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chal Lev-Ram
브래드 키웰은 필자에게 시카고의 카브리니 그린 Cabrini-Green 주변을 안내했다. 미국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이 도시의 중심부에서 진행된 실패한 공영주택 프로젝트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볼 것이 많지는 않다. 한때 1만 5,000명의 빈민층 - 대부분이 흑인이었다 - 이 살았던 마지막 고층 빌딩은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이뤘던 건물 중 한 곳이었다. 수십 년에 걸친 실패한 통합 노력을 떠올리게 한 이 빌딩은 2011년에 철거되었다. 조직 폭력의 온상이었던 인근 지역에는 현재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몇 블록을 지나도 볼 수 있는 차량은 우리가 타고 있던 우버 SUV가 전부였다. 1994년부터 시카고에서 살아온 키웰이 기사에게 우회전을 해 달라고 요청했고, 우리는 문이 잠긴 3층 연립주택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가볍게 흩날리는 눈이 벽돌 건물의 진회색 지붕을 덮고 있었다. 이 건물은 1940년대에 지은 것으로, 한때 악명 높았던 주택 프로젝트의 유일한 잔재이다.
황량한 1월의 풍경은 따뜻한 차 안에서 봐도 추워 보였다. 그러나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인 키웰은 카브리니 그린을 기회가 가득한 곳으로 보고 있다. 그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커다란 파란 눈을 반짝거리며 거리의 다소 새로워 보이는 혼합 복지형 주택단지를 가리켰다. 그는 "보입니까? 이제 시작일 뿐이죠"라고 말했다.
탄탄한 체형에 머리가 벗겨지고 열정적인 키웰은 두 가지 상반되는 모습을 갖고 있다. 활동적이면서도 깊은 사색을 즐기는 듯하다. 그는 매일 명상을 하는데, 스승은 다름 아닌 유명한 대체 의학자 디팍 초프라 Deepak Chopra다. 또 근처 시카고 로욜라 대학교(Loyola University Chicago)의 교수로부터 격주로 일대일 철학 강의를 듣는다. 깃 없는 긴소매 셔츠를 입고 진청색 비니를 쓴 그는 마치 샌프란시스코 소마 SOMA 시위대에 참여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9개의 최첨단 기술 기업을 창업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왜 직접 회사를 운영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기업 운영은 당시 키웰의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수차례에 걸친 장시간의 인터뷰 도중 "다들 왜 실리콘밸리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키웰은 뼛속까지 중서부 출신으로, 세컨드 시티 Second City *역주: 시카고의 속칭의 위대함을 믿는 사람이다. 그의 믿음은 아마 복사 *역주: 사제의 예식집전을 보조하는 평신도와 광신도 중간쯤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의 거점인 오대호 지역보다 베이 에어리어 Bay Area에 더 특별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코웃음을 친다. 키웰은 팰로 앨토 Palo Alto나 새너제이 San Jose 지역이 보유한 인재나 아이디어, 심지어 그 이상을 시카고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키웰과 벤처 캐피털 기업 라이트뱅크 Lightbank의 파트너들은 이를 입증하고자 이 윈디 시티 Windy City *역주: 시카고의 또 다른 속칭의 수많은 기업들을 지원해 왔다. 지금까지 라이트뱅크가 투자한 91개 신생 기업 중 3분의 1이 시카고나 그 주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올해 45세의 창업가에게 이 투자는 수백만 달러짜리 도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카브리니 그린의 연립주택을 지나 몇 분 뒤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카고 강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125만 제곱 피트짜리 건물이었다. 1872년 건설된 이 빌딩은 지금은 문을 닫은 소매업체 몽고메리 워드 Montgomery Ward의 주 창고로 쓰였다. 키웰의 다양한 벤처기업들 - 약 4,40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 의 본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에는 그의 오랜 투자 파트너 에릭 레프코프스키 Eric Lefkofsky와 공동 설립한 벤처 펀드 회사 라이트뱅크가 있고, 운수사업 소프트웨어 제공업체 에코 글로벌 로지스틱스 Echo Global Logistics도 위치해 있다. 세계 유명 리더들이 모이는 연간 행사인 시카고 아이디어 위크 Chicago Ideas Week를 개최하는 단체도 자리 잡고 있다(지난해 이 행사에 3만 2,000명이 다녀갔다).
