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융통과 고지식

책이나 신문 따위를 읽다가 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본뜻과는 엉뚱하게 쓰이는 낱말들이 눈과 귀를 거슬리게 하는 경우가 잦음을 깨닫게 된다. 그 한예로 「초미」를 들 수 있겠는데 이는 초미지급의 준말이요 초미지급은 화소미모와 같은 말이다.중국의 옛 고승인 법천불혜 선사가 어느 날 제자로부터 『이 세상에서 제일 급박한 경우를 나타내는 글귀는 무엇입니까?(如何是急切一句)』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한 것이「화소미모」즉 눈썹에 불이 붙었다는 말이었다. 우리 속담에도 아주 화급한 경우를「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발등의 불을 어찌 눈썹의 불에 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렇듯 급박함을 뜻하는「초미」가 언제부턴가 엉뚱하게 변질되어 많은 사람(특히 식자들 사이에)의 글이나 말에서는「깊은 관심거리」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융통」이라는 낱말 또한 그 지경이 돼가고 있다. 전관예우, 관행, 떡값, 촌지, 급행료… 따위와 관련되어 부정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융통성이 있다고 평가되고 그릇된 관행이나 뇌물성 촌지를 거절한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는 축으로 몰려 손가락질 당해 왔다. 융통이란 금전이나 물품 따위를 돌려쓰는 것 또는 임기응변으로 일이 바람직하게 잘 되도록 처리하는 것을 이르는 낱말이며 그것은 반드시 투명하고 신속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남을 속이고 제 잇속만 차리기 위해 하는 부정 즉 범법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말로 쓰고들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출세를 하면 융통성이 좋은 사람이요 정직하여 돈도 못벌고 출세도 못하면 융통성 없는 무능자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소외됨은 물론 가정에서까지 무시당하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옛날 미생이라는 이는 다리 밑에서 여자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폭우 속에서도 그곳을 떠나지않아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만약 그가 약속을 중히 여겨 다리 밑이 아닌 다리 위나 또는 다리 부근에서 여자를 기다렸더라면「미생지신」이란 고사성어의 뜻은 어리석음이나 고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융통성을 뜻하는 긍정적인 말이 됐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