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분의 1 테라노스는 기존검사의 100분의 1내지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 혈액검사를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홈즈 Elizabeth Holmes는 19세에 혁신적인 혈액 진단기업 테라노스 Theranos를 설립했다. 현재 기업가치 90억 달러를 상회하는 테라노스는 머지않아 의료서비스를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
by Roger Parloff
2003년 가을, 당시 19세였던 스탠퍼드대 2학년 엘리자베스 홈즈는 화학공학 담당교수 채닝 로버트슨 Channing Robertson의 연구실로 불쑥 찾아가 “함께 사업을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로버트슨 교수는 33년 교직생활 동안 수천 명의 학생들을 가르친 베테랑이었다. 홈즈를 가르친 기간은 1년 정도 밖에 안됐지만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홈즈는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그 친구는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참신한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그런 학생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홈즈는 그해 여름 싱가포르 게놈연구소(Genome institute)에서 일했다. 휴스턴에서 10대 시절을 보내며 틈틈이 배웠던 중국어 덕분에 얻은 기회였다. 홈즈는 스탠퍼드대가 위치한 팰로 앨토 Palo Alto로 돌아오자마자, 로버트슨 교수에게 자신이 작성한 특허 신청서를 보여주었다. 홈즈는 1학년 때 로버트슨 교수의 첨단 투약 기기-패치, 알약, 녹내장 치료제를 분비하는 콘택트 렌즈 같은 필름 등-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명품은 로버트슨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약물 투약을 넘어 환자 혈액 내 변수들을 관찰해 치료효과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투약량을 조절할 수 있는 ‘붙이는 패치(wearable patch)’였다.
로버트슨은 “당시 홈즈는 ‘여기에 휴대폰 칩을 삽입해 환자 상태를 의사와 환자에게 전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분야에서 30년간 자문을 해왔고, 수많은 측정장비 및 투약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이 둘을 하나로 합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홈즈가 학위를 취득하기 전에 창업을 하는 것에 대해선 유보적이었다. 그는 “내가 ‘왜 사업을 하려고 하나?’라고 묻자 홈즈는 ‘이 시스템은 혁신적으로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평생에 걸쳐 점진적 변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지리, 인종, 나이, 성별 등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말에 로버트슨은 생각을 바꿨다. 그는 “결국 홈즈의 철학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녀의 눈빛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의 눈빛만큼이나 강렬하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로버트슨의 지지 하에 홈즈는 창업을 했고, 다음 학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30세인 홈즈는 팰로 앨토에서 직원 500명 규모의 테라노스 Theranos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의 합성어를 운영하고 있다. 테라노스의 가치를 9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하는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판매해 4억 달러 이상의 자본금도 확보했다. 사외이사를 통해 확인한 이 액수는 이번 기사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기업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홈즈는 자신의 회사에 대해 “우리 목표는 공익실현이다. 또 다른 목표는 미국의 강점인 혁신, 창의성, 그리고 정책변화를 유도하는 기술 고안 능력을 통해 의료 서비스를 혁신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언뜻 보기에 로버트슨을 놀라게 했던 패치와 테라노스가 지금 하는 사업은 관련이 없다. 곧 알게 되겠지만 홈즈에게 이 두 가지는 궁극적으로 같은 아이디어를 다른 방식으로 구체화한 것일 뿐이다.
테라노스는 73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진단검진 업계를 뒤흔들만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신생기업이다. 업계의 연 평균 검진횟수는 약 100억 건으로, 의학적 결정의 약 70%가 이 검진결과를 바탕으로 이뤄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어 Medicare와 메디케이드 Medicaid는 검진비 환급 명목으로 각각 매년 약 100억 달러를 지출한다.
