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능은 일종의 ‘킬 스위치’와 같다. 휴대폰을 분실 또는 도난당했을 때 사용자가 원격으로 기능을 비활성화시키고, 메모리를 삭제함으로써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대폰 모양의 장난감으로 전략시킬 수 있다. 지금껏 이런 킬 스위치의 채용 여부는 휴대폰 제조사의 재량에 달려 있었으며, 현재 이 기능이 탑재된 모델은 아이폰(iOS7)이 유일하다. 문제는 스마트폰 도난이 전 세계에서 급증하고 있다는 것.
2012년 이후 미국 뉴욕의 스마트폰 도난 건수가 40%나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킬 스위치 장착의 필요성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이에 지난 2월 미 상원의회에 휴대폰 제조사들의 킬 스위치 장착 의무화 법안이 제출됐으며,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의회에도 그와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다. 휴대폰을 훔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다.
분명 좋은 아이디어지만 이를 위해 넘어야할 산은 하나 둘이 아니다. 일단 휴대폰 제조사, 정확히 말해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는 킬 스위치 의무화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휴대폰에 비밀번호를 설정해두고, 프레이(Prey)나 서버러스(Cerberus) 같은 킬 스위치 앱을 설치하면 된다는 것.
그러나 상당수의 휴대폰 사용자들은 보안을 위해 그 정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컨슈머리포트에 따르면 미국인 중 휴대폰에 비밀번호를 걸어 둔 사람은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비밀번호를 설정해도 1234, 1111, 0000 등의 단순한 조합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휴대폰 사용자의 3분의 2는 로그인된 상태로 쓰는 것을 선호한다. 이러한 휴대폰을 훔치면 그야말로 노다지와 다름없다.
킬 스위치 의무화 요구를 무력화하기 위함인지 최근 CTIA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와 협력해 자체적인 도난 방지 시스템을 개발했다. CTIA가 사용자의 신고를 받아 도난당한 휴대폰의 ID번호를 이동통신사업자게에 알려서 비활성화시키는 시스템이다. 무대책보다는 낫지만 이 시스템은 미국과 유럽에 국한된다. 도난품 휴대폰의 다수가 아시아 등지에서 판매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크지 않다. 실제로 홍콩 암시장에서는 2,000달러에 도난 아이폰을 살 수 있다.
도대체 왜 CTIA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킬 스위치 장착을 거부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휴대폰 분실보험 음모론을 제기한다. 분실보험은 도난과 파손으로부터 사용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제도처럼 보이지만 보험료 총액이 무려 78억 달러에 달한다. 도난이 근절되면 제조사들이 수익이 사라질 수도 있어 굳이 킬 스위치의 보편화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동통신업계는 이 같은 지적에는 대응하지 않으면서 킬 스위치가 보안상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커가 킬 스위치를 악용, 제멋대로 휴대폰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일리 있는 주장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 해커가 얻을 명백한 이익이 없다는 점에서 궁색한 핑계로 들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160만대 2012년 한 해 동안 도난당한 스마트폰의 숫자. 범죄 전문가들은 전체 도난 사건의 최대 50%가 모바일 기기를 훔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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