당연히 키웰이 설립한 가장 유명한 기업 그루폰 Groupon도 이곳에 있다. 그루폰은 그가 레프코프스키, 앤드루 메이슨 Andrew Mason과 함께 설립한 일일거래(daily-deal) 웹사이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유명한 회사가 그루폰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 - 대다수가 시카고인이다- 은 키웰이 그의 존 바바토스 John Varvatos 셔츠 소매 안에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바로 업테이크 Uptake라 불리는 기업으로, 시스코 Cisco의 CEO 존 체임버스 John Chambers의 말대로라면 19조 달러의 기회가 걸린 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키웰은 업테이크가 사물인터넷을 선점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목표는 너무 기상천외한 생각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우습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업테이크의 규모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자금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100명의 직원이 세계에서 가장 다각화된 제너럴 일렉트릭 General Electric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세계에서 27번째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GE는 기관차부터 유방 X선 촬영기계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사물인터넷 사업에 10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다. 두 번째는 키웰의 창업 능력이 입증됐다 하더라도, 그의 경영능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마크 저커버그 Mark Zuckerberg나 제프 베저스 Jeff Bezos, 페이지 Page나 브린 Brin *역주: 구글의 공동 창업자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기술업계 내부 인사들은 브래드 키웰이 차세대 주자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B2B나 클라우드 컴퓨팅이 업계용어로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기업이 매우 고조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물인터넷은 워낙 불명확한 개념이기 때문에, 숨 막힐 정도의 최상급 표현과 언뜻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들로 점철되어 있다. 500억 개의 장비들이 2020년까지 사물인터넷에 연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컴퓨터의 운영 효율성과 관련된 엄청난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들이 전송돼 분석될 것이다. 이 용어는 정의도 매우 광범위하다. 피트니스 트래킹 fitness-tracking 밴드부터 1회전마다 엄청난 양의 실시간 데이터를 전송하는 제트 엔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GE가 산업인터넷이라고 부르는 제트 엔진은 기업에겐 어마어마한 노다지나 다름없다.
전 세계 기업들은 이 애널리틱스 *역주: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분석하는 기술 에 거금을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주요 기계에 발생할 수 있는 유지보수 문제를 미리 방지하고, 위기상황을 모면함으로써 비용을 더 많이 절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키웰은 최대 출력의 피치 모드에 걸린 고에너지 장비처럼 열을 올리며 말했다. "계획에 없는 다운 타임 *역주: 고장으로 기계나 장치 등이 쉬는 시간 을없애는 것이 산업 인터넷이 지향하는 바다. 이를 통하면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억 달러의 매출과 이윤 증대도 이룰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업테이크는 비밀리에 알고리즘 모델을 구축하는 등 사업을 매우 은밀하게 전개해 왔다. 이 모델은 여느 애널리틱스 시스템과는 달리, 탐색 데이터 저장 단계에서 다양한 탐색 업무를 처리한다. 키웰은 "이 플랫폼의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바로 데이터에서 찾은 '신호'를 필요한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피오리아 Peoria 근교에 위치한 캐터필러 Caterpillar의 CEO 더그 오버헬먼 Doug Oberhelman은 "전 세계에서 매일 작동되는 약 300만 대의 기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고장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에 이 모든 기계에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캐터필러는 키웰이 자신 있게 소개하는 업테이크의 최초 (그리고 유일한) 고객이다. 이 두 CEO는 몇 년 전 데이비드 캐머런 David Cameron 영국총리가 개최한 시카고 지역 조찬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들은 빠르게 친분을 쌓으며 파트너로 새 벤처사업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캐터필러 외에도 업테이크는 키웰의 벤처 캐피털 기업 라이트뱅크로부터도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두 기업의 엔지니어들은 몇 달간 함께 캐터필러의 채굴 및 건축 기계의 문제점을 보완할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렸다. 캐터필러가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3~5년이 소요된다. 북극 및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에서도 작동하는 불도저를 설계하는 건 엄청난 일이다. 반면 업테이크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며칠 혹은 몇 주 정도면 충분히 설계할 수 있다.