테라노스는 소위 ‘고도로 복잡한 검진실’을 운용한다. 검진실은 연방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 CMS)의 허가를 받아 거의 모든 주에서 운용될 수 있다. 현재 테라노스는 가장 일반적인 혈액검사 중 200가지 이상을 주사기를 사용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를 1,000가지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테라노스는 기존 혈액검사 시 필요한 혈액양의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 혈액검사를 할 수 있다. 잦은 혈액검사가 요구되는 입원환자나 암환자뿐만 아니라 노인, 영아, 어린이, 당뇨병환자, 혈전용해제 복용환자를 포함해 혈액채취를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반가울 수밖에 없다. 테라노스의 사혈전문의들(phlebotomists-technicians)은 손가락 침과 특허기술을 이용해 혈액을 채취할 수 있는 면허를 받았다. 이 기술은 혈액채취 시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불편함마저 최소화 시켜준다(필자가 느끼기엔 찌른다기보다 가볍게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홈즈가 ‘나노테이너 Nanotainer’라고 부르는 퓨즈 크기의 작은 유리병에 담긴 25~50마이크로리터 *역주: 100만 분의 1리터의 혈액으론 무려 70회의 혈액검사를 할 수 있다. 반면, 기존 방식으로 수많은 검사를 진행하려면 3,000~5,000마이크로리터 용량의 혈액 튜브가 다량 필요하다.
미량의 혈액만 사용하는 테라노스의 기술 덕분에 의사들은 기존보다 더 쉽게 리플렉스 테스트 Reflex test를 지시할 수 있게 됐다. 혈액검사 결과가 비정상이면 곧장 동일한 혈액으로 추가 검사를 실시해 그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라고 검진실에 지시하는 것이다. 이런 리플렉스 테스트는 환자들의 시간과 불편함, 비용을 절약해줄 뿐만 아니라 다시 혈액을 채취해야 하는 의사들의 번거로움도 없애준다.
검사결과도 몇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어 응급 검진(stat-lab) *역주: 긴급한 상황에 이뤄지는 약식 검진 속도와 맞먹는다(응급 검진은 40여 개의 제한된 검사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비효율적이다).
무엇보다 테라노스의 검사비용은 매우 저렴하다. 다른 개인 검진회사와 비교했을 때 4분의 1 내지 절반 수준이며, 종합병원 검진과 비교했을 땐 4분의 1 내지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검진비용이 대단히 높음을 고려할 때 상당한 액수를 절약할 수 있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은 보험이 없는 환자들, 본인 부담금이 높은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 보험회사, 납세자들에게 큰 혜택이다. 테라노스는 1회 검사 비용이 메디케어 환급율의 절반을 초과할 수 없도록 설계했다. 테라노스의 검진법이 널리 채택된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액수의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또 회사는 고객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는 검진 가격을 온라인에 고시하고 있다. 이는 불투명하고, 제멋대로이고, 정직하지 못한 것으로 악명 높은 현재 의료 가격 체제에서는 혁명적인 조치다.
테라노스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기술을 개발했는지는 영업비밀이다. 홈즈는 단지 테라노스가 기존 업체들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화학기법을 이용한다”고만 설명한다. 이 정도까지 말한 것도 처음이다. 핵심은 ‘화학성질’을 최적화하고,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미량의 혈액만으로 기존 기법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테라노스의 현재 사업규모는 큰 편이 아니다. 사혈전문의들은 의사들의 지시에 따라 혈액뿐만 아니라 타액, 소변, 대변 등 기타 샘플들을 채취한다. 테라노스의 검진센터는 팰로 앨토 본사와 21개 월그린 Walgreen *역주: 미국 최대의 잡화, 식품, 약품 판매체인지점에서 운영된다(팰로 앨토 지점 하나를 제하고는 모두 피닉스 Phoenix에 있다). 하지만 이는 월그린이 가진 원대한 포부의 첫 걸음에 불과하다. 작년 9월 월그린은 테라노스의 검진센터를 점진적으로 늘려 미국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50개 주 8,200개 체인 중 대부분에 검진 센터를 설치할 것이다). 모든 미국인들이 5마일 내에서, 모든 도시민들이 1마일 내에서 검진센터를 찾을 수 있게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의 제 1단계인 것이다. 월그린의 CEO 그레그 워슨 Greg Wasson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테라노스의 검진센터를 유럽 파트너 체인인 얼라이언스 부츠 Alliance Boots에도 설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현재 세 개의 병원그룹(UCSF 메디컬 센터, 21개 주에서 운영중인 디그니티 헬스 Dignity Health 산하 병원들, 유타와 아이다호 주의 인터마운틴 헬스케어 Intermountain Healthcare 산하 22개 병원 등)이 테라노스의 검진센터를 설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 중이라는 사실이다.
