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풀잎 이슬이 빛나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여름날. 필자는 ‘에어맨(Air Man)’에게 연락을 취했다. 얼마 전 이사한 집에서 풍기는 지독한 단내 때문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단내로 수주일간 극도의 짜증이 났지만 우리 가족 중 그 냄새로 고통을 받는 건 필자뿐이었다. 아내도, 아이도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했다. 오히려 필자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사실 필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편집증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민감한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종종 다른 사람들이 감지 못하는 위험을 느끼기도 한다.
에어맨이라 불리는 스티븐 웰티는 단내로 인한 가족과의 불협화음을 봉합해줄 구원투수였다. 그의 직업은 전염병 확산과 공기를 이용한 테러로부터 병원, 사무빌딩, 정부청사를 보호해주는 공기흐름(airflow) 시스템의 설계자다. 원래 일반 가정의 부름에는 응하지 않는 그였지만 필자의 상황에 호기심이 발동한 듯 흔쾌히 방문을 승낙했다.
며칠 뒤 대머리에 깡마른 모습을 한 그가 도착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집안에서 별다른 단내를 맡지 못했다. 좌절하는 필자를 뒤로하고 그는 앞마당 잔디밭으로 나가 한동안 서 있었다. 자신의 코를 이 집에 맞춰 초기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준비를 마친 그는 잡냄새가 들어오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막고는 다시 집으로 입성했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친구. 자네 코는 정말 대단하군.”
“무슨 말씀이시죠? 어떤 냄새를 맡았나요?”
웰티는 너무 희미해서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지만 분명히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판단으로는 곰팡이 냄새 같다고 했다.
“이 정도의 냄새를 그토록 강하게 맡았다면 개코가 따로 없군. 우리 업계에서 일하면 크게 성공하겠어. 자네 코를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사용해볼 생각이 없나?”
뜬금없는 스카우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우리는 냄새의 원인인 곰팡이를 찾아 집 구석구석을 뒤졌다. 지하실과 낡은 벽난로, 공기조화(HVAC) 시스템까지 꼼꼼히 체크했지만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주방에서 잠시 쉬며 집의 공기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새 화제는 그가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주제로 바뀌어 있었다.
“2003년에 대유행했던 사스(SARS)의 최초 전파자가 홍콩의 한 호텔에 묵었던 지우 지안룬이라는 중국인 의사였던 것을 알고 있나? 당시 호텔에 숙박했던 여행객들이 감염되면서 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네.”
리우가 호텔 복도에 구토를 했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웰티는 리우의 방안에 퍼져있던 세균이 공기를 타고 외부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화장실 에어로졸화(toilet aerosolization)’나 ‘배설물 구름(fecal cloud)’ 같은 생소한 용어들을 내뱉었다.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화장실에 배설물들이 구름처럼 떠 있는 모습이 연상되면서 굳이 자세히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다.
그는 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설명하면서 전파를 막기 위해 습기가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고, 재채기를 할 때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슈퍼 전파자(super remitter)’라는 개념도 언급했다. 병원의 공기 속을 떠돌면서 감염 시 물설사 등의 질환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C.difficile)균’에 대해서도 한참 동안 열변을 토해냈다.
“공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자네는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필자는 아예 무균실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게 공기 속 여행을 계속 시켜달라고 정식으로 부탁했다.
I 웰티는 아내, 아들과 함께 미국 버지니아 북부의 교외지역 이층집에 살고 있었다.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였다. 필자는 아침 일찍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웰티가 영웅으로 여기는 사람 중 한명인 버지니아공대의 환경공학자 린지 마르 박사를 함께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현재 미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23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아 습도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전파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웰티의 집에 들어가보니 이번 여행에 가져갈 책들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미생물의 공중생물학적 전파 경로’, ‘에어로졸 공학’, ‘병원 공기감염 제어’, ‘에어로졸의 폐내 잔류’ 등의 제목이 보였다. 그런데 하나 같이 동네 벼룩시장에도 내놓지 못할 만큼 낡고 헐어 있었다. 이는 공기 감염성 질환 연구의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오래되고 낡은 연구와 이론들 뿐 근래에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웰티의 책 중에는 1940~1950년대에 출간된 것도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공기를 매개체로 전염되는 질병은 의학계의 최대 선결과제로 꼽혔다. 홍역과 결핵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었지만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고, 페니실린 항생제조차 흔치 않은 시기였기에 모든 공중 보건의의 관심이 공기에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한때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윌리엄 퍼스 웰즈 박사가 1955년 저술한 ‘공기 감염과 공기 위생’을 뒤적이다가 이런 문구를 봤다.