오버헬먼은 "이 사업에서 우리가 흙을 파내고 동력을 공급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면, 브래드는 소프트웨어와 기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이 두 장점을 합친다면,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키웰은 "불도저 및 유압식 굴착기 생산 기업뿐만 아니라 보험, 자동차, 의료 기업들과도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기술적 문제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GE가 이미 많은 산업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이다. 매출이 1,490억 달러에 달하는 이 대기업은 모든 자금을 동원해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영역까지 장악하려 하고 있다. GE의 CEO 제프 이멜트 Jeff Immelt는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회사에 꼭 필요한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몇 년 전 이멜트는 주가 하락을 겪으면서 GE의 가장 큰 위협이 제조업체가 아닌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세계 중장비의 상당수를 생산하는 GE는 이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깜깜했다. 그러다 보니 재빠르게 GE 고객들에게 접근해 서비스를 판매하는 약삭빠른 기업들에 역전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멜트가 내린 결론은 샌프란시스코 동부에서 30마일 떨어진 교외 지역 산 라몬 San Ramon에 거대한 소프트웨어 센터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GE는 현재 1조 달러짜리 장비에 설치된 1,000만 개의 센서가 보내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이 센터에서 개발된 다양한 소프트웨어 및 데이터 상품을 통해 연 매출 11억 달러 이상을 올린 바 있다.
GE 소프트웨어 센터장 빌 루 Bill Ruh는 "기계를 연결하는 건 요즘 엄청난 화두다. 우리는 전례 없는 규모로 사업을 진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이미 엄청난 고객들을 끌어모았다. 고객 중에는 유나이티드 항공과 BP도 있다. 지난 3월 GE는 인텔, 시스코 시스템스 Cisco Systems, AT&T 같은 업계 거물들을 파트너로 끌어들여 '산업 인터넷 동맹(industrial Internet alliance)'을 발표한 바 있다. 인텔은 차세대프로세서로 프리딕스 Predix라 불리는 GE의 플랫폼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멜트는 지난해 가을 기업행사에서 "GE를 시작으로 다른 기업까지 확대될 것이다. 우리우리는 내부에서 개발한 플랫폼을 사용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 플랫폼을 GE가 아닌 다른 기업의 고객 및 산업에도 공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키웰은 이 발표에 당황한 것 같지는 않다. 또 그를 잘 아는 시카고 CEO들의 자신감이 하락할 것 같지도 않다. 스타콤 미디어베스트 그룹 Starcom MediaVest Group - 키웰이 창업한 미디어오션 Mediaocean의 초창기 고객이다 - 의 CEO 로라 데즈먼드 Laura Desmond는 "키웰이 이러낸 것들을 보면, 그가 점점 더 큰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 배운 점들을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키웰과 함께 일해본 사람이라면, 그가 공동 설립한 기업을 통해 배운 교훈을 업테이크 사업에 적용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기술에 대해 잘 알고, 비즈니스 모델에 세심하며, 마케팅 능력이 뛰어나다. 여기서 문제는 그가 다양한 신생 기업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배웠는지, 혹은 참여가 부족하진 않았는지 여부다. 그가 실제 경영자로 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그와 투자자들은 키웰이 창업한 기업들을 통해 수억 달러를 벌었지만, 그는 어떤 기업에도 장기간 머무른 적이 없다. 더구나 최소한의 실무관리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접근 방식은 최근의 벤처기업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치솟고 있는 금융 지분, 고착화한 경쟁, 그리고 업테이크와 GE 및 기타 회사들이 잡고자 하는 보수적인 기업고객들을 고려했을 땐 더욱 그렇다.
키웰은 다음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내가 그동안 거쳐온 기업들과 비교해 업테이크에 상대적으로 오래 경영진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랜 사업 파트너였던 레프코프스키 역시 이에 동의한다. 그는 "업테이크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하고, 더 큰 무대에 서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키웰은 이 사업에 더 오래 전념할 것이다"고 말했다.
