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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기업탐구 ¦ 금강제화

60년 전통의 토종 제화 명가<br>나 홀로 살아남아 제왕이 되다

금강제화 ‘헤리티지 리갈’은 유럽 명품 브랜드에 대적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정장화로 평가받고 있다. 금강제화는 제품의 질과 고객 다변화 전략으로 토종 제화기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엘칸토, 에스콰이어 등 국내 경쟁기업들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꾸준히 성장을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화 전문 기업에서 토털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 금강제화의 경쟁력을 포춘코리아가 꼼꼼히 살펴보았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금강제화는 토종 제화 기업의 제왕(Regal)이다. 리갈은 1954년 금강제화 설립과 함께 첫선을 보인 이후 매년 평균 30만 켤레 이상 판매되고 있는 국내 대표 남성 정장화 브랜드다. 엘칸토에 이어 최근 에스콰이아까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국내 제화시장 3강 구도가 무너졌고, 토종 제화 브랜드 금강제화만 남아 이름처럼 업계의 제왕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토종 제화 기업들이 몰락한 이유로 ‘시장환경 적응 실패’와 ‘상품권 남발’을 꼽고 있다. 한 패션 업계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엘칸토와 에스콰이아가 위기를 맞은 이유는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 판매, 디자인 측면에서 수요층 다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 상품권이 남발되며 제품 가치가 떨어졌고, 그 결과 브랜드 이미지도 엉망이 되었죠. 자본력이 약한 국내 제화 업체들이 브랜드 파워까지 약해지니까,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금강제화가 살아남은 비결은 간단했다. 앞서 제기한 문제점을 잘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강제화는 품질과 수요관리 측면에서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맞춰 적절히 대응했고, 상품권 역시 꾸준히 공급관리를 해 브랜드 가치를 지켜왔다”고 평가했다. 금강제화는 굳이 앞선 두 기업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독보적인 제화 기술을 갖추고 해외명품 구두업체들과 경쟁해왔다.

금강제화는 소비자들의 발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이다. 그 역량은 부평에 위치한 6,600m²규모의 공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선 공장 3층에 위치한 개발실에서 평균 업력 25년 이상의 장인 20여 명이 구두 골과 제법, 핸드 피니싱 등 구두의 핵심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이곳에선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샘플 작업과 피팅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금강제화 최고급 수제화 라인인 헤리티지 블랙을 제작하고 있다.

1층에는 국내 유일의 굿이어 웰트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1879년 미국의 찰스 굿이어가 개발한 굿이어 공법은 구두 안쪽 중심에 코르크를 삽입해 구두가 시간이 흐를수록 발바닥의 굴곡에 맞게 성형되는 특징이 있다. 이 공법을 적용한 구두는 신을수록 편안할 뿐만 아니라 통풍까지 우수해 발의 상태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헤리티지 라인의 제품에는 가죽 홍창(밑창)의 옆면을 얇게 저며 그 가죽으로 바닥 창의 봉제선이 보이지 않도록 덮는 굿이어 소버린 제법도 적용되고 있다. 또 구두에서 발의 아치 부분이 닿는 바닥 창을 바이올린 허리 같은 모양으로 잡아주는 피들백 웨이스트 기술도 쓰이고 있다.

부평공장이 자랑하는 핵심 기술은 또 있다. 정장화 최상위 제법으로 평가받는 노르베제 공법이 그것. 노르베제 공법은 산악지방으로 이뤄진 노르웨이의 등산용 부츠에서 착안된 기술로, 방수성과 견고성에서 따라갈 기술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봉제 공법이라 할 수 있다. 하루에 한 족 생산이 어려울 만큼 정교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노르베제 공법은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장인이전 세계에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금강제화 측이 인력 유출을 우려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업계의 평가로는 노르베제 공법에 대한 이해도가 완벽한 다수의 장인이 현재 부평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장 내부에는 장인들을 위한 별도의 수작업 공정실이 마련되어 있다. 국내 제화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이탈리아, 영국 등 각지에서 공수된 90여 종의 기계 설비도 갖추고 있다. 금강제화는 기계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발에 가장 적당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제작된 5만여 개의 족형도 보유하고 있다. 매년 공장에서 폐기되는 족형만 1만 개에 달할 정도로 활발하게 연구와 생산이 거듭되고 있다.

금강제화는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다변화한 수요층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부평공장 200여 명의 직원들은 ‘발과 구두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자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역량 개발과 지식, 기술 습득에 몰두해 나가고 있다. 금강제화는 부평공장에서만 연간 70만 족 이상의 드레스화, 트렌드화, 기능성 캐주얼화, 골프화 등을 생산한다.

