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본문 중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앨리스 먼로가 지난해 출간한 최신작이자, 그녀가 절필을 선언하기 전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작품 '디어 라이프(Dear Life)'의 한 구절이다. 82세의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답게 '디어 라이프'는 기존 그녀의 어떤 단편집보다 강하며 섬세하고 아름답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14편으로 엮은 '디어 라이프'의 단편 대부분이 작가의 고향인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그 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삶과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는 먼로의 시선은 더욱 깊어졌고, 삶과 인간에게 보내는 그녀의 애정 또한 보다 따뜻해졌다. 그리고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서사의 힘은 더욱 강렬해졌다.
'디어 라이프'에서 먼로가 주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기억'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를 반추하며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히게 하거나 반대로 의기양양해지게 만드는 기억의 효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것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깨달음이 주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신문이나 각종 자료들을 쌓아두며 지나간 시절에 집착하거나('기차'), 기억을 되찾고 기억력을 점검하기 위해 심리상담가와 의사를 찾아가기도 한다('자갈', '호수가 보이는 풍경'). 하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좌절되고 만다. 작가는 기억하려 애쓰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비극은 비극대로 행운은 행운대로 그저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면 또다시 살아갈 수 있으니 되돌아보지 말라고 조용히 충고한다.
상실 역시 또한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부유했던 시절은 지나가고('자존심'), 사랑은 사라진다('아문센' '코리' '기차'). '자갈'의 화자와 '메이벌리를 떠나며'의 레이는 각각 언니와 아내를 잃는다. 하지만 지나온 궤적을 바라보며 상실감을 절감하면서도 작가는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찰나의 깨달음을 담아내는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력은, 팍팍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안식과 위로를 선사한다. 1만 3,5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