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주가가 상승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을 꼽는다면 저금리를 들고 싶다.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효과를 빼놓고는 주가 상승을 설명하기 어렵다. 경기 정상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미국도 회복 강도가 그리 강한 것은 아니다. 2013년 미국의 GDP 성장률은 1.9%에 머물렀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2% 내외에 불과하다.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성장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요 주가지수들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저금리 효과가 아니고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 3년 간의 부진한 기업실적 하에서도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 내외의 박스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우호적인 글로벌 유동성의 엄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공급 기대가 커지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유럽의 경제지표들은 부진하다. 대표적 경기선행지표인 제조업PMI가 반락하고 있고, 주요국의 물가상승률이 둔화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그동안 유럽 경기를 지탱해왔던 독일마저도 경기 확장세가 꺾이고 있다. 이래저래 ECB는 추가적인 유동성 확장정책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대로 주가가 오르고 있다.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이 지속되고 있지만 실물 경제의 회복은 더디다. 늘어난 유동성의 수혜를 받고 있는 것은 자산시장이다.
자산가격이 계속 오르다보니 버블에 대한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영란은행의 마크 커니 총재는 영국 주택 시장의 버블 형성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IMF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급등을 우려하고 있고, 하이일드(고위험) 채권 투자에 대한 위험이 경시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도 미국의 SNS와 바이오 주식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자산의 가격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의 경고는 모순적이다. 중앙은행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저금리 환경이 자산가격을 끌어올리는 주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자산 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는 주요 중앙은행들의 태도 변화다. 중앙은행의 정책이 긴축 지향으로 바뀌면 글로벌 자산시장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아직 경기 정상화까지 갈 길이 먼 ECB는 계속해서 유동성을 풀어내야 하겠지만, 미국과 영국은 중앙은행의 스탠스가 바뀔 수 있다.
미국이 가장 중요할텐데 10월 즈음이 통화정책 변화와 관련해 의미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금융시장의 컨센서스는 미국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고용 회복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난 8월 말에 열렸던 잭슨홀 미팅에서 재닛 옐런 의장은 기존과는 다소 다른 성격의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옐런 의장은 '경기순환적 실업'과 '구조적 실업'을 구별했다. '경기순환적 실업'은 개선될 여지가 있는 실업이다. 금융위기 이후 일시적으로 나빠진 경기 상황 때문에 발생한 실업을 경기순환적 실업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실업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조짐이 있더라도, 중앙은행은 꾸준히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시적인 물가 불안 때문에 금리를 빨리 올리면 고용 시장의 회복세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구조적 실업'에 대한 내용이다. 옐런은 구조적 실업에 대해 일시적 현상이 아닌 기술의 진보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로 해석했다. 이미 오래 전에 화두가 됐던 '고용 없는 성장'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으로,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은 구조적 실업을 해결하는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게 옐런의 주장이었다. 이 경우 중앙은행은 고용지표 개선에 연연하기 보다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움직여야 한다고 봤다.
잭슨홀 연설 이후 금융시장은 미국의 통화정책이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안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해석은 구조적 실업에 대한 연준의 입장을 너무 경시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10월이면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이 끝난다. 과거에도 1~2차 양적완화가 종결된 직후 금융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연준도 인정한 것처럼 미국 물가는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고용이 문제이지만, 잭슨홀 연설을 통해 연준은 고용의 가시적 회복 없이도 통화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4·4분기부터는 미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순항하던 글로벌 증시에 암초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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