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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제언] 관료 밥그릇부터 깨야 규제 사라진다

정부선 개혁·혁파 강조해도 규제 사라진 부처는 힘못써

관료들 매번 새로 만들어내… 지난 4년 하루 1.6개꼴 생겨<br>뚝섬 110층… 대한항공 호텔… 부처마다 목소리 달라 번번이 제동<br>朴 '규제는 원수' 비장 발언에 기업 "그렇게 해도 될까 말까"




"어떤 규제를 없애는 게 좋겠냐고 기업보고 리스트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규제를 못 없애요. 일의 앞뒤가 잘못됐어도 한참 잘못됐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는 암적인 존재'라는 발언이 화제가 된 12일 한 대형 금융회사 회장은 사석에서 "규제의 칼을 쥔 관료들에게 어떤 간 큰 기업이 '이 규제를 없애달라'고 요구하겠냐"며 지금의 규제개혁 시스템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관료들 스스로가 규제혁파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그 뒤 기업에 자문을 구해야 규제를 없앨 수 있다"면서 "진정으로 규제를 없애고 싶다면 관료들 스스로 규제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를 놓고 관료들이 자기 밥그릇 싸움만 하기 바쁜데 어떻게 규제가 사라지느냐는 것이다. 결국 규제를 없앨 수 있는 지름길은 관료들의 밥그릇 혁파라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이 연일 강도를 높여가면서 "규제는 원수다(10일)" "아들딸 시집장가 보내는 마음으로 규제를 개혁해달라(12일)"고 연일 규제혁파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정작 일선 기업인들은 관료들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없어지는 규제는 다시 그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규제의 통계만 보더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부터 '전봇대-손톱 밑 가시-원수-암덩어리' 등 말의 성찬만 있을 뿐 규제는 오히려 늘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5,114건이던 규제 총량은 '전봇대를 뽑겠다'는 이명박 정부 때 오히려 급증했다. 2009년에는 규제가 1만2,905건으로 크게 증가했고 △2010년 1만3,417건 △2011년 1만4,082건 △2012년 1만4,889건 △2013년 1만5,269건 등으로 전혀 줄지 않았다.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사이 규제는 2,364건이나 늘었는데 하루 평균 1.6건씩 규제가 새로 생겼다.

현 정부의 규제혁파 움직임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것도 이 같은 경험 탓이다.

건별로 규제를 없애겠다고 하지만 '진짜 없어진 다음에야 믿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것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모두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어땠나"라며 "박 대통령이 연일 규제를 없애자고 말을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별 기대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도 "관료가 존재하는 한 규제는 절대 줄지 않는다. 규제는 곧 부처의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인데 관료들은 경험을 통해 이를 잘 안다"고 전했다. 결국 규제를 쥐고 있는 관료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규제혁파는 허언'이라느 얘기다. 힘을 상징하는 규제를 어떻게 놓겠냐는 것이다.

기자와 만난 한 정부 고위관료의 발언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를 한번 보시라. 과거 상공부 시절에만 해도 엄청 힘이 센 부서였다. 규제도 많았지만 기업들을 지원할 돈도 쥐고 있었다. 기업체 사장들이 과장들에게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산업부는 규제가 없다. 돈도 연구개발(R&D) 지원자금을 빼고는 없다. 결과가 어떤가"라고 푸념했다.

규제가 사라진 부처는 제아무리 덩치가 커도 힘이 없라는 얘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관료들이 제아무리 규제를 개선하라고 해도 새로운 규제를 꺼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규제를 없애겠다는 관료들의 발언에 대한 불신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기업들이 보인 불신의 모습은 현재 상황을 그대로 투영한다. 신원섭 산림청장이 "육상 풍력발전소 건설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중소기업의 한 사장은 "말씀을 그렇게 하는데 잘될지 모르겠다"고 반응했다.

대통령 앞에서 청장이 약속을 했음에도 환경부 등이 반대하면 그 사업은 다시 표류될 게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은 "'한 정부 두 목소리'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까지 넘어야 할 벽은 너무 많고 부처마다 목소리도 달라 장단을 맞출 수 없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다음달 전세계에서 동시에 선보일 삼성전자의 갤럭시S5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갤럭시S5는 심박센서가 탑재돼 있다. 문제는 의료기기법상 심박센서가 탑재되면 의료기기로 분류된다는 것. 갤럭시S5를 국내에서 팔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더욱이 의료기기는 통상 허가를 받는 데 최소 반년 이상 소요된다. 갤럭시S5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기 힘들 뿐더러 국내의 규제 때문에 경쟁에서도 밀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뿐 아니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은 수도권 규제에 묶여 증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서울 송현동 '복합문화시설(호텔 포함)' 건설은 학교보건법에 막혀 있다. 정부가 직접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서울시가 학교보건법을 이유로 허가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서울 성수동 뚝섬에 짓겠다고 했던 110층짜리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은 결국 무산됐다. 2조원의 투자가 날아간 셈이다.

규제혁파 가능성에 대한 신뢰는 낮지만 그래도 재계는 이날 '암덩어리 규제' 94개를 건의했다. 보건분야부터 △의료 △문화 △관광 △금융·보험 등까지 5개 분야다. 재계는 "창조경제 시대에 부응하도록 서비스 산업의 신사업 창출을 저해하거나 낡은 규제, 타 산업과의 융합을 저해하는 규제들을 담았다"면서 "이번에는 시급히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간곡히 요청했다.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물론 규제혁파를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한 풍력발전 사업자가 회의 말미에 "규제를 완화해준다니 대단히 감사하지만 이 자리를 나가서도 잘 지켜질지…"라며 실천에 의구심을 나타내자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정말 사생결단하고 (이 문제에) 붙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즘 대통령이 규제에 대해 그렇게 강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는데 오늘 말씀을 들어보면 그것이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쉽게 생각하고 툭툭 규제를 던져놓는데 개구리는 거기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며 "우리가 성장해야 하는데 규제라는 암을 안고 좋다고 사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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