UCSF 메디컬 센터의 CEO 마크 러릿 Mark Laret은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해 “의료 서비스의 진정한 혁신이 우리 눈앞에 있다.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맨해튼 특수수술 전문병원(Hospital for Special Surgery)의 정형외과 과장 데이비드 헬핏 David Helfet은 “처음 이것에 대해 들었을 땐 엉터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테라노스가 제공한 수많은 검증자료를 검토한 후 확신을 갖게 됐고, 병원 측에 서비스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헬핏은 “검증자료는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실질적 데이터였다”고 말했다. 그는 테라노스로부터 의료자문을 맡아줄 것을 요청 받았지만, 아직 승낙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헬핏은 테라노스의 검사 서비스를 병원감염 판별에 활용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오늘날 병원감염은 심각한 의료 문제다. 페트리시 접시에 세균을 배양해 정체를 판별하고 적합한 항생제를 선별하는 기존 방식은 3~5일이 소요된다. 그동안 환자는 효과 없는 항생제를 맞고 건강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세균의 항생제 내성만 키우는 꼴이다. 헬필은 “검토한 데이터에 따르면, 테라노스는 DNA 감식법을 이용해 4시간 만에 기존 방식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세균의 종류와 항생제 내성에 대해 판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서비스를 완전히 바꿔 놓을 엄청난 혁신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홈즈는 아직 헬핏이 말한 것 같은 DNA 감식법을 완전히 개발하지는 못했지만 가격 효율성을 높일 방법은 찾았다고 밝혔다).
단순히 채취하는 혈액량을 줄인 것만이 중요한 성과는 아니다. 테라노스의 혈액검사 공간은 기존 검사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UCSF의 러릿은 “같은 작업을 하는 공간이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언젠가 테라노스의 검진실은 병원 수수실 옆이나 군용 구조헬기, 배, 잠수함, 아프리카의 난민캠프, 아프리카 덤불 속 텐트 등에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혈액 분석기는 데스크톱 컴퓨터를 연결해 놓은 것처럼 생겼다. 홈즈는 작동원리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영업비밀을 보호해야 한다며 사진촬영도 금지했다. 분석기는 캘리포니아 주 뉴어크 Newark-팰로 앨토 기준으로 사우스 베이 South Bay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연구단지 내 이름 없는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필자는 공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진단검진업계의 기존 업체들은 이러한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테라노스를 겨냥한 흔한 비판 중 하나는, 의도적으로 검증 결과를 학계의 리뷰 저널에 먼저 발표하지 않고 획기적인 기술을 이용한 검사를 강행한다는 것이다(이 검사 결과들은 생사가 달린 중요한 의학적 판단의 근거로 사용된다). 세계 최대의 진단의료 기관 퀘스트 다이아그노스틱스 Quest Diagnostics(이하 퀘스트)의 의료 컨설턴트 겸 종양학자 리처드 벤더 Richard Bender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왜 측정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홈즈는 이런 비판에 대해 “테라노스는 (기존과) 동일한 화학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검증 결과를 학계의 리뷰 저널에 싣는 것은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논쟁의 배경에는 이상한 규제체계가 있다. 이 규제에 따라 일부 기존 업체들은 (테라노스가 아직 도입하지 않은) 추가 검증 테스트를 실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퀘스트나 래버러토리 코프 오브 아메리카 Laboratory Corp of America를 포함한 대부분의 검진업체들은 시멘스 Simens, 올림푸스 Olympus, 베크먼 쿨터 Beckman-Coulter 등의 의료장비 생산업체들로부터 분석기를 구매하고, 이를 이용해 수많은 정기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분석장비 판매에 앞서, 분석기를 이용하는 테스트에 대한 허가를 미 식약청(FDA)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 절차는 회계감사나 숙련도 테스트검진사업 허가를 얻기 위해 요구된다와 별도로 실시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까다롭다.
