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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좀 더 뛰면 연임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적당한 때 내려오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작은 욕심이 마지막을 망칠 수 있거든요."
지금은 야인으로 돌아간 고위관료 출신의 전직 최고경영자(CEO)가 밝힌 연임 포기 후일담이다. 그는 "솔직히 나도 사람인데 고민하지 않았겠냐"면서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판단이 백번 옳았다"고 했다. 이어"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힘들지만 더 어려운 일이 적절한 순간에 내려오는 일"이라면서 "연임 가능성이 높을 때는 더욱 그렇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어렵다는 연임 포기 결정을 하는 CEO들이 부쩍 늘었다. 하나같이 뉴스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연임 포기 결정에 시선이 쏠린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9일 열린 정기이사회와 준(準)회장추천위원회 성격의 경영발전보상위원회에 참석한 뒤 연임 포기 의사를 재확인 했다. 김 회장은 "(연임 포기 문제는) 이미 끝난 이야기다. 바뀐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장호 부산은행장도 이날 은행장 '3연임'을 포기하고 용퇴 결정을 내렸다. 이 행장은 다음달 임기가 만료되는데 지난 2006년 부산은행장으로 취임한 후 연임에 성공해 6년째 은행을 이끌어왔다. 지난해에는 지주 체제를 출범시키며 지주 회장을 겸임했다. 연임 가능성은 당연히 높았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돌연 능력 있는 후배에게 행장을 물려주고 자신은 당분간 회장직만 맡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중 하나인 사공일 한국무역협회장도 지난 7일 연임을 포기했다. 당초 무협 안팎에서는 연임 가능성을 높게 내다봤다. 하지만 사공 회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물러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연임 포기를 공식화했다.
금융 관련 협회의 연임 포기도 이어지고 있다. 연임이 점쳐지던 이우철 생명보험협회장이 지난해 12월 물러났고 금융투자협회를 출범시켰던 황건호 회장도 임기 두 달을 앞두고 연임을 포기했다.
이들의 용퇴 결정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좋은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솔직히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연임하려다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급기야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 경우가 한두 건이었냐"면서 "사연이야 어찌 됐든 연임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결정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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