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팟 개발을 주도한 파델은 한때 CEO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설립한 네스트 Nest를 최근 구글에 32억 달러에 매각하고, 가정주택의 혁신을 꿈꾸는 세계최대 검색엔진 업체의 기술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BY ADAM LASHINSKY
1990년대 후반 젊은 사업가였던 토니 파델 Tony Fadell이 스튜어트 앨솝 Stewart Alsop을 만났다. 그는 이제 막 언론인에서 벤처 투자자로 변신한 앨솝을 설득해 자신의 신생기업 퓨즈 프로젝트 Fuse Project에 투자를 하라고 요청했다. 파델은 모바일 소프트웨어의 선구자였던 제너럴 매직 General Magic에서 근무했고, 필립스 Philips로 옮겨서는 휴대용 기기 생산부서를 만들었다. 제너럴 매직도, 필립스의 휴대용 컴퓨터도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파델은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새로운 벤처자금을 투자 받으려 했다. 그의 사업설명은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다. 앨솝은 “그는 결국 ‘휴대용 기기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내게 투자하라’고 말한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앨솝은 그 투자요청을 거절했다.
10여 년이 지난 후, 파델은 다시 벤처자금 투자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 동안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파델은 퓨즈 프로젝트를 접고 애플에 합류, 아이팟 제작팀을 이끌었다. 이 단 하나의 업적-아이팟은 애플을 회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음악 시장 자체를 재편했다-을 통해 파델은 고난을 겪던 사업가에서 큰 성과를 이룬 경영자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또 그는 스티브 잡스의 잔소리와 격분도 버텨낸 인물이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아이팟의 ‘대부’로 알려지게 됐고, 아이폰 개발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이력서에 빛나는 한 줄을 추가하기까지 했다. 2008년 파델이 애플의 경영진에서 물러나자 그의 다음 행보에 대해 많은 추측이 난무했다.
파델은 섣불리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았다. 몇 년간 쉬면서 여행을 다니고 별장도 한 채 지었다. 그중 별장에 대한 경험이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 설치할 기존 온도조절장치를 기존 제품에서 선택하려 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 쓸만한 온도조절장치를 새로 설계하기로 마음 먹었고, 네스트 랩 Nest Labs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파델이 다시 한 번 투자유치를 시도한 2010년, 그 반응은 예전과는 달리 우호적으로 변해 있었다. 파델의 사업설명 기술은 한층 세련되게 변해 있었다. 클라이너 퍼킨스 커필드 앤드 바이어스 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의 파트너 랜디 코미사 Randy Komisar는 제품 위에 드리워져 있던 검은색 벨벳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파델은 꼼꼼하게 사업설명을 진행하고 나서야 마침내 그 벨벳 덮개를 걷어냈다.
애플 전문가가 제품을 덮어 가렸던 건 스티브 잡스에게 보내는 확실한 오마주였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전 CEO는 회의에서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하는 자리에서도 일단 먼저 제품을 가려놓곤 했다. 제품 공개와 함께 큰 놀라움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파델이 베일을 걷어내고 스티로폼으로 만든 원형 온도조절장치 시제품을 공개했을 때, 코미사는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는 “더 이상 실망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미사는 파델의 마지막 슬라이드를 본 후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온도조절장치 출시 후 가정주택에서 사랑 받지 못하는 모든 기기에 같은 마법을 걸겠다는 것’이었다. 코미사는 “그때 깨달았다. 네스트는 가정으로 진입하는 트로이 목마였다. 48시간 후 우리는 토니를 위한 수표를 준비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현재 네스트가 내놓고 있는 제품은 두 가지다. 회사는 ‘학습형’ 온도조절장치를 기반으로 2013년 지능형 연기감지장치를 출시했다. 그리고 지난 1월 32억 달러에 자신의 사업을 구글에 넘긴 파델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네스트는 여전히 더 많은 제품을 가정주택에 판매할 수 있는 ‘통로’로 남아있다. 또 구글은 애플과 컴캐스트 모두에게 잠재적인 위협으로 등극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기도 했다. 애플은 소비자에게 다가갈 더 많은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컴캐스트는 통신업계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다.