자체 검진실 테스트(lab-developed tests·이하 LDT)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FDA가 LDT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FDA는 오랫동안 ‘LDT의 승인절차를 거치도록 요구할 수 있지만 ‘집행재량권(enforcement discretion) *역주: 법 집행 당사자가 법을 집행할 대상을 고를 수 있는 권리’에 따라 생략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테라노스는 제3자로부터 분석기를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독특한 위치에 있다. 분석기를 다른 실험실에 판매하려면 FDA 승인이 필요하겠지만, 자체 분석기를 자사의 허가 받은 검진실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FDA 승인이 필요 없다. 따라서 모든 테스트는 LDT로 인정받고, FDA의 감독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홈즈는 규제의 허점을 이용해 사업을 한다는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업체들도 자체 LDT에 대해 FDA 승인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검진실의 LDT를 언급하며 “기존 업체들도 FDA 승인을 받지 않았거나 학계 리뷰를 받지 않은 수천 가지 테스트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사실, 전통적 검진업계의 조합격인 미국 임상실험 학회(American Clinical Laboratory Association)는 LDT가 FDA 승인절차를 거처야 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FDA는 이에 대한 법적인 권한이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더욱이 홈즈는 “테라노스가 법적인 의무가 없음에도 모든 테스트의 FDA 승인을 거치고 있다”고 강조했다(그녀는 수백 페이지 분량의 검증 데이터를 제출했고, 그중 상당부분을 포춘에 보여줬다). 사실 테라노스는 LDT에 대해 FDA 승인을 요청한 유일한 업체다.
회의론자들은 검증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 검진사업은 비용청구와 고객 서비스, 분류, 규정 준수, (병원에서 검진실로의) 샘플 운송 등 검진과 무관한 수많은 요소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테라노스가 빠르게 규모를 늘려 경쟁력 있는 업체로 발돋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퀘스트는 직원 수만 4만 5,000명에 달하며 차량 3,000대와 비행기 20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 밖에도 지역별 중점 검진센터 8개, 위성 검진소 150개, 환자 서비스 센터 2,200개를 운영 중이다.
비판가들은 또 홈즈의 광범위한 E2E(End to End) 비즈니스 모델에도 당혹스러워 한다. 테라노스가 혁신적인 분석기를 개발했다면 왜 그것을 기존 검진센터에 판매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그들은 분석기를 제작하면서 검진사업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페덱스 Fedex가 자체적으로 트럭과 항공기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홈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녀는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적어도 공공 서비스적 관점에서는 최고의) 이사진을 꾸렸다. 국무부와 재무부,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조지 슐츠 George Shultz, 전 국방부 장관 빌 페리 Bill Perry, 전 국무부 장관 겸 국가 안전 보장 담당 대통령 보좌관 헨리 키신저 Henry Kissinger, 전 상원의원 샘 넌 Sam Nunn과 빌 프리스트 Bill First그는 심장 이식 전문의다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외에도 테라노스의 실질적인 객원 법률고문 겸 법정 변호사 데이비드 보이스 David Boies가 이사회에 참석한다. 보이스(73)는 최고의 법정 변호사 중 한 명이다. 특히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반독점 법 소송과 2000년 동성결혼 합법화를 두고 벌어진 부시 Bush 전 대통령과 앨 고어 Al Gore 전 부통령 사이의 대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이스는 홈즈에 대한 존경과 그녀의 비전에 감동해 테라노스가 처해있던 특허권 위반 소송-신생 기술 기업에겐 통과의례와 같다-의 1심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지난 3월 매우 드문(혹은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송을 제기한 특허 보유 기업들이 아무 조건 없이 소송을 포기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향후 5년간 테라노스에 대해 추가적인 특허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심지어 법원조차 이런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홈즈는 거대한 도전들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뛰어난 인물들을 섭외해 능숙히 이를 해쳐나가는 듯하다.
예비역 해병대 장군 제임스 매티스 James Mattis는 작년 가을 테라노스의 화려한 사외이사진에 합류한 이유를 설명하며 “그녀는 실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큰 변화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매티스는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David Petraeus 장군에 이어 2010년부터 (중동 및 중앙 아시아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직을 수행해 오다가 바로 몇 달 전 사퇴한 인물이다.
