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은 프로의 영역이다. 금융계에서도 각 영역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일관된 입장을 갖고 구조조정의 키를 잡아야 한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고 칼을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기업과 금융시장은 물론 국가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리더십은 물론 감독당국과 채권단의 협업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7일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STX팬오션이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쌍용건설을 놓고 나타낸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모습을 보면 "아마추어 구조조정에 기업이 멍들고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금융시장은 STX팬오션과 쌍용건설의 구조조정 흐름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이쯤 되면 프로의식은 볼 수 없는, 보신주의가 판을 치는 구조조정으로 평가할 만하다"며 "주채권은행의 리더십도 찾기 힘들고 철저하게 해당 기업보다는 금융회사 및 실무자들이 책임을 피하는 데만 중점을 둔 대표적인 구조조정 실패사례로 남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신 담당자들은 최근의 기업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우왕좌왕하는 것은 물론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자꾸 주면서 오히려 기업 자체의 회생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지적한다.
STX팬오션만 해도 지난 4월 산업은행이 인수를 위해 실사를 벌이자 금융시장은 낙관적인 신호로 해석했다. 산은의 역할론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거 금호생명의 구조조정 트라우마 탓에 '면책이 없으면 인수할 수 없다'는 등의 분위기가 팽배하자 CEO는 당국에 면책 운운했다. 손실보전도 요청했다. 채권단은 채권단끼리 엇박자를 이어갔다. 이를 조정할 금융당국은 적정 개입도 못했다. 키를 쥔 선장이 역할을 못한 채 선원들에게 휘둘리는 꼴이었다.
쌍용건설도 비슷하다.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청산하고 쌍용건설에서 손을 떼자 당국이 직접 채권은행들을 설득하며 워크아웃 신청을 이끌어낼 때만 해도 흐름은 괜찮았다. 자본확충을 통해 쌍용건설의 상장을 유지하고 6월 말이면 정상화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라고 시장은 전망했다. 하지만 손실을 우려한 쌍용건설 채권단이 워크아웃 개시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금융당국도 '관치금융' 논란에 휩싸이자 뒷짐만 지고 있는 실정이다.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쌍용건설까지 워크아웃이 지체돼 해외수주 등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당국과 채권단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다.
당국은 정교한 플랜을 갖추지 못한 채 관치금융만을 우려, 구조조정에 대한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주채권은행은 부실 책임론에만 집착하며 보신주의 식 실사에 급급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에 치중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구조조정 초기부터 채권단은 물론 당국이 잘못된 신호를 주면서 구조조정의 흐름 자체가 산으로 향하고 있다.
7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팬오션도 이 부분을 거론하면서 채권단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STX팬오션의 고위 관계자는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각작업이 진행되면서 매각 발표 당시 관심을 가졌던 수많은 국내외 전략적ㆍ재무적 투자자의 관심은 멀어졌다"면서 "산은의 불확실한 인수 방침이 결국 다른 투자자의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우왕좌왕하는 구조조정 과정 속에서 기업가치와 경쟁력은 계속해 악화됐고 대외신인도 하락은 물론 주요 거래처의 이탈, 유동성 부족에 따른 대금지급 지연 등으로 영업손실은 더욱 커지는 악순환만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방향성과 신속성을 모두 놓친 채권단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 결국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채권단은 강덕수 회장의 개인 회사로 볼 수 있는 포스텍에 대해서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STX그룹의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포스텍은 자율협약 동의서조차 받지 못했다. 채권단이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진행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십조원짜리 구조조정인데 그림도 없고 일사분란함도 없다. 채권단을 휘어잡을 금융감독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룹 구조조정은 자율협약-워크아웃-법정관리 등의 대상을 확실히 나누고 진행해야 하는데 금융회사의 충당금 부담만 생각한 채 임기응변으로 흐르고 있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쌍용건설도 지난 2월 워크아웃 신청 후 3개월간 별다른 재무개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해외 발주처로부터 입찰 배제나 수주 취소 통보를 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또 해외공사 수주를 위한 계약이행보증서(P-Bond) 발급이 막혀 입찰을 통과하고도 낙찰 대상자에서 배제될 위기에 놓인 프로젝트는 6곳, 71억달러에 이른다. 더욱이 당장 쌍용건설이 중동에서 수주한 40억달러 규모의 지하철 공사는 워크아웃 개시가 지연되면서 수조원대의 소송전에 휩싸일 가능성도 높다.
채권금융회사끼리 국익과 기업의 회생은 무시한 채 철저하게 자기 이기주의에 빠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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