파델은 이제 실리콘밸리에서 특별한 인물이 되었다. 유일하게 파델만이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다가 애플에서 나온 후에도 큰 성공을 이뤄냈다. 파델은 전 CEO의 ‘디지털 거실’이라는 개념과 막 피어나기 시작한 문화요소인 ‘사물 인터넷(광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일상기기가 연결된다는 비전)’을 잇는 가교가 되고 있다. 애플 내에는 정말 특별한 인물을 위한 자리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른 팀원은 온전히 기업 경영자로 성장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파델은 애플 경영진에 적용되는 이 일반적인 법칙에서 벗어난 유별난 인물이 되었다.
파델은 반쯤 독립한 형태를 유지하는 네스트를 여전히 경영하고 있다. 구글 CEO 래리 페이지 Larry Page에게 보고도 하고 있다. 네스트의 직원 규모는 빠르게 성장해 460명을 상회한다. 앨솝은 실리콘밸리에서 돌고 있는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네스트가 아직 신생기업이란 점을 고려하면, 구글 CEO가 네스트 인수를 위해 쓴 자금은 10억 달러에 불과하며 파델 영입을 위해 20억 달러를 더 투자했다는 것이다. 앨솝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동의했다. 코미사는 네스트의 가치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 확신했고, 그래서 파델에게 사업을 구글에 매각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그는 “래리가 애플의 유전자를 저렴하게 사들였다”고 지적했다.
파델(45)은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왔다. 이를 경력관리나 기업가정신이라는 면에서 보면 매우 인상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많은 것을 스티브 잡스에게서 배웠지만, 네스트의 성공이 전적으로 멘토 덕분만은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파델이 애플을 떠나기 전, 그가 차기 CEO가 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파델을 다시 영입하려는 부분적인 목적에서라 애플이 네스트를 인수할 수 있다는 예측이 실리콘밸리에서 나왔을 때에도 같은 소문이 돌았다.그렇다면 애플을 떠난 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파델은 다시 옛 터전으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결국 구글에서 페이지의 뒤를 이을 후보자가 될 것인가? 파델이 네스트를 이끌면서 가정주택 곳곳의 기기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혁신하는지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수 있다.
파델의 이야기는 미시간 주에서 시작한다. 그가 태어난 곳이며, 부친의 직장 때문에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던 가족이 자주 돌아간 곳이기도 하다. 파델의 부친은 청바지 제조업체 리바이 스트라우스 Levi Strauss의 영업 간부였고, 파델은 15년 동안 12개의 학교를 전전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로세 푸앵테 사우스 고등학교(Grosse Pointe South High School)에서 1학년과 고학년 시절을 보냈고, 당시 자동차업계의 여러 엘리트 경영진 자녀와도 친구로 지냈다.