매티스는 “군에서 강력한 리더의 비전은 해당 부대의 성과와 직결되는 중요 요소다. 그러한 리더십을 다시 한번 발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탁트인 1만 4,000 평방피트 넓이의 테라노스 본사는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 Stanford Research Park한때 페이스북의 본사 소재지였다. 그전에는 팰로 앨토 기술기업의 신화 휼렛-패커드 Hewlett-Packard의 본사가 위치해 있었다-에 있다. 홈즈는 본사 내 회의실에서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은 초록색 주스가 담긴 플라스틱 컵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가 매일 첫 식사로 먹는 이 주스는 시금치, 파슬리, 개밀, 셀러리 등으로 만들어진다. 다음 번에는 오이로 재료를 바꿀 예정이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홈즈는 이 주스 덕분에 오래전 커피를 끊을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버티기 위해서는 채소주스가 건강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홈즈는 멋쩍은 듯 웃으며 종종 식사 후 자신의 혈액과 다른 이들의 혈액을 비교 관찰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브로콜리 같이 건강한 음식을 먹은 사람과 치즈버거를 폭식한 사람의 혈액에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홈즈와 14달러짜리 파스타를 파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식당 매니저는 홈즈가 무엇을 주문할지 알고 있었다. 드레싱이 적은 간단한 믹스 샐러드와 오일이 들어가지 않은 토마토 스파게티였다. 스파게티면은 그녀가 미리 제공한 100% 소맥분으로 만든 것이었다(이 레스토랑은 100% 소맥분 면을 취급하지 않는다). 그녀는 와인은 시키지 않았다.
테라노스를 취재한 4일 내내 홈즈는 같은 옷을 입었다. 검은 재킷, 검은 모크 터틀넥, 넓고 엷은 세로줄 무늬가 들어간 바지, 그리고 굽 낮은 검정 구두였다. ‘좋은 제품’홈즈는 잡스와 같은 열정을 담아 이 단어를 강조한다을 위해 완벽주의를 추구한 스티브 잡스는 홈즈의 영웅이다. 그녀의 집무실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는데 잡스가 췌장암 때문에 CEO직을 사퇴한 2011년 8월 24일 애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사진을 캡처한 것이다.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젊은 홈즈의 외모를 보면, 비판가들이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회사에 대해 떠들어대는 이유를 알겠군’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홈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눠봐도 그녀가 주목 받는 이유를 단박에 알아채기는 힘들 수 있다. 그녀는 겸손하고 부드럽게 말하며, 남의 말을 경청한다. 농담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웃고, 다른 이들을 압도하려 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저음이다. 그런 점들, 다시 말해 젊은 여성의 모습이 그녀의 첫인상이다.
이사회 멤버 헨리 키신저(91)는 “홈즈는 여전히 열아홉 살로 보인다”고 말한다. 많은 리더를 보아온 키신저에게 리더로서 홈즈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그녀와 같은 능력을 가진 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강철 같은 의지와 흔들림 없는 신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급진적이지 않다.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다. 수도승처럼 돈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다. 요란한 스타일도 아니어서 보통 때는 회의 분위기를 장악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제로 관심 분야가 나오면 곧장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설명했다. 필자에게 ‘임무’에 대해 설명할 때가 그랬다.
지난 4월 필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홈즈는 “이런 의료 경험을 보급하는 것은 우리 임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 사명이란 의료행위로 이어질 정보에 적기에 접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후 두 달간 가진 인터뷰에서 이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는 언뜻 상이하고 다양해 보이는 그녀가 가진 비전의 여러 측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주제라 할 수 있다.
홈즈는 침습을 최소화하는 손가락 주사의 사용, 저렴함, 편리한 약국위치 등을 포함해 “접근성과 관련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월그린의 ‘웰빙 센터’는 저녁과 주말에도 열려 있어 혈액 검사를 받기 위해 일을 빠지지 않아도 된다. 월그린 매장 내 검진센터들은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고해상도 LCD모니터에 자연경관(필자의 경우 동양 관악기 연주와 수족관 영상을 감상했다)이 상영되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사혈전문의는 환자의 손가락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감싼 뒤 부드러운 동작으로 마사지한다. 그리고 극도로 얇고 좁은 의료용 칼의 작동버튼을 누른다.
홈즈는 “혈액 검사를 받고 오라는 말을 들은 환자의 40~60%는 검사를 받지 않는다. 주사바늘이 무섭고, 주사 위치가 불편하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탓이다. 진단도 받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방 의료의 시대로 돌입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예방 의료-앞서 말한 임무에서 ‘적기’라는 부분과 관련성이 크다-는 사명의 수행에 무척 중요하다. 홈즈는 모든 영역에서 검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사람들의 검진 횟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려 한다. 마치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재는 것처럼 말이다.
홈즈는 요즘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정도 혈액검사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몇몇 건강정보에 대한 스냅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즉, 통계적으로 정상범주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정도만 판별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진을 더 자주 받으면 영화를 보듯 신체 내부의 변화를 모니터 할 수 있다.