키웰은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Loyola Marymount University) 강연에서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끝없는 갈증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럴 때 나는 말은 쉬워도 해내긴 어려운 일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필자는 키웰을 시카고의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 - 유명한 매그니피센트 마일 Magnificent Mile의 조용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 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혼자, 혹은 동료들과 함께 매일 같은 아침 식사를 한다. 과일과 요거트를 곁들인 그래놀라를 먹고 커피를 마신다. 키웰은 시카고 출신이 아니다. 그는 디트로이트 북부 교외 지역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사 출신의 전업주부였고, 아버지는 법인 고문 변호사였다. 키웰은 6세 때부터 창업가 기질을 보였다. 그는 직접 카드를 디자인해 1달러를 받고 친구들과 이웃들에 판매했다(키 크리에이션스 KeyCreations라는 귀여운 이름의 회사였다). 그는 미시간 대학에 진학해 학사학위를 받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재학 당시 그는 가이드북과 포스터를 판매해 높은 이윤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쉬지 않고 사업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수요를 찾아 채우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것을 외에도 그는 타고난 세일즈맨이었다. 특히 자신을 홍보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그는 대학 신입생 시절 대학원생들을 위한 창업 수업을 들었다. 수강하고 싶어 교수를 찾아가 설득했다. 하루는 시카고 사업가 샘 젤 Sam Zell이 이 수업에서 강연을 했다. 키웰은 이를 자신을 소개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젤은 "그는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자신의 장점을 잘 알렸다.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첫 대면을 계기로 키웰은 그해 여름 젤의 시카고 기업 에퀴티 그룹 인베스트먼트Equity Group Investments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젤은 그의 멘토로 약 20년간 관계를 지속했다.
졸업 후 키웰은 로스쿨에 진학했다. 아버지와 젤의 압박 때문이었다. 수업 첫날 그는 자리에 앉아 앞줄을 바라보다가 레프코프스키를 발견했다. 두 사람에겐 디트로이트 교외 지역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서로 경쟁하던 사이였지만 로스쿨 재학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목표가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변호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창업 열망에도 불구하고, 키웰은 1994년 졸업 후 젤의 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곧 그의 혈기왕성한 멘토는 키웰을 앞에 앉혀놓고 떠나라고 말했다. 젤은 1983년부터 일해온 시카고 6층 빌딩의 안락의자에 앉아 "그에게 일을 그만둘 것을 권유했다. 이곳은 어제와 오늘을 중시하지만, 브래드는 내일을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등 뒤로 조용히 창문을 쪼는 작은 오리가 보였다. 지난 9년간 이 부동산 거물의 사무실 발코니를 집으로 삼아 거주해 온 오리였다.
젤의 기업에서 매우 '친절한 해고'를 당한 후, 당시 24세였던 키웰과 레프코프스키는 처음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따르기로 했다. 각자 저금한 돈과 대출받은 돈을 합쳐 50만 달러로 위스콘신의 아동용 운동복 기업을 인수했다.
이 두 창업가는 400개의 일자리를 아웃소싱 해야 했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과도한 빚까지 지게 됐다. 결국, 공장 문을 닫고 회생 절차를 밟은 뒤, 서둘러 시카고로 향했다. 젤은 "에너지만 넘치는 두 젊은이가 형편없는 아이디어로 되지도 않는 사업을 성사시키려 했을 때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창업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바로 무모한 짓을 자초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키웰과 레프코프스키는 다시 도전했다. 1998년 그들은 티셔츠와 머그잔을 온라인으로 납품하는 스타벨리 Starbelly를 창업했다. 2년 후 50년 역사를 지닌 판촉용품 회사 할로 인더스트리스 Ha-Lo industries가스타벨리를 2,4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 창업가들은 새 상사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타벨리를 인수한 기업은 1년 만에 파산신청을 했다. 키웰은 "가장 불행한 시기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그들은 에코 Echo와 미디어뱅크 MediaBank(현 미디어오션) 두 회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가장 성공한 회사는 그루폰이었다. 이 웹사이트는 지역 온라인 상점에서 초특가 할인가로 팔리는, 곧 유통기한이 만기가 되는 상품을 찾아 제공했다. 그루폰은 시카고를 창업의 메카로 탈바꿈 시키는 데 어떤 회사보다 많이 기여했다(지도를 참고하라). 2007년 키웰과 레프코프스키에게 그루폰 창업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은 27세의 웹 디자이너 앤드루 메이슨이었다. 두 창업가는 메이슨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고, 그를 이 신생기업의 책임자르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갑자기 모든 이들이 마사지 상품부터 칵테일 강의에 이르기까지 그루폰이 제공하는 모든 상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였다. 회사는 빠르게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모든 고객이 만기가 되기 전에 상품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이 할인 서비스는 새 고객층이나 단골을 끌어모으기 힘들어 보였다.
