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봉과 보신주의로 대표되는 금융권은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노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산별단체협약을 열어 총액임금 기준 인상률 2.0% 등의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관련 안건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산별협상에서 매듭지어야 할 사항을 각 은행 지부로 넘겨버렸다.
노조 측은 임금 삭감 없는 60세 정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정년을 만 62세로 보장해야 한다는 무리한 요구까지 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6일 "산별노조라며 임금은 같이 올리고 복지 축소는 못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빠져버리는 행태는 문제가 있다"며 "금융권은 고임금이면서 52~53세면 희망퇴직하는 관행이 있는데 임금피크제 도입 없이 정년만 늘어나면 근로자는 정년 연장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회사도 명예퇴직금만 늘어나게 돼 양쪽 모두에게 손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은행권의 임금구조는 성과와 관계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올려주게 돼 있어 과도한 인건비가 발생하는데다 중간간부가 많은 '항아리형' 인적구조로 인사적체가 심각하다. 더욱이 저금리로 은행의 이익이 정체 상태인 가운데 정년만 연장할 경우 인건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은행 18곳 가운데 신한·SC·씨티·농협·대구·부산·제주은행 등 8곳의 은행들이 아직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관련 기관과 계열사까지로 범위를 넓히면 금융결제원과 감정원·KB카드·우리카드 등 36개 지부 가운데 20개에 달한다.
현재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은행연합회와 하나은행·국민은행·기업은행 등 16개 지부에 그치고 있다. 이들은 정년을 60세로 늘리되 55세부터 퇴직 전까지 정해진 임금지급률에 따라 임금을 받게 된다.
그나마 국내 대기업들은 사정이 조금 낫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LG화학·두산중공업·현대건설 등 30여개 주요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전 계열사가 오는 2016년 1월부터 만 55세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56세부터는 10%씩 임금을 줄여나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확정했다. SK텔레콤과 LG화학은 정년을 각각 58세에서 60세로 늘리는 대신 2년간 전년 대비 10%씩 임금을 줄이기로 했다.
이에 반해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노조가 조건 없는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거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구인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계도 숙련된 근로자를 잡으려면 임금피크제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다. 이장원 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소장은 "임금피크제 도입이 임금을 깎자는 것이 아니라 청년 신규 일자리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해보자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노동계는 고용안정과 임금비용을 맞교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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