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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도입됐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금리인하요구권에 대해 금융계가 모범규준을 만들어 활성화에 나선다. 금융감독 당국이 최근 은행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이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데 대한 화답이기는 하지만 금리인하요구권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하고 이를 대출자에게 알리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상당수의 고객이 금리인하의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더 나아가 금융감독원은 카드대출자에 대해서도 대출금리를 깎을 수 있는 기준도 마련, 내년 3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전날 이사회를 열어 금리인하요구권과 금리 공시 등을 담은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의결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취업이나 연봉상승 등 신용등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변화가 생겼을 때 고객이 신용대출 금리를 내려달라고 제안할 수 있는 권리다. 도입 10년이 됐지만 이용 실적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지난해 한 해 동안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해 금리를 낮춘 사람은 349명에 불과하고 2008~2010년에도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한 대출자도 357명(연평균)에 그쳤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자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솔직히 고객들에게 일일이 알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인대출자 7가지, 기업대출자 4가지로 명문화=은행들은 이번에 제정된 모범규준을 내규에 반영해 금리인하 요구 기준을 통일하고 제도도 적극적으로 알려 정착시키기로 했다. 개인대출자는 7가지, 기업대출자는 4가지 경우로 구체화했다. 예를 들어 개인은 ▦취업 ▦승진 ▦소득 증가 ▦신용등급 개선 ▦전문자격증 취득 ▦우수고객 선정 ▦재산 증가 등 7가지 경우에 해당하면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다만 "전문 자격증의 범위 등 세부사항은 은행들이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은 ▦회사채 신용등급 상승 ▦재무상태 개선 ▦특허취득 ▦담보제공 등 4가지다.
은행들은 이와 함께 대출금리를 세분해 내년부터 매월 은행연합회 홈페이지(www.kfb.or.kr)에 공시하기로 했다. 주택담보대출, 개인신용대출, 중소기업 운전자금 신용대출, 중소기업 운전자금 담보대출 등 유형별로 나눠 공시된다. 또 신용등급별 대출금리(기준금리와 가산금리)도 1~3등급, 4등급, 5등급, 6등급, 7~10등급 등 등급별로 공개하기로 했다. 변동금리 대출자의 금리 변동 주기가 돌아오면 이를 통보하는 '금리변동 알리미 서비스'도 도입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리인하요구권과 금리 비교공시가 정착되면 고객은 실질적인 금리인하 혜택을 보거나 금융정보 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대출 금리인하요구권도 내년 3월 도입=카드업계도 금융 당국과 '카드론·리볼빙결제·체크카드·선불카드'의 표준약관을 제정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금리인하 요구권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금리인하요구권, 이용한도 증ㆍ감액 절차, 이용 전 동의절차 등을 담은 카드론 표준약관을 만들 예정이다 표준약관이 제정되면 신용등급이 오르거나 급여ㆍ자산이 늘어나는 등 대출자의 신용도가 높아지면 카드사에 카드론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만기 1년 이상 장기대출에만 적용된다. 김영기 금감원 상호여전감독국장은 "카드론 대출금의 57%가 만기 1년 이상이어서 금리인하를 요구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론 표준약관은 올해 말까지 시안을 마련, 관계 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내년 3월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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