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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43주년] (강한 증시 강한 경제) 2.2 똑똑한 주주가 강한 증시 만든다
입력2003-08-11 00:00:00
수정
2003.08.11 00:00:00
안팎의 기자
“주주가 아닌 분은 못 들어갑니다.”
2001년 4월26일 아침 9시30분. 리츠칼튼 호텔 지하 3층 그랜드 볼륨. 30명이 넘는 검은 양복의 건장한 청년들이 주총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한 때 코스닥 시장에서 황제주로 불리던 리타워텍의 주총 행사가 열리기 30분 전이었다.
이날 주총은 경영진과 주주들간 큰 충돌이 예상됐다.
2000년 5월 362만원까지 급등했던 주가가 6개월 만에 1만원대로 급락한데다, 설상가상으로 주총 직전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허록 전 사장이 구속되자 주주들의 불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주총 시작 시간인 10시.
그러나 예상과 달리 주총장을 찾은 소액주주는 5명에 불과했다. 8명의 직원과 20명 안팎의 기자, 30여명의 경호원 등 `주인 보다 객`이 더 많았다.
주총은 그렇게 주주들의 무관심 속에 끝났고, 리타워텍은 2년 뒤인 2003년 1월 453억원의 세금을 추징 당해 4월11일 코스닥시장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주주는 없고, 투자자만 있다=주가가 추락한 날은 온갖 투자자들이 회사가 곧 망하는 것처럼 항의전화를 쏟아 붓는다. 그러나 막상 주총장에는 주주들이 없다. 기능성 사료첨가제 제조업체인 이지바이오시스템의 지원철 대표는 “주가에만 관심을 두고 회사의 실적과 사업계획에는 등을 돌리는 것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매매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의 의사결정과 회사의 실적을 감시하고 지켜봐야 할 책임과 권한을 가진 주주들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지난해 투자자별 매매동향에서 개인들이 매도한 거래량은 전체의 94.49%로 집계됐다. 지난 97년 76.57%였던 것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면서 95%에 육박했다. 개인들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이 97년 150조원(전체의 31.68%)에서 지난해 75조원(25.55%)으로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매매 성향은 더 심해진 셈이다.
◇똑똑한 주주가 강한 기업 만든다=주식시장은 꿈을 먹고 자라지만, 꿈은 냉철하고 똑똑한 주주들이 회사를 올바르고 강하게 키워야 이뤄진다. 첨단 바이오 제품을 만드는 엔바이오텍의 문원국 사장은 “회사의 가치와 주가는 주가하락에 항의하는 단기 투자자들이 아니라 회사의 전략과 경영진의 판단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하는 주인의식을 가진 주주들에 의해서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소액 주주들은 투자한 기업의 주가를 높이고 투자수익을 얻기 위해서
▲대주주가 회사 돈을 빼먹거나
▲분식회계를 통해 실적을 부풀리거나
▲책임지지 못할 공시를 남발하지 못하도록 투명경영과 경영실적에 대한 감시의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주식매도나 유상증자 참여거부 등 소극적인 대처에서부터 감독기관 진정ㆍ이사회 소집요구ㆍ집단소송 등 적극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야 한다.