“공기 위생의 첫 번째 목표는 공기 감염성 병원체의 사회적 전파를 막는 것이다.”
이 문구는 추후 필자에게 뼈저린 교훈으로 각인됐다. 취재 도중 콕사키바이러스에 감염돼 지독한 인후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웰티에게 이메일로 전했더니 당혹스럽다는 답신이 도착했다.
“이보게. 도대체 그동안 나와 함께 다니며 뭘 보고 배운 건가.”
그러면서 그는 1960년대 정부 과학자들이 공기 감염성 질환 연구를 위해 재소자들에게 콕사키바이러스 감염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알려줬다. 재소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철조망으로 분리된 방안에 넣고, 한쪽 그룹에만 콕사키바이러스를 주사한 뒤 선풍기로 공기를 섞었더니 모든 재소자가 감염됐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최대 100여종의 감염성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진균이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 그럼에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공기 전염성 질병의 연구 열기는 나날이 시들해졌다. 항생제와 백신의 활약 때문이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출신의 공중생물학자인 브와디스와프 코왈스키 박사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항생제의 눈부신 활약을 지켜본 의사들은 질병의 멸종을 예견했어요. 질병에 걸렸다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으면 됐으니까요. 더는 전염 방식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게 된 거죠.”
그렇게 공기 전염성 질병 관련 학회는 한산해졌고, 연구비 지원도 끊겼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손을 씻으라는 식의 개인위생을 강조하는 구호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벌어진 두 건의 사건이 이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R 첫 사건은 바로 사스였다. 홍콩의 호텔에서 시작된 사스는 2002년 11월 첫 환자가 발생한 이래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특히 ‘아모이 가든’이라는 홍콩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설사에 시달리던 단 1명의 사스 감염자가 무려 321명의 주민들을 감염시켜 42명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엄청난 전염의 진원지가 감염자 홀로 사용했던 화장실이었다는 점이다.
공기 전염성 질병 전문가들은 사스 바이러스를 품은 미세한 에어로졸들이 화장실의 환기시스템이나 배관을 타고 외부로 유출됐으며, 창문이 열려 있던 다른 집으로 들어가 주민들을 감염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2004년 ‘뉴잉글랜드 의료저널’에는 사스의 대유행을 호흡기 전염병의 에어로졸 전파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10년 세계 보건당국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다제내성균’의 출현이다. 그해 9월 일본의 한 병원에서 46명의 환자가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균(MRAB)’에 감염돼 9명이 숨졌고, 10월에는 ‘다제내성 녹농균(MRPA)’으로 2명의 사망했다. ‘뉴델리형 카바페넴내성 장내균(NDM-1)’은 인도와 파키스탄을 발원지로 하여 세계 각지로 급속 확산되기도 했다. 언젠가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극강의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할 수도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러자 세계보건기구(WHO)는 일상적 활동을 통한 세균 감염이나 사소한 부상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이른바 ‘포스트-항생제 시대’가 먼 미래의 종말론적 판타지가 아니며, 21세기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은 현실적 시나리오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종합해보면 공기 속에는 인플루엔자, 홍역, 디프테리아같은 감염성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결핵, 폐렴, 백일해 등의 병원체들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학계는 여전히 공기 감염 연구의 가치를 좌시하는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웰티를 포함한 공기 전염성 질병 전문가들은 이들을 ‘공기 감염 부정자(airborne denier)’라 칭한다.
미 질병관리본부(CDC)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아직도 손을 잘 닦으면 인플루엔자를 예방할 수 있다는 공식입장을 취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H1N1)가 창궐했을 때 CDC 대변인이 CNN 방송에 출연해 “손을 잘 씻는 것이 신종플루 감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확고한 데이터가 없습니다”라고 실토했음에도 말이다.
바이러스학자들 역시 손 씻기로 인플루엔자 감염 확률을 크게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손에 묻은 바이러스는 안정성을 유지할 수 없어 오래지 않아 제 기능을 상실, 전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M 웰티와 그의 책을 잔뜩 실은 채 필자의 자동차는 버지니아공대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조수석에 앉은 웰티는 뒷좌석에 실어 놓은 공기 전염성 질병에 관한 연구논문들을 꺼내보며 시간을 보냈다.
