 7승16패로 스승의 체면을 구겼다.
당시 바둑전문가들은 조훈현의 부진을 40대 중반의 나이에서 오는 체력 저하와 집중력 감퇴, 수많은 대국을 통해 전력이 노출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올해 조훈현은 바둑호사가들을 비웃으면서 「제비」처럼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다.
비결을 묻는 우문(愚問)에 조9단은 『운이 좋은 것뿐이다. 바둑이란 공부한다고 느는 게 아니다』고 대답한다. 또 『요즘에는 등산도 가고, 기보도 보면서 여유있게 지내고 있다. 몸과 마음이 편하다보니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같다. 또 반대로 자꾸 이기니까 컨디션도 좋다』고 덧붙였다. 조9단은 바둑 리듬이 좋은 시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옆에서 지켜보기엔 그 「무심의 철학」에 승리의 비결이 있는 듯 보인다.
이에비해 「부동의 세계 1인자」 이창호는 요즘 젊은 나이에 벌써 지친 느낌이다. 기보에 활기가 별로 없고 승리를 향한 투혼도 엿보기 힘들다. 그러나 스승 조훈현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여전히 노련함과 끈질긴 투혼으로 국면을 전환시킨다. 철저한 체력관리로 30년 가까이 최정상 기사로 군림하고 있다. 「10년 천하」를 이룩한 이창호. 그는 과연 20년후에 지금의 영예를 지켜가고 있을까. 역시 스승은 스승이다. 제자가 나아갈 길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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