파델의 ‘중서부 가족’ 배경은 그가 성장기에 돌아다녔던 다양한 장소만큼이나 다양했다. 어머니는 폴란드인 타운(Polish Town)으로 알려진 디트로이트 지역 노동자 가정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스페인 톨레도 Toledo의 레바논 대가족에서 자랐다. 파델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레바논 음식을 먹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폴란드-러시아 음식을 먹곤 했다”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정수리가 훤하고 목소리가 큰 파델은 손재주가 뛰어나다. 그는 “손재주는 미시간 주 교육감이었던 외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할아버지는 이웃집에서 뭔가 고장 나면 곧잘 고쳐주곤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너트, 볼트, 전선을 하나하나 다 챙기셨다”며 “시가 박스에 수많은 것들이 있었고, 함께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새집, 잔디 깎기 등을 만들었다. 도구를 참 좋아하셨다”고 회상했다. 10대 시절 파델은 여름학교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후 애플 II 컴퓨터를 탐내게 됐다. 그의 외조부는 PC를 드라이버나 톱 같은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델이 지역 골프장 캐디로 버는 만큼의 금액을 더 보태 컴퓨터를 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컴퓨터와 손재주가 파델의 경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기숙사에서 아동용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업을 운영하다가 이를 매각했다. 1991년 파델은 대학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 입성, 제너럴 매직에 입사했다. 그는 회사의 혁신적인 플랫폼이었던 매직 캡 Magic Cap을 구동할 기기를 제작하려 했으나, 경영진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TV 제조업체였던 필립스 측에서 더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 파델은 필립스로 자리를 옮겨 마이크로소프트 CE-거대 소프트웨어 업체의 모바일 분야 초기 시도 중 하나-를 기반으로 하는 제품을 제작했다.
필립스의 휴대용 기기 벨로 Velo와 니노 Nino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파델은 그때 영업과 마케팅을 비롯한 경영진의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품 프로모션을 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필립스의 영업직원은 텔레비전을 판매할 때 커미션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파델은 스티브 잡스와 그의 하드웨어 부문 부사장 존 루빈스타인 Jon Rubinstein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휴대용 음악재생기 개발에 합류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당시 파델은 위험요소를 알고 있었다. 그는 “스티브와 이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필립스에서 마케팅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 판매나 마케팅이 불가능한 제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경영진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잡스의 대답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파델은 “스티브가 ‘소니에 맞서게 될 것’이라 단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파델은 2001년부터 애플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새 아이팟 팀 지원업무를 맡았다. 그는 빠르게 정직원이 됐으며 호전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첫 상사였던 루빈스타인, 천적일 수밖에 없던 모바일 소프트웨어 책임자 스콧 포스톨 Scott Forstall, 그리고 잡스와도 자주 언성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잡스가 파델을 여러 번 해고했다는 얘기도 있다. 파델은 사실 자신이 여러 번 그만둔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아이팟 팀 주요 직원 몇 명이 애플의 다른 프로젝트에 갑자기 투입된 적이 있었다. 그때 파델은 그만두겠다고 했고, CEO는 반대하며 그에게 과잉반응이라고 말했다. 파델은 그때 “‘과잉반응이 아니다’라고 단언한 후 사직 의사를 밝혔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그는 최소 두 번 정도 퇴직 결정을 철회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고 한다).
잡스와 파델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같을 때도, 교장과 문제아 같을 때도 있었다. 파델은 “그는 내가 너무 질문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파델은 “나는 정말 계속 ‘글쎄,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는 ‘이미 충분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매우 귀찮게 하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가 내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나를 지치게 했다. 그때 나는 ‘스티브, 나 좀 내버려둬요’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파델은 잡스와 언쟁을 벌였다는 것만으로 애플에서 유별난 존재가 된 게 아니었다. 그가 외부 인사와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였다. 그는 신생업체 사업가와 벤처투자자를 만나곤 했다. 이러한 관계는 잡스가 홀로 관리하기를 원했던 부분이었다. 파델은 뉴욕 타임스의 IT 담당 기자 존 마크오프 John Markoff와 함께 자주 사이클을 타는 등 언론인과도 친분을 유지했으며 클라이너의 코미사와도 연락하며 지냈다.
파델이 애플의 인사책임자 대니엘 람베르트 Danielle Lambert와 만남을 시작하자 잡스와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동료 직원의 소개로 처음 만났을 때 파델과 람베르트는 애플 본사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잡스가 두 사람을 목격하면서 이 만남은 어색해지고 말았다. 잡스는 자신의 주요 경영진 두 명이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실을 혼란스러워했다. 람베르트는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애플 내 고용책임자로까지 성장한 인물이었고, 잡스 또한 인사관리에 있어 이 부분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이 커플과 친분이 있으며 네스트에 투자한 바도 있는 제리 머독 Jerry Murdock은 “스티브에게 그녀는 주요 인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항상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파델과 람베르트는 애플에 있을 때 결혼했고, 2008년에 함께 사임을 발표했다. 이 부부와 두 아들-최근 람베르트가 첫 딸을 낳았다-은 곧바로 프랑스로 떠났고, 파리에 아파트 한 채를 얻어 새로운 살림을 시작했다.