올해 55세가 된 그가 공기 전염성 질환의 전문가로 인정받은 것은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서다.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워싱턴에 자리를 잡고 다양한 일을 했다. 리무진 회사를 경영하기도, 무지방 요구르트 머핀을 개발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정집의 곰팡이를 찾아 제거해주는 일을 하면서 이 분야에 발을 디뎠다.
필자만큼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였던 웰티는 곰팡이를 조사하면서 공기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됐고, 공기 전염성 질병의 전파를 다룬 수백 권의 서적을 독파했다. 당연히 강의도 수없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의 손에는 실내 공기와 공기 여과에 관한 자격증들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주목받는 전문가가 된 그는 미 환경보호청(EPA)를 포함한 여러 연방 정부기관의 고위관료 앞에서 브리핑을 했고, 위치를 밝힐 수 없는 워싱턴의 한 안전가옥에 설치할 생물학 테러 방호시스템을 설계하기도 했다.
웰티는 우리 주변의 공기흐름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강’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는 공기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주택과 빌딩, 도시를 건설했다. 결과는 생각조차 안한 채 공기라는 이름의 강에 댐과 제방, 수로를 만들어왔던 셈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신선한 공기가 자유롭게 가정과 창고 안으로 흘러들어왔고, 직사광선에 의해 해로운 세균들이 살균됐다. 반면 오늘날의 신축 사물빌딩 중 다수는 아예 창문이 열리지도 않는다. 가정에서는 냉난방비를 아끼려고 외부 공기의 유입을 막으려고 애쓴다. 세균들이 이런 환경을 좋아하지 않으려야 안을 수가 없다.
필자와 웰티는 뒷좌석의 연구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몇 달간 웰티가 보내줘서 필자도 읽어봤는데 ‘변기 뚜껑과 에어로졸 기둥’이라는 논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 논문에는 감염성 질환에 걸린 환자가 변기를 사용한 후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수십 건의 연구 결과가 담겨 있었다.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변기물을 내리는 과정에서 에어로졸화가 일어나며, 다음 사용자가 바이러스를 품은 에어로졸에 접촉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스, 인플루엔자, 노로 바이러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등 많은 균들이 이런 식으로 변기를 탈출해 화장실 공기에 섞여 있기도 하고, 벽과 바닥에 안착하기도하고, 환기시스템을 따라 떠돌아다니기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논문 내용에 충격을 받은 필자는 제1저자인 미국 오클라호마대학 환경보건학부 데이비드 존슨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기도 했다. 존슨 교수는 일반 가정집의 화장실보다 공중화장실이 더 위험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람들은 변기의 물을 내리면 변기 속 모든 내용물이 없어진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실험 결과, 물을 내린 뒤에도 변기 밖으로 탈출할 개연성이 있는 세균들이 남아있었습니다. 24번이나 연속해서 물을 내렸는데도 말이에요.”
혹여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면 괜찮을까.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영국 연구팀이 급성 설사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변기 뚜껑을 닫았음에도 미생물들이 변기 밖으로 나왔어요. 연구팀은 양변기 본체와 좌석 사이에 15㎜, 좌석과 뚜껑 사이에 12㎜ 정도의 틈새가 있다면서 이 정도면 에어로졸이 빠져나가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듯 상황이 심각해보이지만 감염성 질환의 정확한 공기 전파경로를 파악하려는 일련의 연구들은 윤리적 한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리 연구라고 해도 대중들이 실제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에 환자를 앉혀볼 수도, 과거처럼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해법은 없는 걸까. CDC 산하 미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의 케니스 미드 박사에게 화장실의 위생에 관해 문의했더니 변기 뚜껑과 좌석, 본체의 틈새를 완벽히 없애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디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러려면 변기 제조업체가 설계변경과 생산설비 교체에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환풍 팬을 천장이 아닌 바닥에 설치, 공기를 아래로 빨아들여 에어로졸의 호흡기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어떨까.
“그 방법 또한 건축 설계변경이 불가피합니다. 효용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도 사전에 수반돼야 하구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죠?”
