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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달러 버번 위스키 붐!

The Billion-Dollar BOURBON BOOM

미국 위스키는 어떻게 이처럼 뜨거운 인기를 누리게 됐을까? 여기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가 있다.

By Clay Risen
Photographs by Greg Miller


짐 빔 Jim Beam의 마스터 디스틸러 Master distiller 프레드 노 Fred Noe는 최근 호주 시드니 Sydney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주류판매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프레드는 버번 위스키 병에 자신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는 회상했다. “일행이 ‘프레드, 당신은 록 스타나 다름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가? 내 열성 팬들은 어디 있지?’라고 물었다.” 호주의 시골 지역임에도 수많은 버번 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이 중에는 물론 열성 팬들도 포함돼 있다). 프레드는 “한 여성은 내게 밖으로 나와 자기 차 후드에 사인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펜을 꺼내 그녀의 포드 팰컨 Ford Falcon 후드에 ‘계속 빔을 사랑해주세요(Stay on the Beam)’라고 썼다. 다른 여성은 내게 자신의 집으로 와 당구대에 사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판매 책임자가 ‘절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고 회상했다.


프레드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런 일에 익숙했다. 미국 위스키는 지금 여느 때 없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덕분에 빔의 마스터 디스틸러는 세계적 유명인사가 됐다. 프레드 노는 짐 빔의 증손자이자 가문의 7대 마스터 디스틸러다. 선조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켄터키의 실험실에서 증류기와 씨름했던 반면 그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칵테일 대회의 심사위원을 맡고, 베이징에서 경영자들과 미팅을 하고 있다. 그는 “차라리 달나라 여행이라면 몰라도 러시아나 중국에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위스키 산업은 침체에 빠져 있었다. 수십 년간 판매는 부진했고, 투자도 부족했다. 하지만 오늘날 버번-옥수수를 베이스로 하고 오크통(배럴)에 숙성시켜 만든 이 증류주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은 인기 드라마 ‘매드 멘 Mad Men *역주: 60년대를 배경으로 뉴욕 맨해튼 매디슨가의 광고업계 이야기가 주된 내용에서부터 임원급 간부들의 자택 바까지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또 세계적으로 관광, 위스키 바, 칵테일 대회, 크래프트 양조장 *역주: 소규모 양조장 등의 산업생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월가에서 가장 사랑 받는 술은 더 이상 최고급 와인 스트리밍 이글 캡 Screaming Eagle Cab이나 40년산 글렌피딕 Glenfiddich이 아니다. 23년산 퍼피 반 윈클 Pappy Van Winkle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술은 너무 귀해 소매가가 3,500달러에 달할 정도다.

유라시아 그룹 Eurasia Group의 설립자이자 버번을 즐기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젊은 경영자 중 한 명인 이언 브레머 Ian Bremmer는 “개인적으로 버번의 약한 단맛을 좋아한다. 반면 스카치 Scotch의 스모키한 맛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은 미국산 레드와인과 프랑스산 레드와인의 차이와 유사하다. 프랑스산은 스모키하고 오크향이 나는 반면, 미국산은 과일 향이 진하다. 제대로 제조됐다면 맛이 굉장히 좋다”고 덧붙였다.

절대적인 수치만 봤을 때, 버번 산업의 전 세계 판매액 80억 달러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코카콜라 Coca-Cola 16개 음료 브랜드의 연 매출만 10억 달러를 상회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가파른 성장세다. 단기간 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됐다. 유로모니터 Euromonitor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미국 내 위스키 판매는 40%나 급증했다. 2~3%만 성장해도 괜찮게 평가되는 위스키 업계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수치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증류주 판매가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혁신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해외시장 상황은 더욱 긍정적이다. 2002년 미국 증류업체들의 위스키 수출액은 3억 7,600만 달러였다. 이번 달 미국증류주협회(the Distilled Spirits Council of the United States)가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2013년 증류주 수출액은 3배 증가해 10억 달러를 기록했다.

마커스 마크 Marker‘s Mark처럼 가격이 30달러 이상인 브랜드를 일컫는 ‘슈퍼 프리미엄’ 부문의 성장이 특히 두드러진다. 증류주협회에 따르면 슈퍼 프리미엄 부문의 판매는 2012년에만 14.4% 증가했다. 캘리포니아 K&L 와인 K&L Wines의 증류주 바이어 데이비드 오데닌지러드 David Othenin Girard는 “가격이 50달러 이상인 버번 브랜드의 재고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고 말한다.

