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인프라 구축과 도시 개발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많습니다. 한국 기업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활용해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합니다." 박준영(사진) EBRD 투자 담당 이사는 3일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e메일 인터뷰를 갖고 "EBRD는 그동안 신흥국의 미개발 지역에 투자해 성공한 경험을 한국 기업과 나누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박 이사는 크레디트스위스(CS) 서울지점과 리먼브러더스 뉴욕 본사 등을 거쳐 지난 2009년부터 EBRD에서 러시아·폴란드·터키·우크라이나 등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고 있으며 EBRD 내 투자 결정권을 가진 유일한 한국인이다. EBRD는 동유럽을 중심으로 옛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 설립돼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연간 80억유로(약 12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한국은 EBRD의 창립 멤버지만 보유 지분이 1%에 머물러 있으며 최근 협력 사례도 SK건설이 2012년 터키 유라시아 해저터널 공사를 EBRD와 함께 수행한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박 이사는 "한국 기업이 해외사업에 대해 여전히 적잖은 부담감을 가진 것 같다"며 "EBRD와 신규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는 데 대해서도 '간섭' 등을 우려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EBRD의 축적된 노하우와 신뢰도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아프리카에서도 검증 받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과 일본이 EBRD를 활용해 유럽에서 왕성한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최근 동양생명의 새 주인이 된 중국의 안방보험은 EBRD와 손잡고 포르투갈 3대 은행인 노보방코 인수를 추진 중이다. 안방보험의 노보방코 인수금액은 49억유로(약 6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2위 손해보험사인 솜포재팬이 2010년 터키의 금융회사 피바시고르타를 인수할 때도 EBRD의 지원이 있었다. 신흥국인 터키의 현지 상황을 잘 모르는 솜포재팬이 EBRD에 투자 자문을 구했고 EBRD는 지분 9.99%를 함께 취득하며 피바시고르타의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박 이사는 "중국과 일본 기업이 유럽 중심부로 투자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며 "이들이 금융회사를 사들인 것은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부에 불과해 향후 더 많은 현지 기업을 인수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계 자본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대응해 한국 기업이 EBRD와 공동으로 추진할 만한 사업으로 인프라 구축과 도시 개발 등을 거듭 제시했다. 박 이사는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런던 시내까지만 해도 교통 등 새로운 인프라 수요가 엄청나게 크다"며 "유럽 각국의 인프라 수요를 착실히 파악해 건설 사업에 경험이 많은 한국 대기업이 나선다면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폴란드에서는 대우가 건설한 인프라 시설과 건물에 대해 현지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가 좋다"며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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