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모펀드(PEF) 간 진검 승부가 펼쳐진다. 지금까지는 투자금액 규모가 PEF 평가의 핵심 잣대였다면 올해부터 자금 회수가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실제로 투자자들에게 얼마만큼의 성과를 돌려줬느냐에 따라 PEF를 바라보는 시장의 눈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운용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PEF라도 투자회수(exit) 실적이 좋으면 시장의 재평가를 받으면서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자금 모집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반면 대형 PEF라도 실제 회수 실적이 나쁘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IB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시중에 잘 알려진 대형 PEF 들 가운데 몇몇은 부진한 투자회수 실적 탓에 시장 평가가 이미 끝났다"면서 "펀드의 만기가 대거 도래하는 올해부터 PEF 업계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부터 2017년 2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PEF 규모(설정액 기준)는 총 18조2,400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올해 10조9,500억원(42곳)을 비롯해 2016년 2조8,300억원(23곳), 2017년 4조4,600억원(38곳) 등이다. MBK파트너스가 1조원 규모로 설정한 PEF인 MBK파트너스사모투자전문회사는 내년 6월30일이 만기다. 7월23일에는 하나마이크론과 메가스터디 등에 투자한 H&Q의 PEF(3,725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보고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펀드 두 곳(보고제2의1·2호펀드)의 만기는 올해 9월23일이며 대우건설 최대주주(50.75%)인 산업은행 KDB밸류6호펀드(2조7,500억원)와 맥쿼리오퍼튜니티즈(1조2,142억원)의 만기는 올해 10월28일과 12월31일이다.
이들 펀드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8~2010년 PEF들이 경쟁적으로 출연하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설립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 시기에 설립된 PEF는 186개, 약정규모만 34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올해부터 만기가 도래하면서 자금 회수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워낙 만기가 한꺼번에 몰려 있는 탓에 투자 회수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MBK파트너스는 지난 2007년 맥쿼리와 함께 인수한 씨앤앰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MBK 등 대주주 측은 인수 당시 투입한 자금 이상을 원하는 데 반해 시장에서는 IPTV 보편화 등으로 C&M의 시장 가치를 예전처럼 평가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H&Q 역시 메가스터디 출구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펀드 만기에 쫓겨 급하게 자산을 처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최근 맥쿼리PE가 한국멀티플렉스투자(KMIC)의 메가박스 지분 50%를 제이콘텐트리에 8년 전 투자금과 동일한 수준에 되판 게 대표적이다. 제이콘텐트리는 지난달 21일 공시를 통해 KMIC의 지분 95.8%를 1,520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KMIC는 맥쿼리PE와 행정공제회·군인공제회·국민연금 등이 영화관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회사(SPC)로 2007년에 미디어플렉스와 영국계 PEF 핀벤처스가 보유한 메가박스 지분 전체를 1,456억원에 사들였다. KMIC는 투자금의 원금 수준만 되돌려 받게 된 것이다. 메가박스 인수를 위해 들여온 차입금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에 맥쿼리PE와 연기금은 별도의 배당금도 받지 못했다. 메가박스 투자에 참여한 연기금의 고위관계자는 "투자원금이라도 되찾은 것은 다행이지만 8년의 투자기간 동안 발생한 각종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결국 손해를 본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맥쿼리PE 측 관계자는 "2011년부터 메가박스 경영에 개입하면서 씨너스와의 합병을 이끌어내는 등 기업가치를 제고한 덕분에 원금은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만기 시점이 몰려 있다고 PEF들이 투자회수에 어려움만 겪는 것은 아니다. 오는 6월14일 만기가 도래하는 IBK펀드는 2013년 4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2,200억원에 매각해 투자금 일부 회수한 데 이어 금호고속 매각 협상에도 성공하며 4,150억원을 회수할 예정이다. IBK펀드는 대우건설 지분 매각이 남아 있지만 금호고속 매각을 성공적으로 마쳐 펀드의 내부 수익률 10~15% 정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기금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7월 보고펀드의 LG실트론 투자실패와 H&Q의 에스콰이어 법정관리 신청은 국내 PEF 업계의 변화하는 흐름을 잘 보여준다"면서 "앞으로는 이름값보다 실제 기록한 성과에 따라 PEF 업계의 순위도 크게 요동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