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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구직자의 고백] “아이들 자장면 사준게 언젠지…”

“20여년간 피워오던 담배도 끊고 허리띠 졸라매고 살지만 생활은 자꾸만 힘들어져 갑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을 사준 것이 언제인지 아득하기만 하구요. 처자식과 먹는 걱정만이라도 하지 않는 `작은 행복`이라도 갖고 싶은데 취업의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회사가 부도 나는 바람에 지난해 4월 퇴직한 A씨(38ㆍ성남시 중원구)는 오늘도 취업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집을 나선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채용시장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지만 그래도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90년 대학을 졸업한 뒤 H건설에서 인사와 노무, 총무 일을 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4월 퇴사하게 된 A씨는 이후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 등에 문을 두드렸다. 이 기간동안 그가 원서를 넣은 횟수만 무려 300차례가 넘는다. 퇴직 후 3개월만인 지난해 7월 모처럼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A씨가 인터넷 알선업체의 게시판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경기도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총무 일을 봐달라`고 제의를 한 것이다. 골프장에 대해 잘 몰랐던 그는 `근무여건이 좋지 않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만 믿고 골프장측의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 기회였는지 그는 이 때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합격은 고사하고 면접을 보는 기회마저도 점점 줄어들어 갔다. 이 때 직장을 잡지 않은 것을 A씨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그냥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그는 지난달까지 3개월 동안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했다. 여기서 받는 돈이야 얼마 안됐지만 동사무소에 있는 동안에는 돈 걱정도 직장 걱정도 잠시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지난 1년2개월 동안의 `백수생활`은 A씨의 삶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20년 동안 피워오던 담배도 끊고 꼭 필요한 지출이 아니면 100원짜리 하나라도 줄이고 있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인 큰 딸의 학원도 하나 둘 정리했다. 예전에 가족들과 종종 먹던 자장면은 이젠 큰 맘 먹어야 사먹을 수 있는 `비싼 음식`이 된지 오래됐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두 딸은 집 앞에 있는 중국집 근처를 지나가면서도 `자장면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아 A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과 실업급여는 시골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로 다 썼고 이제 그는 카드 현금서비스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한도가 다 차 더 이상 돈 빌릴 데가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A씨에게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는 것이다. 백수생활을 한 이후 마음이 위축되면서 남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좋지않은 소리를 듣는 것도 싫어하게 된 그는 요즘 `외로운 섬`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A씨가 놀고 있는 동안 유일하게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비록 친구들과 옛 직장 동료들은 멀어져 갔지만 가족들은 자신의 옆에 항상 있었던 것이다. 이제 A씨는 단 하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생활비 걱정만 않고 사는 것이다. 이들과 맞을 `작은 행복`의 그날을 위해 A씨는 오늘도 취업의 문을 두드린다. <오철수기자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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