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차남의 조급함이 일을 키운 것일까. 아니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업적 확장과 가족을 배려하지 않는 원칙적 경영에 친척들이 집단적으로 등을 돌린 것인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차근차근, 그것도 물증을 들이대며 신동빈 회장을 압박하고 있는 반면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의 판단력이 흐리다"는 것 이외에 뾰족한 대응책을 꺼내지 못하면서 분쟁의 전체적인 형세가 신동빈 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신격호 총괄회장의 동생이면서 가문의 어른인 신선호 산사스 회장이 31일 입국해 "형이 정상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신선호 회장이 최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에 갈 당시 동행해 '반신동빈'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한편 그의 발언은 '판단이 흐려졌다'며 건강 문제를 정면 거론한 신동빈 회장 측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친 제사를 명분으로 친족들이 대거 모이자 신동빈 회장은 끝내 가족 제사와 회의에 오지 않은 채 일본에서 주주 설득과 임직원 달래기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일종의 '반전카드'를 찾고 있는 셈이다.
결국 어머니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가족의 중재 아래 극적인 화해가 이뤄지거나 추가 폭로전과 지분 다툼, 양측 간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우 일본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함께 '손가락 해임'을 주도한 후 귀국 전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들어와 아버지의 신동빈 회장 해임지시서를 공개하는 등 단계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아버지와 신동빈 회장이 중국 사업으로 틀어졌다는 내용까지 알려지면서 외부에서 볼 때 이번 사태의 퍼즐을 맞출 수 있도록 사건을 끌고 가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은 신동빈 회장이 중국에서 1조원가량의 손실을 입었다고 보고 신격호 총괄회장의 마음을 변하게 하는 결정적인 구실을 만들었다.
게다가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의 방문에도 방문을 걸어잠그고 대항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1일 천하'로 끝날 때만 해도 판세가 불리했지만 어느덧 신동빈 회장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신동빈 회장은 어머니와 우리사주를 포함한 주주들에게 기대는 일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사실 유무를 떠나 아버지의 건강과 판단능력의 문제를 외부에 대놓고 드러냈고 우군 없이 '신동빈 대 반신동빈'의 구도라는 점은 악재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신동빈 회장 쪽이 절박한 상황에서 벼랑 끝 싸움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롯데의 지배구조가 신동빈 회장을 조급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롯데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19.07%)로 광윤사(5.45%)와 나머지 일본 L투자회사를 더하면 무려 99.28%에 달한다. 한국 롯데만 맡고 있다가는 언젠가 일본 롯데에 경영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구조라는 얘기다.
물론 자산 규모로 따질 때 한국과 일본 롯데의 덩치가 20배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신동빈 회장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경우 가족의 중재 아래 이번 사태가 적정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 아니면 신동빈 회장은 가족들과 등지고 전면전을 택해야만 한다. 신동빈 회장의 가신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전면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