파델은 애플과의 이별을 ‘은퇴’라 표현했다. 잡스의 고문역을 맡으면서 맺었던 계약에는 퇴직 관련 조항이 있었고, 그로 인해 파델은 18개월간의 휴식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이 기간을 즐겼다. 이때 파델은 레이크 타호 Lake Tahoe 근처에 멋진 별장을 지으면서 직접 별장 곳곳에 신경 썼고, 더 나은 온도조절장치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기도 했다. 개선할 수 있는 가정주택 기기가 많다는 점을 깨달아 이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2009년 가을, 결혼식 참석 차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파델은 애플에서 자신의 인턴으로 근무했던 맷 로저스 Matt Rogers와 점심을 함께했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로저스는 아직 애플에서 근무 중이었다. 그때 파델의 옛 부하직원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로저스(31)는 “토니도 없는 상황에서 그의 측근이라는 사실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 해, 파델이 캘리포니아로 돌아오자마자 로저스는 애플을 그만두고 파델과 함께 베일에 가려진 신생업체의 공동설립자가 되었다. 사무실은 스탠퍼드 대학교 근처 창고에 차려졌다.
벤처사업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던 파델은 처음부터 네스트를 다방면으로 고민했다. 저명한 조언자의 도움을 얻는 것도 이에 포함됐다. 예컨대 영업이나 마케팅, 운영에 관한 조언은 인튜이트 Intuit의 회장 빌 캠벨 Bill Campbell에게 부탁했다. 캠벨은 애플 이사로서 파델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고, 실리콘밸리에서도 잘 알려진 경영 조언자였다. 파델은 투자자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는데, 1차 투자유치에선 클라이너가 벤치마크 캐피털 Benchmark Capital을 앞섰다. 후에 구글 벤처스 Google Ventures를 비롯한 다른 벤처투자업체가 투자에 합류했다. 구글의 데이비드 크레인 David Krane은 “그가 우리에게 설명한 사업이 스노 타이어나 기저귀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해도 수천만 달러를 투자할 의사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델이 초기 투자자에게 선보였던 것은 최첨단 온도조절장치와 연기 및 일산화탄소 감지장치였다. 온도조절장치는 구슬모양으로 와이파이 기능을 갖춘 센서를 탑재했으며 가격은 249달러였다. 이 제품의 혁신적인 면은 바로 소비자의 습관을 ‘학습’하고, 스마트폰을 통한 원격조작이 가능하며, 전기절약을 위한 여러 기술이 적용됐다는 점이었다. 네스트는 2011년 이 온도조절장치를 첫 제품으로 출시했다. 회사는 지금까지 매출을 공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수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네스트의 온도조절장치가 약 100만 대 팔렸다”고 밝혔다. 연기 및 가스를 감지하는 네스트 프로텍트 Nest Protect는 표준 기기를 바탕으로 소비자 친화적인 부분을 추가해 설계했다. 예를 들어, 배터리가 부족한 경우 밤새도록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로 부드럽게 경고를 한다. 한편으로 네스트는 올 초 연기 감지장치 44만 대를 리콜하며 오명을 쓰기도 했다. 소비자 제품 안전위원회(Consumer Product Safety Commission)가 제품에 결함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사용자가 의도치 않게 전원을 끌 수 있다는 문제도 발생했다.
