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020원에 바짝 붙은 원·달러 환율은 1,000원선까지 지속적인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오는 5일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통화완화책이 발표될 경우 선진국 자본의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유입에 따라 원화 강세에는 더욱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50원선을 방어할 때마다 유로존 위기, 신흥국 위기, 북한 리스크 등 당국을 '지지'하는 요인이 많았지만 현 상황은 원고 흐름을 바꿀 뾰족한 외부요인이 없다시피 하다. 외환 당국이 나 홀로 환율을 떠받쳐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 5월 한 달간 환율방어에 약 8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시장이 당국의 개입 강도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당국 의지 따른 계단식 하락 이어질 듯=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원·달러 환율 1,020원선이 뚫리면 1,000원선까지 내려가는 속도는 외환 당국 의지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당국의 방어 의지에 따라 지지선이 생겼다 뚫렸다를 반복하는 계단식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계절적 수출 호조, ECB의 추가 완화책 발표, 외국인의 원화자산 투자 등으로 추가적인 하락 시도에 나설 것"이라며 "다만 1,000원선을 놓고 외환 당국이 속도 조절에 들어가면서 하락 속도는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당국이 강도 높은 개입을 한다고 해도 환율 방향까지 틀어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시장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반기 원화 약세가 예상되는 상황이라 실효성 또한 낮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국이 개입을 통해 원·달러 환율을 올려놓으면 수출기업이 기다렸다는 듯 달러를 매도해 환율이 제자리로 갈 텐데 개입비용 대비 효과가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원·달러 환율 세자릿수 진입할까=원·달러 환율 하락이 지속되더라도 세자릿수까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완료되고 금리 인상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달러 강세 전환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는 테이퍼링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1,000원선을 바닥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외환 당국도 하반기에 약달러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당국이 한 달간 20원(1,020원-1,000원) 정도는 막을 수 있다. 6월 중 1,000원 아래로 내려갈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수출 채산성에 대한 부담이 커진 상태라 외환 당국이 환율방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6월 중 환율이 세자릿수까진 가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하반기엔 일시적으로 세자릿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에 따른 원·엔 재정환율 부담은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 엔화 약세가 재개되고 원·엔 환율 1,000원 하향돌파에 따른 한국 경제의 부담이 다시 한번 불거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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