갑작스런 혹은 급격한 단백질 농도 증가통계적으로 정상 범주에 있다 하더라도를 확인한 의료진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파악하고, 늦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조만간 테라노스는 해당 환자의 검진 결과를 과거의 모든 검진결과들과 비교해 지도 형식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홈즈는 “영화 같은 신체 모니터링은 우리 임무의 핵심이다. 이것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 의료진은 훨씬 더 의미 있는 임상 데이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홈즈는 자신이 이 점을 확신하는 이유에 대해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5년 이후 테라노스는 화이자 Pfizer, 글락소스미스클라인 GlaxoSmithKline 등 임상실험을 하는 주요 제약회사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회사 설립 초기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원을 조달함과 동시에 (비밀 협약조약 하에) 은밀히 자사 기술을 갈고 닦기 위한 방편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임상실험 피실험자들의 혈액을 검사해정맥에 주사를 직접 찌르는 ‘정맥천자 방식(venipuncture)’으론 불가능했다 부작용을 늦지 않게 찾아내는 일을 수행했다.
홈즈는 “우리는 조기점진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나 보내야 하는 것보다 큰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병을 조기 진단해 제때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검진 인프라는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본인권이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개발 중이다”라고 말했다.
홈즈는 1984년 2월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크리스천 홈즈 4세 Christian Holmes IV는 평생을 정부의 공공 서비스-아프리카 재난 구호, 중국 국제 개발 프로젝트, 중국 환경 보호 등-에 바쳤다. 현재는 미 국제개발 기구(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의 글로벌 물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의회에서 부인 노엘 Noel을 만났다. 당시 노엘은 국회 위원회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홈즈는 어린 시절 고조 할아버지 크리스천 홈즈 1세에 대한 전기를 읽었다. 그는 훈장을 받은 1차 대전 참전용사이자 엔지니어, 발명가, 외과의사였다. 심지어 신시내티 대학교 메디컬 센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병원이 있다. 여덟 살 때 온 가족이 고조 할아버지에 대한 전시를 보기 위해 그 병원을 방문한 적도 있다.
홈즈는 “할아버지는 결국 과로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당신의 일에 무척 열정적이셨다. 그래서 나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크리스천 홈즈 1세는 62세에 사망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피를 보는 걸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친구가 수술 집도 장면을 볼 기회를 마련해 주었지만 도중에 기절해 버릴 정도였다. 그녀의 부모는 홈즈를 용감한 아이로 기억하지만 주사를 맞거나 채혈을 할 때는 예외였다.
홈즈는 “바늘로 찔러 피를 뽑아낸다는 생각은 언제나 공포스러웠다. 혈액검사를 해야 할 때는 몇 주 전부터 마음을 졸여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는 검사 받기를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정맥주사를 맞았던 건 2007년으로, 이사회가 경영자 보험 가입을 요구해 ‘울며 겨자먹기’로 한 것이었다.
홈즈가 아홉 살이 됐을 때, 아버지는 대형 자동차 부품회사 테네코 Tenneco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휴스턴에 새로 살 집을 장만했다. 아버지는 그때 워싱턴 D.C.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아들(크리스천 홈즈 5세)과 딸을 강제로 이사하게 만든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다. 때문에 딸이 보낸 편지를 받았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다. 편지에서 홈즈는 아버지에게 “저는 모험을 좋아해요. 텍사스에서의 새로운 모험이 무척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홉 살짜리 소녀가 ‘사랑하는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첫 문장이었다. 어린 홈즈는 ‘제 삶에서 진심으로 이루고 싶은 일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거예요. 인류가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새로운 발견이요’라고 썼다.