파델이 자신의 신생업체에 어떤 형태의 문화를 창조할지 고민하는 동안, 람베르트는 그에게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 키스 야마시타 Keith Yamashita를 소개해주었다. 네스트는 겨우 몇 개월밖에 안 된 기업이었지만, 야마시타는 파델을 도와 기업의 ‘사업 성격’을 작성하도록 했다. 야마시타는 “내게 감명 깊었던 부분은 그가 오랜 기간 CEO를 역임한 경영인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리더십에 대한 질문, 문화에 대한 질문, 집중에 대한 질문, 네스트를 특별하게 만들 본질적인 성질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 삶의 일상적인 사물을 혁신하려는 파델의 비전에 대해 고민했고, 그 사물을 유용하게 바꿀 뿐만 아니라 영향력을 지니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파델과 로저스는 주로 최고 경영진 영입에 집중했고, 특히 애플의 임직원을 목표로 두고 법률, 공학 및 인사 부문의 인재를 유치하려 했다. 로저스에 따르면 애플에선 거의 몰랐다고 한다. 그는 “애플은 거대 기업”이라며 “특히 토니가 떠난 후 아이팟 사업은 그 중요성이 떨어져 하향세에 있었다. 훌륭한 인재가 또 다른 일을 한다는 데에도 큰 경각심은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네스트에는 람베르트라는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그녀는 최고위급 인사 영입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파델은 “그녀가 쉽게 ‘이해했다. 내가 처리하겠다’고 말했다”며 “기업 규모에 상관 없이 이만큼 큰 힘이 될 수 있는 인재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저 남편의 입장에서 편드는 말은 아니었다. 어떤 기업이든 그녀가 정규직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할 수만 있다면, 람베르트는 많은 기업이 원하는 최고 수준의 인사전문가 역할을 할 것이다. 트위터의 공동설립자이자 급성장 중인 신생업체 스퀘어 Square의 CEO인 잭 도시 Jack Dorsey는 최근 공개 행사에서 람베르트를 만나자 “당신을 영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들었다”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파델과 로저스는 신생기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한 경영진을 꾸렸다. 예컨대 처음으로 뽑은 경영진 중 한 명은 애플에서 근무하던 무선 주파수 최고 전문가 시게 혼조 Shige Honjo였다. 당시 관리해야 할 엔지니어링 팀은 물론, 아직 제품도 없었지만 혼조는 애플에서의 직위 그대로 네스트의 엔지니어링 제품 매니저에 임명되었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였던 네스트는 혼조의 합류와 함께 인맥은 물론 공급업체의 신뢰까지 얻을 수 있었다. 혼조는 신생업체는 미팅 기회를 잡는 데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애플 출신이 설립한 네스트는 상황이 달랐다. 공급업체 측은 과거에 전화통화를 주고 받았던 경영진과 다시 일하고 싶어했다. 혼조는 “텍사스 인스트투먼트 Texas Instrument의 CEO는 창고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네스트를 설립한 파델과 로저스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건 바로 애플의 문화였다. 네스트에는 애플에 없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면, ‘네슬링 Nestlings’이라 불리는 여름 인턴들이다. 이들에게는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개인의 생각을 혼자 지니는 것이 최고 덕목인 애플과는 분명 다르다. 애플은 부서가 확실하게 구분된 기업이다. 네스트는 부서 간 분리를 지양한다. 전 애플 고용담당자이자 현재 네스트의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호세 콩 Jose Cong은 “여기는 모두 한 지붕 사람인 게 다르다”면서 “모두가 함께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잡스의 애플과 파델의 네스트에 같은 점이 있다면, 회사 안에 총책임자가 존재한다는 명확한 사실이다. 파델은 회사 블로그의 글부터 온도조절장치 센서의 지침이 되는 알고리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부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그는 꼼꼼하게 준비하는, 매우 대하기 어려운 윗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모든 직원이 자신과 같기를 원한다. 그는 “나는 엔지니어에서 시작했다”며 “모든 변수를 알고 싶어한다”고 강조했다.