미드 박사는 화장실에 더해 인간의 입도 공기 감염성 질병 전파의 주범이라 강조했다. 이와 관련 웨이크 포레스트대학의 전염병 학자인 워너 비숍 박사팀이 지난해 응급실 공기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감기 환자의 머리로부터 최대 1.8m 떨어진 지점의 공기 샘플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또한 연구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사실도 한 가지 찾아냈다. 조사대상 환자 61명 가운데 5명이 유달리 많은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숍 박사는 이들을 ‘슈퍼 전파자’라 명명하고, 전체 인플루엔자 감염자의 80%가 슈퍼 전파자에 의해 감염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문제가 있다면 현재로선 슈퍼 전파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들에 의한 전파를 막을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A 버지니아공대 린지 마르 박사의 연구는 이런 문제들의 해결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녀가 연구 중인 인플루엔자와 습도의 상관관계는 공기 전염성 질병 연구가 황금기를 누렸던 과거에 많은 연구가 이뤄졌던 분야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현대의 연구자들이 공기 전염성 질병의 심각성을 깨닫고 다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 부터다.
이 분야의 연구는 매우 어렵다. 생물학은 물론 화학과 에어로졸공학, 산업공학을 포괄하는 융합적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이나 대학들은 각 분야를 별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연구비를 따내기도, 함께할 연구자를 구하기도 어렵다. 마르 박사의 경우 생물학과 화학에 모두 학문적 배경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을 모으는 것으로 활로를 찾아냈다.
4시간여를 달린 끝에 버지니아공대에 도착했다. 연구동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르 박사는 왜소한 몸집에도 활력 넘치는 인상을 풍겼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우리 일행은 몇 블록 떨어진 일본식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테이블에 앉아 회와 음료를 주문했다. 그리고 웰티가 마르 박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공기 감염 부정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게요. 다들 손만 씻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해요.”
40세의 마르 박사는 하버드대학 학부시절 공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문득 스모그가 자신의 폐에 어떤 피해를 입힐지 궁금해졌다고. 근래에는 개인적으로 어린이집의 위생에 관심이 많다고도 했다. 어린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데, 전염병학적 관점에서 거의 절망적 수준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보육교사들이 매일 열심히 청소를 하고, 아이들의 손도 닦아주지만 병원균의 전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딸아이가 유아 때부터 병을 달고 살았어요. 그래서 학술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공기 감염성 질병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고 많이 놀랐답니다.”
이에 마르 박사는 딸이 생후 1개월 때 점액을 채취해 직접 실험을 수행했다. 점액 샘플들에 인플루엔자를 주입, 서로 다른 습도의 환경에 놓아두고 추이를 관찰한 것.
“습도가 50% 이하일 때는 점액이 말라버렸지만 인플루엔자는 공기 중에서 꽤 잘 살아남았습니다. 반면 50% 이상의 습도에서는 바이러스가 비활성화되더군요. 수분이 완전히 증발되지 못하면서 점액과 바이러스의 혼합물을 남겼는데, 바이러스가 오랜 시간 생명력을 유지하기에는 산도(酸度)나 염도가 너무 높은 환경이었어요.”
이 실험에 근거해 그녀는 어린이집이나 학교들도 병원처럼 습도를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계절성 독감(인플루엔자)의 전파를 상당부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과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건조한 공기가 아데노바이러스나 리노바이러스 같은 일반적 감기 바이러스를 포함한 여타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르 박사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최적의 습도를 찾아낼 계획이다.
그녀는 자신이 진행 중인 또 다른 연구도 거론했다. 바이러스가 바닥에 들러붙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다.
“기침과 재채기로 분출된 바이러스 중 다수는 방이나 거실 바닥에 떨어져 정착하게 됩니다. 이후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그 바이러스를 공기 중으로 띄워 올릴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와 관련 마르 박사는 사람의 키를 변수로 보고 있다.
“아이가 아플 때면 저도 동일한 질병에 걸립니다. 하지만 남편은 거의 병치레가 없죠. 남편이 저와는 다른 공기를 마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남편은 키가 190㎝나 되거든요. 제 가설은 키가 작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잔뜩 오염된 바닥과 가까운 만큼 전염도 잘 된다는 거예요.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려 합니다. 당사자인 남편은 자신의 면역체계가 강하거나 하는 등의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말이에요.”
