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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쿤 회의가 시사하는 것
입력2003-09-15 00:00:00
수정
2003.09.15 00:00:00
조영훈 기자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에서 선언문 채택이 무산되기는 했으나 관세율 인하를 내용으로 한 선언문 초안의 정신은 유효해 우리 농산물을 지키기 위한 앞길은 여전히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각료선언문 합의에 실패한 직접적인 원인이 정부조달의 투명성과 역외투자 등 소위 `싱가포르 이슈` 때문인데다, 농산물협상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노르웨이 등이 속해 있는 농산물 수입국(G10)이 확실한 소수그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쌀을 지키기 위해 의지했던 NTC(비교역적 관심사항) 그룹에서 EU가 빠져 나와 미국과 합세함으로써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은 미국ㆍEU와 중국을 포함한 농산물수출개도국(G22)의 대립 구도로 바뀌어 G10의 입지가 현저히 약화된 형국이다.
특히 각료선언문 초안에 따르면 쌀시장 개방을 최소화하기 위해 쌀을 고율관세의 특정품목으로 남겨두려면 참깨, 녹두, 마늘, 고추 등 기준 관세율 100% 이상인 125개 농산물의 대폭적인 관세 인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선언문 초안이 TRQ(저율관세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도록 한 것도 농산물 수출국들을 위한 조치인 만큼 우리에게는 불리한 결정이다. 앞으로 계속될 농산물 수출국과의 쌍무협상에서 우리 협상단이 고도의 전략을 구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WTO 각료회의는 우리에게 농산물 시장의 전면개방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 외에 비농업 분야 협상의 전도 역시 만만치 않은 현실임을 인식시켜 주고 있다. `싱가포르 이슈`로 선언문 합의에 실패한 것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공산품 등의 수출에서 후발 개도국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농산물에 관한 한 각료선언문 초안 내용을 우리가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여타 분야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재 우리의 처지다.
따라서 우리는 쌀시장 개방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협상력 발휘에 최선을 다해야 겠지만 그 과정에서 비농업 분야에 대한 득실을 면밀하게 따져야 할 것이다.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UR)에서 선진국들이 농산물 시장의 개방을 목표로 반도체 등 비농업 분야를 지렛대로 활용한 전례 등을 거울 삼아야 할 것이다.
칸쿤회의가 선언문 채택없이 막을 내린데 대해 NGO(비정부기구) 회원들이 환호를 올렸다고 하나 이는 시간만 잠시 연장됐을 뿐 개방확대가 대세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도 10년전 UR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런 방향에서 협상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향후 협상에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국민적 지혜를 모으되 국민들도 정부의 노력을 지켜보는 인내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조영훈기자 dubbch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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