2013년 말에 접어들면서, 네스트는 추가 투자유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신생업체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이름을 알린 투자업체 두 곳-리즈비 트래버스 매니지먼트 Rizvi Traverse Management와 디에스티 DST-이 네스트에 30억 달러가량을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래가 유망하다고 판단한 구글 또한 벤처 자회사를 통해 이미 투자를 진행했다. 기업 전체를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했다.
구글은 아울러 네스트의 독립적 운영을 약속하고, 파델과 로저스의 직위를 유지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네스트는 거대 검색엔진 업체의 본사가 위치한 마운틴 뷰로 옮기지 않고, 팰러 앨토에 머물 예정이다. 로저스는 “회사를 매각했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직원들에게 이야기 한 것도 그저 우리에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기회가 생겼다는 정도였다.”
네스트 인수의 주요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네스트에게 적당한 수익이 아닌 엄청난 수익을 신속하게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투자자 코미사는 “구글은 향후 몇 년간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이 회사에 쏟을 생각”이라면서 “한 사람의 벤처 투자자로서 내가 운용할 수 있는 규모는 수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파델과 그의 여러 동료는 네스트의 다음 제품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그는 주택보안, 보건 및 안전, 물 절약 등을 가능성 있는 분야로 언급했다. 몇몇 확실한 정보를 통해 네스트의 큰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고용책임자인 콩은 구글의 네스트 인수할 당시 7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월 “6주 내로 내게 보고하는 직원의 수가 30명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네스트의 다음 제품 출시와 관련, 로저스는 “소비재라면 항상 크리스마스 전에 제품을 내놓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글의 고위 경영진 중에는 하드웨어 전문가가 별로 없다. 때문에 네스트 인수가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은 파델이 거대 검색엔진 업체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 추측성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현재, 파델은 구글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를 할애해 구글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회사 내 다양한 위치의 간부를 만나는데, 그 목표는 두 가지라고 한다. 바로 구글에 대해 배우고, 더 큰 회사가 네스트를 지원할 방법을 찾는 것이란다.
몇몇 내부관계자는 구글 사업에서 하드웨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파델이 운영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 예상한다. 과거 래리 페이지의 고문을 맡은 바 있는 빌 캠벨은 “토니가 그곳에 더 자주 드나들면서 경영진의 한 명이 된다면 하드웨어에 대한 전문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캠벨은 “그는 참을성이 없다. 모두가 그와 같은 속도, 같은 정확성으로 일하기를 원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파델은 구글의 문화를 즐기고 있다. 애플과 정반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는 “전 세계 모든 지역의 구글 임직원으로부터 이메일을 받고 있다”며 “애플에선 의사소통이 틀에 박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당장은 좀 더 큰 역할 맡기에는 시간이 없을 것”이라며 “단지 인맥을 쌓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구글은 사용자 정보 관련 광고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거대업체다. 기업과 관계를 맺는 것은 파델에게 약간의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네스트의 매각 계약이 마무리된 후, 인수 전 주식보고 내용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구글이 앞으로 광고를 배치할 수 있는 가정주택 기기 중 하나로 온도조절장치를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파델은 곧바로 성명서를 내고 구글은 네스트 온도조절장치에 광고를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는 “고객이 돈을 주고 구입한 온도조절장치에 광고를 넣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처음부터 강조했다”고 밝혔다.
파델이 괴로워하는 부분은 한 번도 잡스에게 네스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은 서로 연락했고, 잡스는 파델의 비밀스러운 신생사업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파델은 당시 잡스에게 에너지 절약기능이 있다는 정도만 설명했다(초기 네스트의 주요 기능은 사용자가 필요로 하지 않는 때를 알아내 전기를 절약하는 것이었다). 좀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된 2011년 여름 잡스의 건강은 악화됐고, 몇 주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파델은 “그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잡스가 살아 있다면? 그는 아마도 파델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