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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불을 지핀 '경기바닥론'이 다시 허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뚜렷한 돌파구 없이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은데다 대선으로 정부의 경기대응도 2~3개월은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장기간 'L자형'의 횡보 흐름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장기적인 불황에 대응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도 내년 성장률을 다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나라 수출과 소비가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지만 투자부진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10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0.7% 축소됐다. 특히 국내 기계수주(-18.1%)와 건설수주(-22.7%)는 전월보다 감소폭이 확대됐다. 이에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했던 3ㆍ4분기 국민소득(잠정치)은 속보치(0.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0.1%로 3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실상 한국은행이 전망했던 올해 경제성장률 2.4%는 달성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정부도 이르면 이달 말 발표할 '2013년 경제정책방향'에 담을 성장률 전망치 수정작업을 놓고 고민이 깊다. 정부가 가장 최근 내놓은 내년 전망치는 지난 9월 예산안에 담겼던 4.0%로 국내외 연구기관 발표와 괴리가 크다.
국책연구기관인 KDI의 경우 내년 전망치를 3.0%으로 낮췄고 한국은행은 3.2%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1%, 국제통화기금(IMF)은 3.6% 등으로 대부분 3%대 초중반이다. 외국계 투자은행은 더 부정적이다. 노무라(2.5%)를 비롯해 도이체방크(2.6%), 메릴린치(2.8%), UBS(2.9%), BNP파리바(2.9%) 등 2%대 전망도 흔하다.
더욱이 기업들이 정치경제적인 이유를 앞세워 투자를 회피하는 가운데 정부 역시 사실상 경기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사실상 공백기라는 점에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예산 조기집행이지만 이것 역시 국회 예산처리가 차질을 빚으면서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 다른 경기대책도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원회가 구성돼 방향을 잡기까지 짧으면 2개월, 길면 3개월이 지나야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경기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차기 정부 역시 경기둔화 속도에 맞춘 긴 호흡의 부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금융위기 쇼크에서 빨리 회복돼야 했던 5년 전과 달리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살피면서 장기적인 저성장에 대비해야 한다"며 "일본처럼 인위적인 억지 부양책을 지속하다가 재정만 악화되지 말고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등 취약 부분을 개선하는 것에 집중해 우리경제의 체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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