이런 적신호가 나오고 있음에도 야후나 구글 같은 인수희망 기업들이 러브콜을 보냈다. 2010년 가을 구글은 57억 5,000만 달러라는 전례 없는 거액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키웰은 정확한 액수를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인터넷 벤처기업에 제시된 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그러나 소유주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기업을 상장하기로 했다. 이 소식에 인터넷 여론이 들썩거렸다.
2011년 말 상장 첫날 종가 기준으로, 그루폰의 시가총액은 230억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루폰이라는 고성장 기업에 씌워준 공모시장의 왕관이 다음 주자로 곧바로 넘어가면서, 그루폰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다. 몇 분기에 걸쳐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과를 내고 기업 주가가 공모 아래로 떨어지면서 메이슨이 해고댔다현재 이 창업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휴대용 오디오 가이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포춘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의 자리를 대신해 레프코프스키가 그 임무를 대행했다. 현재 그루폰의 시가 총액은 49억 달러로, 구글이 2010년 제안했던 금액보다 적은 상황이다. 레프코프스키는 기업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해외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취했다. 아직 그루폰을 흑자로 돌리진 못했지만, 2014년 매출은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키웰은 기업공개 전 주식을 팔아 1,500만 달러 이상을 현금화했다.
다시 1월의 시카고 시내로 돌아와 보자. 창업가는 필자의 의견을 읽으려는 듯 주의 깊게 얼굴을 살폈다. 그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필자는 "실리콘밸리와 꽤 비슷해 보인다"고 대답했다.
키웰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대규모 창업지원 공동센터인 1871 - 시카고 머천다이즈 마트 Merchandise Mart에 있다 - 을 막 나오고 있었다. 이곳은 키웰의 사무실에서 강을 끼고 1마일 떨어져있다. 1930년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 머천다이즈 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물론 지금 봐도 꽤 큰 건물이다. 건물 12층에 위치한 5만 제곱피트 규모의 1871센터에는 현재 300개 이상의 신생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악명 높은 시카고 대화재가 발생한 해를 따서 1871이라고 명명된 이 센터는 키웰이 세운 수많은 창업회사 중 하나는 아니다. 이 센터는 지역 금융가인 J.B 프리츠커 J.B.Pritzker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 건물을 혁신 센터로 탈바꿈하는 대부분 과정에 키웰이 관여했다. 그는 이제 갓 시작한 창업가들에게 종종 연설을 해주고 있다. 그의 벤처캐피털 기업은 그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든 키웰은 자신이 자금을 지원한 신생기업들의 성적표와 성공한 기업 공개 실적, 벌어들인 현금 수익으로만 따져도 이미 전설적인 인물의 반열에 올라 있다.
시카고 시장 람 이매뉴얼 Rahm Emanuel은 "키웰은 이 도시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발 벗고 나섰다. 키웰이 우리 시에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라고 그를 높게 평가했다. 이매뉴얼은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시카고의 민주당 리더다. 그는 하원의원과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냈다. 이미 여러 사람이 그와 같은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그 중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시카고 출신 유명 인사인 두 명의 인물이 대표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했던 민주당 소속 빌 데일리 Bill Daley와 조지 부시 George H.W.Bush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공화당의 샘 스키너 Sam Skinner가 그들이다. 데일리는 "브래드와 에릭은 캘리포니아, 뉴욕이 아닌 시카고를 선택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스키너도 "일리노이는 기술로 유명하지만, 제조업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브래드는 이 생각을 뒤엎을 능력이 있다. 그는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키웰을 잘 아는 이라면, 그가 추진하는 가장 큰 기회가 바로 업테이크라고 믿을 것이다. 물론 먼저 10억 달러를 투자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막강 GE를 추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카고 컵스 Cubs의 월드 시리즈 World Series 우승만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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