버번의 세계적 인기를 반영하듯 지난달 일본의 대형 음료 제조업체 산토리 Suntory는 빔을 인수하기 위해 160억 달러를 제시할 것이라는 깜짝 발표를 했다. 빔은 라프로익 싱글몰트 스카치 Laphroaig single malt Scotch, 사우자 데킬라 Sauza tequila, 쿠르브아지에 코냑 Courvoisier cognac뿐만 아니라 짐 빔 일가의 위스키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이다.

잭 다니엘 Jack Daniel’s과 우드포드 리저브 Woodford Reserve의 제조업체 브라운 포맨 Brown-Forman의 글로벌 위스키 매니징 디렉터 팀 들롱 Tim Delong은 “금주법 시행 이래로 버번 사업에 뛰어들 가장 적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이에 주류업계는 지난 2년간 약 3억 달러를 신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바즈타운 Bardstown과 로렌스버그 Lawrenceburg 같은 ‘켄터키 위스키 메카’ 외곽의 언덕들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 보면 5층짜리 낡은 창고들을 볼 수 있다. 마치 푸른 잔디 위로 피어 있는 술 취한 버섯들 같은 형상이다.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대형 주류업체들만이 아니다. 지난 5년간 수백 개의 크래프트 양조장이 문을 열었다. 내슈빌 Nashville에 위치한 코세어 아티산 디스틸러리 Corsair Artisan Distillery의 공동 설립자 데릭 벨 Darek Bell은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주문량을 충당한 적이 한 차례도 없을 정도다”고 말한다.

하지만 버번의 갑작스러운 인기에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부 트렌드는 이제 당연히 여겨지게 됐지만, 다른 트렌드들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빨리 인기를 얻은 것만큼 빨리 사라질 것이다. ‘매드 멘’도 언젠가는 종영될 것이다. 위스키 업계는 버블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업계는 급증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생산량을 증대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갑작스러운 기호변화로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막대한 자금을 낭비했고, 신망 받던 브랜드는 자취를 감췄다. 결국 업계 전체가 부진의 늪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연 이번에는 그런 얄궂은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과거 버번 붐의 흔적을 찾고 싶다면 켄터키의 주도 프랭크퍼트 Frankfort에서 매크래큰 파이크 McCracken Pike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라. 철책선에 둘러 쌓인 올드 테일러 Old Taylor 양조장 건물은 라인 Rheinish 성의 폐허를 연상시킨다. 켄터키의 전설적인 양조업자 겸 정치인 E.H. 테일러 E.H. Taylor가 19세기 말 건설한 이 양조장은 한때 미국에서 가장 사랑 받던 위스키 브랜드들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올드 테일러는 금주법 시대에 살아남았다(1935년 빔의 전신인 내셔널 디스틸러스 National Distillers에 의해 인수됐다). 그리고 군사용 산업 알코올 생산을 위해 주류생산이 완전히 중단됐던 2차 세계대전도 견뎌냈다. 사실 전쟁이 끝난 후 올드 테일러 같은 브랜드들은 큰 호황을 누렸다. 당시 위스키와 탄산수는 국민음료였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마이클 R. 비치 Michael R. Veach는 저서 ‘켄터키 버번 위스키(Kentucky Bourbon Whiskey)’에서 “1950년대는 켄터키 버번 산업의 황금기였다”고 평가했다. 또 “생산에 어떤 제약도 없었고, 심지어 판매는 예상치를 훨씬 뛰어 넘었다”고 서술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위스키는 다른 증류주-혹은 다른 소비재들-와 달리 생산 주기가 며칠, 몇 주 단위가 아니라 몇 년 단위다. 양조업체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곡물을 갈아 발효시키든 4년산 버번은 무조건 4년간 배럴 속에서 숙성돼야 한다. 즉, 아주 먼 미래를 기준으로 생산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1950~1960년대 위스키 업계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다. 양조업체들은 최대한 빨리 배럴을 채웠고, 연간 100만 배럴 이상을 숙성시켰다. 1967년 켄터키 저장고들에는 약 800만 배럴의 위스키가 저장돼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문제가 생겼다. 미국의 모든 것이 그렇듯, 주류에 대한 소비자 기호가 1960~1970년대 급격히 변했다. 1960년부터 1975년 사이 주류 시장의 위스키 점유율은 74%에서 54%로 급락했다. 반면, 보드카나 비숙성 럼과 같은 화이트 주류의 점유율은 19%에서 35%로 대폭 증가했다.