홈즈와 (현재 테라노스 제품 매니저로 일하는) 남동생은 모두 아버지의 중국 업무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홈즈가 아홉 살이 될 무렵 부모는 개인 교사를 붙여 토요일마다 중국어를 가르쳤다. 홈즈는 스탠퍼드의 여름 랭귀지 프로그램을 들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나중에는 베이징의 두 대학에서도 중국어 코스를 수강했다. 홈즈는 고등학교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매료됐다. 그리고 중국 대학의 열악한 정보기술 시설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게는 당연한 프로그램조차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홈즈는 고등학생 시절 중국 대학에 C언어 컴플라이어를 판매하는 자신의 첫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테네코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이든, 집안내력홈즈는 플라이쉬만스 이스트 컴퍼니 Fleischmann‘s Yeast company 창업주의 자손이다때문이든 그녀는 개인 사업을 동경하며 자랐다. 그녀는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변화시킬 가장 좋은 기회는 창업이라 믿기 시작했다. 창업은 세상을 변화시킬 도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홈즈는 스탠퍼드에 조기 입학했다. 아버지는 대학교로 떠나는 딸에게 로마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의 명상록을 선물했다. 그는 필자에게 “딸이 명상집을 읽고 목적의식 있는 삶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길 바랐다. 실제로도 큰 영향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입학하자마자 홈즈는 ‘대통령의 장학생들(president’s scholars)’ *역주: 싱가포르 정부가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가리킨다로 알려진 엘리트 신입생 그룹에 들어갔다. 이 학생들은 3,000달러씩을 학교로부터 지원받아 연구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다. 홈즈는 신입생임에도 담당 화학공학과 교수 로버트슨을 설득, 그녀의 연구비를 ‘기부’하는 대신 그의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홈즈는 게놈 연구소에서 일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했다. 당시 연구소는 혈액과 콧물 샘플로 사스(SARS) 바이러스를 탐지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 중이었다. 홈즈는 “당시는 정규 생물학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공부해야 했다. 동시에 스탠퍼드에서 배웠던 엔지니어링 및 기술 교육 덕분에 ‘게놈 연구소에서 이뤄지던 테스트들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만들 방법이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홈즈는 미국으로 돌아 오자마자 특허신청서 작성을 시작했다. 경험을 아이디어로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머니 노엘은 “딸 아이가 5~6일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꼼짝 하지 않았다. 나는 간간이 먹을 것을 갖다 줬다. 5일 동안 1~2시간밖에 자지 않은 것 같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홈즈가 초안 작성을 끝낸 날, 노엘은 딸을 데리고 휴스턴에서 스탠퍼드로 차를 몰고 갔다. 모녀간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는 의도였지만 홈즈는 이틀 내내 차에서 잠만 잤다고 한다.
이후 홈즈의 부모는 딸이 창업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몰랐다). 때문에 홈즈가 다음 학기 때 휴학을 하고, 회사 경영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교육비로 저축해둔 돈을 홈즈에게 주고 회사를 위해 사용하도록 했다.
홈즈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길 바라나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꿈을 좇아 사람들을 돕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며 살기를 바라겠죠. 그래서 우리는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죠”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홈즈의 첫 특허신청실시간으로 혈액 내 정보를 전송해주는 붙이는 패치은 어떻게 730억 달러 규모의 진단업계에서 활동 중인 테라노스로 이어지게 됐을까?
제 때에 ‘치료와 직결되는 정보(actionable information)’를 제공하자는 홈즈의 핵심 사명에 대해 다시 살펴보면, 그녀가 의도한 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패치는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혈액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영화’처럼 보여준다. 홈즈는 원래 회사명을 리얼-타임 큐어스 Real-Time Cures로 지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큐어(치료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 곧 사명을 바꿨다.
서니 발와니 Sunny Balwani는 2002년 홈즈를 처음 만났고, 2009년 이후 테라노스의 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홈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회사를 이끌 방향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을 먼저하고, 언제 무엇을 제공할지에 관한 비즈니스 전략은 조금씩 바뀌어왔지만 전체적인 목표와 방향은 일관됐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에 전자 상거래 기업을 설립하고 매각한 발와니는 소프트웨어 제품 제작 전문가다.
