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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적은 아일랜드가 직면한 경제적 위험을 줄이고 우리의 경쟁력과 경제의 생산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버티 아헌 아일랜드 총리, 2월15일 노사민정 협의회에서)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티센터에 위치한 더블린 캐슬. 이곳은 아일랜드가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이해관계자들과 모여 끝장토론을 펼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방문했던 지난 2월15일에는 마침 정부 및 노사, 시민단체 대표들이 새해 들어 처음 더블린 캐슬에 모여 지난 27개월간의 임금 가이드라인이 3월 말로 종료됨에 따라 이를 대체할 새로운 합의와 내년부터 시작될 8차 협약을 사전에 검토하기 위한 첫 회동을 가졌다. 버티 아헌 총리가 이 자리에서 강조한 것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이해하지만 무엇보다 앞선 가치는 아일랜드의 경제경쟁력 강화라는 점. 모임에 참석한 각 계층의 대표들 역시 아헌 총리가 강조한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헌 총리는 지난해 3선에 성공할 만큼 강한 리더십으로 아일랜드의 고성장과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체결에 기여한 인물이다. 6차협약(2002년) 협상 때는 노사정 간 극심한 이견을 빚자 직접 중재안을 제시하고 설득에 나서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페갈 오브라이언 아일랜드기업ㆍ사용자연맹(IBEC) 수석연구원은 “아헌 총리의 리더십으로 사회협약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었다”며 “만약 그가 물러나게 된다면 아일랜드 사회적 파트너십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럽 등 세계 각국의 대타협 사례를 들여다보면 정부 측이든 사용자 측이든 리더십 확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치권이 노사 간 자율적 타협에 의존하지 않고 강력한 추동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노사 지도자들도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조합원과 기업주들을 설득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고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시실리지방의 악습으로 남아 있던 ‘밴데타’를 제시하며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밴데타란 자기 가문의 사람이 다른 가문에 의해 죽음을 당하면 대를 이어 복수를 하는 관행을 일컫는다. 장 교수는 “적어도 뭔가를 시작할 때는 과거를 잊고 ‘제로 베이스’에서 받아들이는, 또 입장을 바꿔 생각한 후에 대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서로 다른 ‘눈높이’을 맞추기 위해 양보하고 설득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사회 대타협이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 초 정권을 잡은 네덜란드 중도우파정권의 뤼드 뤼버르스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국민과 사회에 타협하지 않으면 망할 수도 있다며 협박성(?) 메시지를 날렸다. 뤼버르스 총리가 이 같은 강경자세를 보였던 것은 당시 상황이 워낙 심각했기 때문이다. 방만한 복지 시스템 탓에 경제활동인구 600만여명 중 100만여명이 장해보험으로 ‘놀고 먹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지난달 서울경제 취재진과 만난 그는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국민과 충분하게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정부가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풀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뿐”이라고 전했다. 사회 대타협에 미온적으로 반응하던 노사 지도자도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고용주연합회의 크리스 반빈 회장은 어느날 노총 대표인 빔 콕을 바세나르 저택으로 전격 초청하는 등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들은 협상과정 내내 설득과 타협ㆍ양보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결국 ‘바세나르 협약’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또다시 ‘소통의 정치’의 부재, 리더십의 실종으로 위기가 닥쳐왔다. 2004년 10월 암스테르담에서만 30만여명의 근로자가 시위에 참가했다. 당시 기독민주연합(CDA)을 주축으로 한 연립내각이 사회협약의 기본틀을 무시한 채 연금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노사 간 합의를 주관하는 노동재단의 자니 무어랜 사무국장은 “평생 동안 2004년과 같은 대규모 시위를 본 적이 없다”며 “합의의 틀을 깨고 밀어붙이듯이 추진된 개혁에 국민들은 정책은 물론 정부 자체를 불신하게 됐다”고 전했다. 결국 당시 내각은 퇴진했고 네덜란드에서 사회구성원 간의 대화가 다시 추진됐다. 이들은 서로 양보한 끝에 같은 해 11월 퇴직연금과 퇴직연령에 관한 ‘가을 협약’을 맺게 된다. 리더십 실종이 부른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사회협약이 가능했던 셈이다. 스웨덴이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을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유지해온 데는 발렌베리와 같은 걸출한 기업가의 공만 있었던 게 아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스웨덴의 경우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통찰력과 지도력이 현재의 복지국가 체제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30년대 사민당의 집권으로 힘의 우위를 확보한 스웨덴노총(LO)은 기업 국유화 대신 경영권을 인정해주는 실용노선을 채택, 기업활동을 강력 지원해왔다. 스웨덴 노동조합이 ‘생산성 향상’에 매우 적극적인 점도 이 같은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다. 2차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핀란드의 노조 지도자들 역시 극좌노선 대신 실용적인 계급타협을 실천, 당시 강력했던 공산당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과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만약 핀란드가 공산화의 길을 걸었다면 경쟁력 세계 1위의 복지국가를 건설하지 못했을 게 뻔하다. 페티 파르만네 생산자노총(SAK) 이사는 “1990년대를 이끌던 라우리 이할라이넨을 비롯해 이전 노조 지도자들은 노조만의 이익을 추구한 게 아니라 장기적이고 대승적 정책을 제시하고 설득해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며 “노조 지도자들이 청렴하고 투명한 점도 리더십에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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