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는 아주 특별한 시계 브랜드다. 민족의 영물인 삼족오(三足烏)를 모티프로 재작돼 토속적이면서도 매우 강렬한 이미지로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유닛 브랜드 트리젠코를 내놓아 또다시 화제가 됐다. 트리젠코는 삼족오를 좀 더 대중적 취향에 맞게 리뉴얼한 브랜드다. 삼족오와 트리젠코 시계를 제작·유통하는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의 손승옥(53) 대표는 2015년 바젤월드에서 큰일을 내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붉은 바탕에 삼족오가 새겨져 있다. 세 개의 다리로 땅을 딛고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날개를 펼친 삼족오. 원시적인 이 이미지는 너무나 강렬해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토테미즘적 요소가 토착적이기까지 하지만 오히려 세련된 맛이 제일 큰 매력으로 꼽힌다. 삼족오 시계의 다이얼 디자인 이야기다.
지난 8월 초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 본사를 방문했다. 본사 입구에 들어서자 맞은편 벽면에 걸린 삼족오 벽시계의 강렬한 인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매체에 실린 이미지를 통해서도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삼족오 시계였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그 아우라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삼족오를 숭상했다던 고구려인들의 강렬한 기개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삼족오 시계로 시작됐다.
“삼족오 시계 브랜드가 론칭된 건 2007년의 일입니다. 그동안 마케팅은 거의 하지 않고 소량만 만들어 유통해왔기 때문에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러다 2012년에 론칭쇼 비슷하게 대대적인 행사를 진행했죠.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아요. 지난해 11월에는 청와대 사랑채에도 입점했습니다. 삼족오는 민족의 영물(靈物)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새이기도 하거든요.” 손승옥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 대표이사의 말이다.
삼족오 브랜드의 탄생
삼족오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로, 태양 안에서 산다는 영생불멸의 세 발 달린 까마귀를 말한다. 고조선 때부터 우리 역사에 등장한 삼족오는 고구려에서 국조(國鳥)로 숭상되는 등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세 개의 다리와 세 개의 날개, 세 개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삼족오는 천지인의 삼위일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삼족오 시계 브랜드의 탄생에는 박헌서 한국정보통신 대표이사 회장의 힘이 많이 작용했다. 손 대표는 말한다. “박 회장님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이분의 시계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어요. 좀 유별나신 분이죠. 굉장히 애국심이 깊은 분이시기도 한데, 이분이 2000년대 초에 삼족오에 푹 빠지셔서는 민족의 영물인 삼족오의 기운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염원이 생기셨다고 하더라고요. 시계를 좋아하시니 삼족오 문양을 넣은 시계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같은 이야기가 오갔죠. 그러다 2007년에 저희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가 설립되면서 지금의 삼족오 시계 브랜드가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한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다
삼족오는 국내 시계산업에서 굉장히 특별한 브랜드로 여겨진다. 로만손, 아르키메데스 등의 국내 유명 브랜드들이 있지만, 이들 브랜드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이미지나 정체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삼족오는 다르다. 삼족오 브랜드는 우리나라 역사 면면에 등장한 삼족오를 고구려 벽화 이미지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한민족의 기상과 기백을 느끼게 한다. 시계 컬렉터들이 국내 시계 브랜드 중에서도 유독 삼족오에만 특별한 의미를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족오는 아주 성공적인 시계 브랜드는 아니었다. 삼족오 브랜드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시계 컬렉터들조차도 정작 삼족오 시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드물다. 국내시장에서 이 정도니 세계시장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는 삼족오의 유닛 브랜드 트리젠코 Trigenco가 론칭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손 대표는 말한다. “삼족오의 이미지는 더 손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세련된 거였어요. 그러나 이를 세련되게 이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삼족오 이미지 자체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 시계의 다른 부분과 조화롭게 디자인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계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도 스타일링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고요. 또 삼족오란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도 어려워서 해외 진출에 도 제약이 많았습니다.”
유닛 브랜드 트리젠코의 론칭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스위스, 일본과 함께 세계 3대 시계 제조국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침체 일로를 걸었다. 1988년에 설립된 로만손 정도가 그나마 선전했을 뿐,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시계 제조국의 위상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기계식 시계의 인기를 등에 업고 국내 토종 시계 브랜드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스타브 리지피플앤서비스도 지난 8월 28일 삼족오의 유닛 브랜드 트리젠코를 론칭했다.
처음 트리젠코 론칭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때, 스타브리지피 플앤서비스는 뜻 밖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삼족오 브랜드를 접고 새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였다. 후에 트리젠코가 삼족오와 별개의 브랜드가 아니라 삼족오의 유닛 브랜드임이 밝혀졌지만 그럼에도 시계 컬렉터 중에는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삼족오에 집중되어야 할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의 시계 제조 역량이 분산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는 이 같은 우려가 기우라고 주장한다. 손 대표는 말한다.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저도 시계에 대해 잘 몰랐고 조직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었죠. 사실 자신이 없었습니다. 2007년에 론칭한 브랜드의 쇼케이스 행사를 2012년에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양질의 경험이 쌓였고, 또 세계적인 시계 전문가 루드위그 외슬린 Ludwig Oechslin 같은 분에게 기술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시계 전문 회사다운 조직이 갖춰졌다는 겁니다. 기술, 디자인, 마케팅 등에서 아주 우수한 인력들을 갖추게 됐어요. 조직의 역량이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삼족오 · 트리젠코 투트랙 전략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는 삼족오와 트리젠코를 이원화해 운영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삼족오는 기존의 유니크한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가되, 트리젠코는 좀 더 대중적이고 글로벌한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삼족오·트리젠코 투트랙 전략이다.
손 대표는 말한다. “삼족오와 트리젠코 두 브랜드는 독립된 게 아니라 한 브랜드 내에서 이름만 나눠 쓰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트리젠코가 삼족오의 유닛 브랜드가 되는 셈이죠. 자세히 살펴보시면 트리젠코 시계 곳곳에 추상화된 삼족오가 들어가 있습니다. 삼족오 브랜드가 삼족오의 원형을 넣었다면 트리젠코 브랜드는 삼족오의 형상을 넣은 셈이죠. 트리젠코란 이름도 ‘우주의 이치와 섭리,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시간’을 뜻하는 트리니티(Trinity)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뜻하는 제네시스(Genesis), 그리고 ‘삼족오’의 오리지널 형상인 까마귀(Crow)의 합성어입니다.”
스타브리지피플앤서비스는 최근 브랜드 마케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족오라는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도 마케팅이 부족해 브랜드를 크게 키우지 못했다’는 세간의 비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말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많은 노력이 있었어요. 이제는 어디에다가 내놔도 떳떳한 시계 브랜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올해 바젤월드에선 다른 업체 부스 더부살이로 제품을 출품했지만, 내년에는 우리 브랜드만의 독자 부스를 차려 정식으로 간판을 내걸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물론 더 열심히 해야겠죠.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