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기업이 커야 나라가 큰다] <4> 반기업 정서의 끝은

이익 많이 나도 '삐딱한 시선'…기업들 여론 눈치보기 더 바빠<br>'배아픈건 못참는 정서' 이용, 잘 나가는 대기업에 뭇매 일쑤<br>"기업들이 국부·일자리 창출" 국민 이해 높이기 적극 힘써야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지난 2004년 제프리 존스 당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이 청와대 직원들의 학습모임인 '상춘포럼' 초청강연에서 강조한 말이다. '누구나 생산한 가치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생각을 해야 하며 한국이 부자 나라가 되고 싶다면 우선 돈 버는 것에 대한 기본 정서가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누군가 흥했다면 특수한 내막이 있다고 의심부터 하는 정서는 지금도 별반 변한 게 없다. 무엇보다 최근 최고권력과 그 주변에서 앞다퉈 '공정 사회' 관련 발언을 하면서 일반인의 '배아픈' 정서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기업, 그 중에서도 성과를 내는 이른바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다. ◇실정법보다 무서운 국민여론법=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배 아픈 걸 못 참는 심리가 반기업 정서로 증폭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의 생활물가는 크게 올랐는데 몇몇 수출 대기업들이 사상최대 이익을 달성하자 정치권과 고위관료는 물론 국민들의 정서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실정법 위에 있는 '국민정서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 본업보다는 여론을 살피고 몸조심을 하는 데 더 바쁘게 움직인다. 장관까지 나서 이익이 많이 난 기업을 놓고 "서글프다"고까지 질타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납작 엎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금융위기 직후 벌인 눈물의 구조조정을 통해 어렵게 얻은 성과라는 점을 사회가 알아주길 바라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배 아픈 건 못 참는 정서는 한국 사람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리처드 레야드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연봉 5만달러를 받고 남들은 당신의 절반만 받는 상황과 연봉 10만달러를 받고 남들은 당신의 두 배를 받는 상황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설문 조사를 했다. 응답자들의 대부분은 5만달러를 받겠다고 했다. 남 잘되는 건 싫다는 심리와 함께 상대적인 박탈감보다는 상대적인 우월감을 즐기겠다는 인간 심리를 확인한 조사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복의 상대적 개념'과 '시기심' 등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정서라고 말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데 있다. 글로벌 기업이 된 국내 대기업들이 진보세력의 타도 대상으로까지 배척되고 있는 이면에는 맹목적 평등주의와 과도한 시기심이 깔려 있다. ◇기업역할 이해 높여 반기업정서 없애야=국민 대다수는 소득을 거짓 신고하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탈세를 하고, 부동산 거래 가격을 속이는 등 크고 작은 위법을 한다. 하지만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처럼 도덕 수준이 보통인 대다수 국민들은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자신보다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 같은 질시를 교묘히 이용해 일부 시민ㆍ정치단체들은 자신들만의 은밀한 이익을 위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 그렇다면 건전한 비판을 넘어선 극단적 반기업의 끝은 어디일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결국 기업을 국가기관화한 사회주의 체제가 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진보세력들이 국내 대기업집단을 주적(主敵)으로 삼아 공세를 펼친 것은 이 같은 반기업의 본질과 무관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기업에 대한 비합리적인 반감을 줄이려면 기업역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활동을 통해 나라의 부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역할을 경시하는 사회풍토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과 경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지면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들이 '기업 때리기'로 이익을 취하려 해도 효과를 보기 힘들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시장경제교육의 핵심은 기업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며 "만약 지금의 대기업들이 없던 1960년대로 되돌아간다면 어떨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삼성과 LG그룹의 한 해 매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할 만큼 국가의 재무ㆍ세무ㆍ고용ㆍ투자 모든 면에서 기업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대표적인 수출 산업인 조선업의 경우 인력ㆍ자재 등을 모두 포함한 국산화율은 95%에 이른다. 조선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에 달한다. 현대차와 기아차, 그리고 2,000여 중소 협력업체가 없다면 100만여명의 직간접 일자리가 사라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학자는 "과거 압축 성장기에 독재ㆍ재벌ㆍ졸부ㆍ강남ㆍ비리ㆍ비자금 등의 단어가 어두운 이미지로 함께 묶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됐다"면서 "이젠 기업에 대한 비합리적 시선을 거둬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학자는 이어 "과연 누구를 위한 배 아픔인지를 알아야 한다"면서 "한국 사회도 소득과 행복도가 비례하지 않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작용하는 사회가 된 만큼 남과의 비교를 통한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해야 개인과 사회 모두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도 뼈깎는 자정 노력을"
대기업 비리 잊을만 하면 터져
책임·윤리경영으로 쇄신 나서야
회장님과 사모님은 요즘도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배역이다. 정경유착을 일삼는 오만한 회장님, 사치와 허영에 눈이 먼 사모님 캐릭터는 수십년 동안 그대로다. 지난해 말 오명환 용인송담대 교수가 흥미로운 분석 보고서를 냈다. TV드라마가 지난 1980년대부터 재벌을 오만하고 거만한 인물로 표현하면서 반기업정서를 조장하고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다. 왜곡된 이미지가 반기업 정서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오 교수는 이에 대한 해소책도 제시했다. 언뜻 생각하면 잘못된 드라마를 시정하자는 주장만 했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극복 방안의 하나로 조선시대 경주 최 부잣집의 '여섯 가훈'의 실천을 들었다.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않는다'에서 정경유착 금지를, '새색시에게는 3년간 무명옷을 입힌다'에서는 근검절약 정신을 배우라고 제시한 것. 이 주장에는 기업인 스스로 자성하라는 보다 근원적인 반기업정서 근절책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 비리는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연례행사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태광그룹ㆍC&그룹 등에 대한 검찰 수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 대다수는 지난 반세기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정경유착의 특혜를 받아 급성장했다는 한국 대기업들의 과거를 '현재형'으로 인식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모습들이 '기업=비리집단'이란 빌미를 제공하면서 기업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면서 "반기업 정서가 왜 생겼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가진자'에 대해 평균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민정서법도 엄연한 반기업환경 중 하나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대기업에는 준법 이상의 도덕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여론이다. 옳든 그르든 이것이 대한민국의 기업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것이란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반기업 정서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 잔재를 털어내고 도덕성을 높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국민들이 기업에 가장 크게 실망하는 점은 과거의 관행에 안주하다가 외부의 충격이 와야 인식과 시스템을 바꾸는 후진성이다. 검찰 수사 등 사법처리를 받고서야 마지못한 듯 나서는 자정노력이나 경영혁신은 반기업 정서란 중병에 '사후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책임경영도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 단순히 떠밀려 하는 윤리경영으로는 성장은 물론 생존조차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단순한 자선활동이 아니라 경영과 마케팅의 전략적 차원에서 사회책임경영을 실행해야 한다는 경영이론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가정신이 약해진 점도 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글로벌 기업으로 뻗어나가 세계 굴지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상당수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손쉬운 장사에만 맛을 들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도전정신이 부족한 게 작금의 현실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지식을 이용해 알려지지 않은 이윤기회를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인은 존경의 대상이지 반기업의 표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유동운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발전 초기에 활발했던 기업가정신이 현재는 많이 퇴보됐다"며 "기업가정신이 발휘돼야 성장과 혁신,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고 자연스레 반기업정서도 수그러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