이 밖의 공장까지 합하면 금강제화 전 제품의 95% 이상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아웃소싱 의존도가 높은 여느 제화 업체들과 달리, 국내 생산을 통해 기술과 품질을 관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금강제화는 기술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통해서도 고객의 발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발 사이즈가 평균 이상으로 크거나 작아서 신발 구매에 불편함을 느끼는 고객들을 위해 특수 사이즈 전문매장 ‘빅앤스몰’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수익성은 낮지만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기에 이익을 떠나 사업을 해야 한다는 기업 철학이 여기에 녹아 있다. 기업 브랜드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박준석 레드우드인터랙티브 대표는 이에 대해 “니치 시장을 배려하고 공략함과 동시에 브랜딩 효과도 거두고 있는 영리한 비즈니스”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금강제화는 자사 제품뿐만 아니라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가져 오더라도 수선을 해 주는 리페어 코너를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명품 브랜드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비용으로 동일한 수준의 맞춤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스포크 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금강제화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해 3월 리갈 제품은 누적 판매량 1,000만 켤레를 돌파했다. 특히 리갈의 프리미엄 라인인 헤리티지 제품 판매량이 매년 평균 15%가량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헤리티지 라인에는 일반적인 제품군으로 구성된 ‘헤리티지 리갈’ 외에도 더비화, 옥스퍼드화 등 보편적인 스타일 7가지로 구성한 ‘헤리티지 세븐’, 금강제화 최고 장인들이 라스트 쉐입과 제법, 핸드 피니싱 등 160여 공정을 적용해 만든 최고급 라인 ‘헤리티지 블랙’이 있다.

금강제화는 정통 브랜드가 대부분 안고 있는 ‘오래되고 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젊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제품 개발이 핵심 중에 하나다. 지난해 4월 아시아 최초로 고어텍스 서라운드 기술을 접목해 출시한 ‘리갈 고어텍스 서라운드’가 대표적인 사례. 내피에만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했던 기존 제품과는 달리, 바닥 창에도 방수· 투습 기능이 뛰어난 고어텍스 멤브레인 소재를 사용해 장시간 신어도 쾌적함이 유지되도록 했다. 게다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윙팁 스타일을 적용해 비즈니스 룩에도 세련된 느낌으로 어울릴 수 있게 했다. 이 제품은 출시 한 달 만에 1만 2,000켤레가 팔려나갔고, 지금도 매월 평균 3,000켤레 이상 판매되고 있다.

국내 젊은 직장 여성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잡화 브랜드 ‘브루노말리’를 국내에 들여온 것은 제품 카테고리 확장과 브랜드 강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금강제화는 2010년 경기불황과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되자, 고급스러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매스티지 브랜드가 향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 예견했다. 곧바로 합리적인 가격대에 품질과 디자인, 감성까지 갖춘 해외 제품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결국 1936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정통 브랜드 브루노말리를 직수입했다. 그리고 이 예상은 적중했다. 출시 첫해 150억 원을 기록했던 브루노말리의 매출이 지난해에는 750억 원 규모로 성장했고, 매장도 2개에서 전국 90개까지 확장됐다. 브루노말리의 모델인 배우 박신혜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들의 큰 관심도 모으고 있다. 업계에선 브루노말리의 올해 매출이 1,000억 원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강제화는 이 밖에도 골프웨어, 아웃도어 등 의류 사업을 펼치며 토털 패션 브랜드 입지 강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강제화는 제화 기업임에도 애플 전문매장 ‘프리스비’를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60년 전통의 제화 기업이 최신 IT 제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프리스비 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금강제화 매장이나 슈즈 멀티숍 ‘레스모아’가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김준석 금강제화 상무는 이 같은 로케이션 전략에 대해 “디자인, 실용성, 합리성을 모두 중시하는 젊은 층의 기호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프리스비와 레스모아 매장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프리스비는 2013년 전년대비 약 10% 증가한 매출 622억 원을 올렸고, 레스모아도 전년대비 17% 성장한 1,13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박준석 레드우드인터랙티브 대표는 “대개 오래된 기업, 특히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은 다 변화된 전략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금강제화는 품질이라는 중심가치를 지키면서 다양한 작은 혁신을 추진해 경쟁력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최근 금강제화는 업계 최장수 CEO 신용호 대표이사를 고문으로, 김경덕 전 한국 키스톤 발부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영입해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금강제화가 국내 제화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든 장인들의 손, 다변화된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뛰어다닌 직원들의 발, 작은 혁신을 통해 제품의 질과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 경영진의 안목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값진 결과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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