홈즈는 10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자금을 조성하고 기술을 향상시켜왔다. 자금에 대한 필요성이 무척 컸지만 수많은 제안을 거절했다. 대부분 투자자들은 빨리 이익을 내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홈즈는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출구 전략이 무엇인가?’였다. 진입 전략도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말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홈즈는 자신이 키우고 있는 기업이 “30년, 40년, 50년 후 ‘치료와 직결되는 정보’ 획득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초기 투자자로는 (테슬라 Tesla와 스페이스X SpaceX에 자금을 지원한) 벤처캐피털회사 DFJ(Draper Fisher Jurvetson), ATA 벤처스 ATA Ventures, (오라클 Oracle, 내셔널 세미컨덕터 National Semiconductor, 매크로미디어 Macromedia 등에 투자한) 실리콘밸리의 전설 도널드 루카스 시니어 Donald Lucas Sr., 그리고 오라클 CEO 래리 엘리슨 Larry Ellison등이 있었다. 홈즈는 이후 투자자들에 대해선 정확히 모르고 있는 상태다. 단지 사모펀드와 전략적 파트너-그녀의 기준으로는 테라노스와 함께 성장할 주체들-등이 포함돼 있다고만 말한다. 지금까지 4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음에도 홈즈는 여전히 회사 주식의 과반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홈즈는 계속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고 기존 발명품들을 업그레이드 시켜왔다. 이사회 멤버 슐츠는 “홈즈의 말을 빌리면, 최고의 특허는 스스로를 한물간 것으로 만든다. 때문에 누군가 당신의 특허를 훔쳤다면 그것은 어제의 기술을 훔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홈즈는 미국 특허신청 82개, 해외 특허신청 189건의 공동 개발자로 그중 18개는 미국 특허를, 66개는 해외특허를 받았다. 이것은 테라노스가 홈즈를 개발자로 등재하지 않고 전 세계에 출원한 특허 186개와는 별개이다.
필자는 ‘홈즈가 테라노스를 이끄는 전체적인 목표와 방향이 일관되어 있다’는 발와니의 말을 믿는다. 하지만 월그린의 검진 센터가 홈즈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풀리지 않은 퍼즐들이 많다. 규제허가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스티브 잡스처럼 화려한 제품의 공개에 앞서 완벽함에 만전을 기하고 있을 수도 있다.
홈즈가 끊임없이 자신의 비전을 구체화하려 함에 따라, 화학 공학을 가르쳤던 노교수 로버트슨도 홈즈의 집무실에서 20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돕고 있다. 로버트슨은 수년간 테라노스의 무급 이사직을 역임한 뒤 2009년 유급 컨설턴트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 6월에는 테라노스의 정식 직원이 되었다.
그는 “이 일을 하기 위해 교수직 제안을 두 개나 고사했다. 그걸로 내 할말을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70세가 아니라 홈즈의 나이에 이 일을 맡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흥미롭고 신나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눈앞에 다가온 진정한 의료 혁신이다.”
- 마크 러릿, UCSF 메디컬센터 CEO
A Singular Board
최고의 이사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테라노스의 이사진. 전직 장관 3명, 전직 상원의원 2명, 그리고 예비역 장군들이 포진해 있다.
테라노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상장 기업이지만, 공직자 출신들을 위주로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이사진을 꾸리고 있다. 여기에는 전직 장관 3명, 전직 상원의원 2명, 예비역 해군사령관, 예비역 해병대 장군이 동참하고 있다.
테라노스의 설립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2011년에 미국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바꾸기 위해선 최고 전략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그해 7월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Hoover Institution)에서 국무부와 재무부,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조지 슐츠 George Shultz(위 사진)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슐츠는 행정관리 예산국(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국장을 포함해 4개의 장관급 직책을 수행했으며, 대형 엔지니어링 기업 벡텔 그룹 Bechtel Group의 사장과 바이오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 Gilead Sciences의 이사로도 활동한 바 있다.
10분으로 예정됐던 슐츠와의 인터뷰는 2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슐츠는 홈즈의 기술이 의료 서비스에 미칠 영향에 큰 흥미를 느꼈다. 뿐만 아니라 홈즈의 ‘순수한 동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같은 달 테라노스 이사진에 합류했다.
홈즈는 “처음 만난 이후로 우리는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테라노스의 거의 모든 사외이사들은 슐츠(93)를 통해 소개받은 이들이다. 전 국방부 장관 빌 페리 Bill Perry, 전 국무부 장관 겸 국가 안전 보장 담당 대통령 보좌관 헨리 키신저 Henry Kissinger, 전 상원의원 샘 넌 Sam Nunn, 전 상원의원 겸 심장이식 전문의 빌 프리스트 Bill Frist, 예비역 해군 제독 제임스 매티스 James Mattis, 전 웰스 파고 Wells Fargo CEO 겸 회장 딕 코바세비치 Dick Kovacevich, 전 벡텔 그룹 CEO 라일리 벡텔 Riley Bechtel 등이다.
슐츠는 “세상에 보탬이 돼야 사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보탬도 되지 못한다면 (삶의 의미가 없다)…. 그것이 내 신념이다. 그런 면에서 홈즈와 나는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