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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스웨덴 총선을 지켜보며
입력2006-10-01 16:25:33
수정
2006.10.01 16:25:33
지난 86년 영국에 유학을 가서 처음 사귄 친구 중 하나가 스웨덴 출신이었다. 잘 못하는 영어로 (물론 그 친구는 영국 사람만큼 영어를 잘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가 자기는 우파인데 좌파 정권 때문에 스웨덴 경제가 잘 안 되는 게 불만이라는 말을 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냐고 했더니 국민 조세부담률이 엄청나게 높아 국내총생산(GDP)의 50% 가까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파적 해결책은 뭐냐고 물었더니 조세부담률을 45% 정도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17~18%의 조세부담률도 높다고 비판하던 시절인데 스웨덴에서는 우파라는 친구가 45%가 적정 조세부담률이라고 생각하다니, 당시 필자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여러 가지 연구를 하다 보니 유럽에는 스웨덴을 비롯해 독일ㆍ프랑스 등 우리가 막연하게 자본주의의 표본으로 생각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매우 다른 다양한 자본주의 모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에 대한 논문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웨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스웨덴이 유독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처럼 독일ㆍ러시아 등 큰 나라들 사이에 끼여 외교적인 줄타기를 많이 해야 했던 나라이다.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파업률이 제일 높았을 정도로 노사갈등이 심했고, 삼성보다 훨씬 큰 발렌베리 재벌 때문에 재벌문제도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했다. 또 민족의 동질성이 높아 이민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필자는 특히 재벌문제ㆍ노사문제 등 우리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스웨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 각종 언론 기고와 저서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연유로 지난달 스웨덴 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간발의 차이로 승리하자 여러 사람들이 필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스웨덴도 복지국가 모델을 버린 이 마당에 우리가 스웨덴에서 배울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해왔다.
이번 스웨덴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한 것이 소위 스웨덴 모델의 파기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지적했기에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나의 스웨덴 친구처럼 스웨덴의 우파라는 사람들은 복지문제에 있어 우리나라 좌파보다 더 좌파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복지지출이 좀 지나친 부분을 줄이자는 것이지 미국 수준, 하다 못해 영국 수준으로 축소하자는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1932년 사회당이 집권한 후 74년 동안 우파가 집권한 것은 지금까지 통틀어 두 번에다 기간으로는 9년(76~82년, 91~94년)밖에 안 될 정도로 사회당의 헤게모니가 막강하기 때문에 이번 우파 정부도 잘못하면 금방 실각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인구 천만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뭘 배우냐” 하고 비웃는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인구가 우리나라의 5분의1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여서 스웨덴으로부터 못 배운다면 반대로 우리 인구는 미국의 5분의1밖에 안 되는데 미국에서는 어떻게 배우냐고 반문한다.
미국도 스웨덴도 우리와 다른 나라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위에서 설명한 대로 스웨덴이 우리와 비슷한 점이 훨씬 많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력과 군사력, 광활한 국토와 엄청난 자연자원, 끊임없는 정복과 이민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우리나라나 스웨덴과는 매우 다르다.
그리고 스웨덴에서건 미국에서건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배울 때는 그 경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스웨덴 등 북구제국의 복지제도는 우리나라 우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제도가 아니다. 물론 이런 소득 재분배적 측면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와 더불어 실업자에게 재교육ㆍ취업알선, 심지어 이주보조금까지 제공해 생산활동 복귀를 돕는다는 데 큰 강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 시각에서 평가하는 기업환경지수 같은 데서도 스웨덴ㆍ핀란드 등이 세계 1ㆍ2위를 다투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턱에 서 있다. 지금까지는 먹고사는 것이 급급했지만 이제 어떻게 ‘좋은’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할 때다. 이런 의미에서 스웨덴은 재벌문제ㆍ노사문제ㆍ외교정책 등에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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