생선 한 마리를 살 때도 발 품을 팔아가며 싸고 좋은 물건을 사려고 노력하는 알뜰한 사람들이 막상 주식종목을 고를 때는 “알아서 사 주세요”라며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원자력발전과 산업용 감시제어시스템분야의 국내 1위 업체에서 DCP(복합디지털 가전제품) 전문업체로 변신에 성공한 우리기술의 김덕우 사장은 “실컷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봤다는 얘기를 하고 나서, `그런데 뭐 하는 회사죠`라고 묻는 경우도 있다”며 “`일단 사고 보자`는 이런 투자 분위기는 개인적인 손해를 넘어 주식시장을 왜곡시키고 건전한 투자를 해치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카지노 판에서 건전한 투자마당으로=“주식시장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체중계지만, 단기적으로는 카지노판이다.” 장기투자로 억만장자가 된 워렌 버핏은 주식시장이 도박판과 체중계의 이중적 모습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만은 “주식투기는 피라미드 사기와 같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가입자가 없으면, 무너지는 피라미드 조직처럼 주식시장도 비슷한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박판의 투기행위는 개인의 몰락으로 끝나지만, 주식시장에서의 투기는 투자자와 기업, 국민 경제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외국에는 벤자민 그레이엄, 워런 버핏, 존 템플턴 등 존경받는 투자자들이 많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존경 받는 투자자란 말 조차 생소하게 느껴진다. 오로지 `성공한 주식투자=높은 수익률`이라는 투기적 도식만 자리잡고 있다.
美ㆍ日등 외국 소액주주들 `제 몫 찾기` 운동 활발
지난 2001년 6월말 뉴욕타임즈에 눈길을 끄는 광고가 하나 실렸다.
세계적인 컴퓨터 소프트웨어회사인 컴퓨터어소시에이츠(CA)의 찰스 왕 전 회장과 산제이 쿠마르 최고경영자(CEO)가 환하게 미소를 짓는 사진이 담긴 광고였다. 광고 아랫부분에는 `이들은 왜 웃고 있는가`라는 다소 이색적인 문구가 실려있었다.
이 광고는 기업 이미지 광고가 아니라, CA의 경영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긴 한 소액주주의 `선전포고`였다.
거액의 돈을 들여 광고를 낸 사람은 소액 투자자였던 샘 와일리였다. 그는 인터넷 붐과 함께 2000년 1월 70달러 가까이 올랐던 주가가 1년 반만에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치자, 소액주주들이 하나로 뭉쳐 주주 총회에서 경영진을 교체하자는 당찬 제안을 했다. 그는 다른 소액주주들에게 주총 의결권을 위임해 달라며 자신이 경영을 하면 훨씬 더 잘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CA 측의 즉각적인 반격이 이어졌고, 한동안 신문지상에는 양측의 치열한 광고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해 8월 열린 주총에서 경영진 교체는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이 일은 미국 소액주주 운동을 기념할 만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미국 증시에서 소액주주가 자기 몫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주주들이 기업경영 개선을 위해 주총에 제출하는 주주결의안(Shareholder Resolution)도 크게 늘어나고 추세다. 미국 비영리 조사기관인 투자자책임조사센터(IRRC)에 접수된 주주결의안은 지난해 802건에서 올해 5월 현재 1,009건을 넘어섰다.
소액주주들은 각종 연기금과 투자기금ㆍ노조단체 등과 힘을 합해 정기주총에서 경영진과 한판 대결을 벌이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소액주주들은 세계 최대 연기금펀드인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와 함께 제너럴일렉트릭(GE) 경영진의 보수를 실적과 연계시켜야 한다며 주주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소액주주들의 압력으로 최고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수를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 소액주주 운동의 관심사는 임원의 스톡옵션 비용처리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얼마전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자동차는 소액주주운동과 여론에 밀려 스톡옵션의 회계반영을 결정했다. 회계부정과 실적부진 등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달러의 스톡옵션 보상으로 임원 주머니만 채우는 관행이 주주운동으로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올 6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스톡옵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기업들이 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부과할 때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새 규제안을 승인한 것도 소액주주 운동의 힘이 바탕이 됐다.
보수적인 기업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도 소액주주의 제 몫 찾기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미쓰비시와 브리지스톤이 자사의 자동차와 타이어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쉬쉬한 사실이 밝혀져 최고 경영진이 기소당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소액주주 운동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오사카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주주 옴부즈맨` 등과 같은 단체와 함께 기업 풍토를 개선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특정기업을 대상으로 극히 제한된 제안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큰 차이가 난다.
<우승호기자,홍병문기자 derrid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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