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경영 정상화에 총력을 쏟아 붓고 있다. 올 하반기 안에 주요 계열사 워크아웃을 마치고 ‘제2의 창업’을 이루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금호고속은 우리의 모태 기업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인수할 겁니다.” 금호아시아나가 금호고속 인수전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며 잠재적 경쟁사들을 견제하고 있다.
최근 금호고속이 M&A 시장 매물로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금호고속의 최대 주주인 IBK투자증권·케이스톤 파트너스 사모펀드는 최근 BoA메릴린치를 주관사로, 안진회계법인을 회계자문사로 선정하고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잠재적 인수후보를 접촉해 의사 타진을 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우선매수권을 내세워 재인수 의사를 밝혔다. 8월 3일 보도자료를 내고 “금호고속이 금호아시아나가 아닌 제3자에게 매각될 경우 더 이상 ‘금호’라는 고유 브랜드를 수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경고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호고속 인수에 열을 올리는 건 무엇보다 금호고속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금호고속은 오늘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기반이 된 모태기업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부친이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은 1946년 금호고속(구 광주여객자동차)을 설립하고, 이후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게다가 금호고속은 알짜회사다. 매년 영업이익 500억 원 이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명분과 실리 모든 면에서 놓칠 수 없는 매물이란 것이다.
현재 금호고속의 최대주주는 IBK투자증권·케이스톤 파트너스 사모펀드다. 2012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재정난을 겪으며 금호고속을 매각했다. 금호고속 지분 100%와 서울고속터미널 39%, 대우건설 12.3%를 합쳐 9,500억 원에 팔았다. 이때 단서를 달았다. 금호고속이 재매각될 경우, 금호아시아나가 우선매수협상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 우선매수권에는 기한이 있었다. 내년 2월까지다. 때문에 그룹은 이 기한 전에 금호고속을 되찾아야 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업계에서는 금호고속의 매각가를 4,000억~5,00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6,000억 원을 호가할 수 있다는 일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호 측은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지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팔려는 이와 사려는 이 사이에 입장 차이가 큰 셈이다. 사모펀드는 높은 값에 팔아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안겨줘야 한다. 반면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높은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능한 한 매입 가격을 낮춰 그룹의 재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올해 안에 주요 계열사의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에 차질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
금호아시아나의 위기
금호아시아나 주요 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건 2009년 말부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덩치를 비약적으로 키웠지만, 부메랑을 맞고 쓰러졌다. 빚으로 벌인 잔치라는 게 문제였다. 차입금 비중이 너무 높았다. 금융위기가 몰아치자 이자 비용이 급격히 늘어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였다. 그 후 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토해내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을 시작했다.
그 사이 ‘형제의 난’도 겪었다. 무리한 구조조정에 대한 책임론이 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친동생이 문제를 제기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름다운 형제경영’을 자랑하곤 했다. 박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경영권은 장남 고 박성용 회장, 2남 고 박정구 회장을 거쳐 3남인 박삼구 회장에게까지 이어져 왔다.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묵묵히 형을 도왔다. 4형제가 회사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가졌다.
하지만 그룹이 경영난을 겪으며 형제 사이가 벌어졌다. 박찬구 회장은 자신이 가진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였다. 대우건설이 매각되면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맡게 될 상황이었다. 이에 박삼구 회장도 대응했다. 지분을 추격 매수하고,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회장을 대표이사에서 전격 해임했다. 박삼구 회장 역시 책임을 지고 그룹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두 회장은 오래 지나지 않아 경영에 복귀했다. 이듬해 2월 채권단은 금호석유화학의 분리 경영을 결정하고 박찬구 회장을 불러들였다. 박삼구 회장 역시 같은 해 11월 돌아왔다. 채권단이 강력한 오너가의 리더십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룹은 현재 분리 수순을 밟고 있다. 박삼구 회장이 지배력을 가진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과 박찬구 회장이 오너로 있는 금호석유화학으로 나뉘고 있다. 아직은 미완이다. 금호석유화학이 보유 중인 아시아나항공 지분이 관건이다. 금호석유화학 측은 지분 매각을 미루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게 이유다. 이로 인해 신경전과 법정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부활
박삼구 회장은 새‘ 로운 금호아시아나’를 세우려 하고 있다. 박 회장은 6월 열린 박인천 회장 30주기 추모식에서 “선친의 기업가 정신과 가르침에 따라 제2 창업으로 새로운 비상과 도약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이루려면 올 하반기에 승부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계열사는 올 연말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재무실사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채권단은 8월 금호산업에 이어 9월 금호타이어 실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채권단과 자율협약 중인 아시아나항공도 10월 중 실사를 진행한다. 독자 경영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채권단 결의를 통해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계열사별로 실적과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어 기대감을 품게 하고 있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1분기부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악의 건설경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영업이익을 창출해 기업의 내실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분양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실적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다. 금호타이어도 견고한 실적을 바탕으로 경영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엔 매출 1조 7,543억 원, 영업이익 1,987억 원, 당기순이익 853억 원을 달성했다. NH농협증권은 “3분기에도 수익성 개선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말쯤에는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은 2분기 29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중국 여객수송량이 증가하면서 매출이 늘었고,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연료비가 절감됐기 때문이다. 상반기 실적을 보면, 매출액은 2조 8,25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늘었고 영업이익은 9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당기순손실은 583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00억 원 줄었다. 증권가는 하반기 실적개선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민석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항공업종은 하반기 성수기에 들어간다”며 “실적에 대한 모멘텀이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올해 안에 경영정상화를 매듭 지을 수 있을까?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대외상황은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을 졸업하면, 채권단은 박삼구 회장에게 채권단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박 회장은 이를 통해 최대주주 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박삼구 회장은 이미 계열사들을 하나둘 되찾아오고 있다. 2012년에는 금호터미널을 인수했고, 올 초에는 금호리조트를 다시 사들였다. 최근엔 금호고속 인수를 벼르고 있다. 올해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성공적으로 금호고속을 인수하면, 그룹을 재건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진정한 결자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