N 마르 박사를 만나고 난 뒤 수개월간 웰티는 매주 주말마다 필자의 집을 방문했다. 그와 필자의 인연을 맺어줬던 단내의 진원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웰티가 악취측정기로 수색을 진행하는 동안 필자는 산소가 공급되는 마스크를 쓰고 집안을 킁킁대고 다녔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풍기면 신선한 산소에 적응된 코가 곧바로 알아챌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이야 말로 공기 연구의 맹점이었다. 공기는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공기 속 물질을 아예 무시하고 사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 역시 웰티를 만나기 전까지는 공기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공기 전염성 질병과 싸울 도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생각만큼 많지 않으며, 효과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웰티는 공기조화 시스템에 자외선램프를 부착해 미생물을 살균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100% 완벽한 살균을 보장하기 어렵고, 엄청나게 큰 돈이 든다. 또한 최근 일부 병원들이 환자가 퇴원하면 즉시 병실 전체를 강력한 자외선으로 소독하는 절차를 운용하기 시작했고, 몇몇 기업이 건물 내부 공기와 야외의 공기를 혼합해 공급하는 환기시스템을 개발 중이지만 이 역시 결코 저렴하지 않다.
필자는 웰티의 추천을 받아 집의 공기조화 시스템에 저온 플라스마 발생기를 장착했다. 공기가 지나가면 전하가 미생물을 끌어당겨서 수소를 빼앗아 살균이 이뤄진다고 했다. 확실한 효과를 위해 자외선 램프까지 추가 부착했다. 이후 우리 가족이 감기에 걸리는 횟수는 확연히 줄었지만 단내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웰티도 이런 장비들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응급처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공기 전염성 질병의 위험성을 인지함으로써 궁극적 해결책이 개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인플루엔자의 감염 여행
대다수 공기 전염성 병원균처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다른 숙주를 감염시키려면 고난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 이 여정은 보균자의 구강에서 배출된 미세한 물방울에 숨어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기를 떠다닐 만큼 작으면서도 너무 빨리 증발되지 않을 크기의 물방울에 탑승해야만 감염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1 재채기
인플루엔자 보균자는 샤워, 잠자리 정돈, 화장실 사용, 심지어 걸어 다니는 행동만으로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 방법은 재채기와 기침, 호흡을 통한 공기 전파다. 단 한 번의 재채기로도 바이러스를 감싼 미세 물방울들이 빠르고, 넓고, 멀리 확산된다.
2 에어로졸화
물방울은 일정 크기보다 작아야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기 속을 떠다닐 수 있다. 최적 물방울의 크기는 습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건조한 날에는 다소 큰 물방울도 배출 직후 일부 수분이 증발해 에어로졸이 되지만 습도가 높은 날에는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친다.
3 확산
바이러스를 품은 물방울이 공기 흐름을 따라 사방으로 확산된다. 얼마나 멀리 확산되는지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인플루엔자는 한 곳에 일정시간 머무를 수 있지만 열과 빛, 오존 등의 환경조건에 의해 손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접촉
새로운 숙주를 감염시키려면 충분한 숫자의 바이러스가 그 숙주와 접촉해야 한다. 유행병학자들은 이를 ‘노출’이라 부른다. 바이러스가 숙주의 폐나 안구, 구강 등 인체 내부에 안착하면 노출에 걸리는 시간이 한층 빨라진다.
5 감염
충분한 수의 바이러스가 숙주와 접촉하면 숙주가 감염을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 인체 면역체계가 유달리 강하거나, 이미 해당 바이러스에 항체를 갖고 있거나, 예방주사를 맞았다면 몰라도 말이다. 감염된 숙주는 고열과 한기를 느끼게 되고, 재채기를 해대면서 또다른 숙주를 감염시킬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인플루엔자와의 맞짱
기본적 무기는 당연히 백신과 치료제다. 하지만 인플루엔자의 전파 방식을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의 기계공학자 아미르 알리아바디 박사는 연구를 위해 재채기 기계를 개발한 적이 있는데, 이를 이용하면 병원 등 인플루엔자 감염 위험이 높은 곳에서도 감염률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인플루엔자 확산 모델을 구축해 병원 내 침상 배치를 개선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사실 이 분야는 생각보다 복잡해요. 유체역학, 생물학, 전염병학, 건축설계 등을 아우르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다제내성균 두 종류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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