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때문에 한국인 148명이 전범으로 처벌 받았고 이 가운데 23명이 사형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 책은 태평양 전쟁 재일 한국인 전범 출신자 모임인 동진회(同進會) 회원들이 50년이 넘도록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보상 투쟁을 다룬 논픽션이다. 90년대 도쿄 특파원 출신인 저자는 일본 근무 중 동진회의 법정 투쟁 취재 보도를 계기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들과 함께 하면서 소송 기록과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이 책에는 유기징역형 복역자가 사형집행을 앞둔 동료에게 받아 보관해 온 옥중 절필 사본이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교수형 또는 총살형으로 이국땅 옥중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사형수들은 모두가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며 “이 세상에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호소한다. 이들 기록과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연합국 전범 재판은 보복성이 강한 감정 재판이었다. 고발장ㆍ고소장과 증거도 무시된 재판에서부터 피해자의 손가락질 한번으로 기소되는 손가락 재판의 실태, 뺨 한대에 징역 10년이란 말로 상징되는 감정 재판의 실상이 수록됐다. 유기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 한국이 독립국이 된 뒤에도 일본 도쿄 스가모 형무소로 이감되고 남은 형을 살아야 했다. 국적이 달라졌는데도 범죄를 저지를 당시 국적이 일본이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평생을 정신병원 격리 병동에 갇혀 있다가 외롭게 죽은 한 전범 출신자의 고별식을 취재하면서 견딜 수 없는 분노로 몸이 떨렸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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