틈새 시장이라는 위치를 받아들이는 대신, 증류업체들은 ‘저단변속’을 꾀했다. 잘 숙성된 고급 버번을 중간 수준의 증류주와 믹스해 가볍고, 덜 자극적인 칵테일 제조용 위스키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악순환을 야기했다. 저가 브랜드에 치중한 것은 세련되지 못한 버번의 이미지를 악화시켜 젊은 고객들과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켄터키 양조협회(Kentucky Distillers Association)의 회장 에릭 그레고리 Eric Gregory는 “70년대와 80년대 버번은 아버지들의, 혹은 할아버지들의 술이었다”고 말한다.

에번 윌리엄스 Evan Williams-트위터의 공동 창업자와 아무 관계가 없다-로 잘 알려진 버번 제조업체 헤븐 힐 디스틸러리스 Heaven Hill Distilleries의 사장 맥스 샤피라 Max Shapira는 “애널리스트들은 우리를 훌륭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없는 위스키 업체로 평가했다”고 말한다. 업계의 관계자 대다수도 비관적이었다. 1999년 양조업체들은 45만 배럴을 저장했는데, 버번의 황금기에 비하면 60%도 못 미치는 양이었다.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날 ‘버번 르네상스’가 재림한 근본적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엘머 T. 리 Elmer T. Lee가 세계 최초로 싱글 배럴 버번-한 병에 하나의 배럴에서 생산된 위스키가 담겨 있어 디스틸러의 역량이 그대로 표현될 수 있는 방식이다-블랜턴 Blanton을 개발한 것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B-29폭격기의 레이더를 조정했고, 이후 조지 T. 스태그 디스틸러리 George T. Stagg Distillery-버펄로 트레이스 Buffalo Trace 의 전신-의 마스터 디스틸러에 올랐다. 리가일하던 양조업체는 상황이 무척 어려웠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250명이던 근로자 수는 1949년 50명으로 줄었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위스키 산업이었지만, 리는 슈퍼 프리미엄 위스키가 급락한 버번의 이미지를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당시 싱글몰트 위스키 덕분에 스카치가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다른 양조업체도 트렌드를 따랐다. 1980년대 후반 빔은 놉 크리크 Knob Creek와 베실 헤이든 Basil Hayden’s 같은 스몰 배치(소량 생산) 컬렉션을 출시했다. 1996년 브라운 포맨 Brown-Forman 은 우드포드 리저브를 출시했다. 이런 위스키들은 숙성 기간이 더 길었고, 도수도 더 높았으며, 맛도 더욱 풍부했다. 비평가들도 호평을 했지만, 판매량은 달라지지 않았다. 켄터키 대학(University of Kentucky) 재학시절 렉싱턴 Lexington의 주류판매점에서 일했던 그레고리 Gregory는 블랜턴를 구입했던 유일한 사람들은 근처 도요타 Toyota 공장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본인 임원들뿐이었다고 기억한다. 데이비드 드리스콜 David Driscoll이 증류주 바이어로 K&L 와인스에 입사한 2008년만 해도 “퍼피 반 윈클은 진열대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6년 만에 일어난 이런 변화가 놀랍지 않은가? 오늘날 소매가 200달러 이하의 20년산 퍼피는 가뭄에 나는 콩만큼이나 찾기 힘들고, 유통 시장에서는 10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지난해 버번 생산 거래를 체결한 버펄로 트레이스 디스틸러리에서 2만 5,000달러 상당의 버번이 도난당한 사건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이는 퍼피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버번 판매는 연 2.3%로 미미한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5년간 성장률은 3배나 증가해 연 평균 6.75%의 성장을 기록했다. 성장의 대부분은 고급시장에서 발생한 것이다. 증류주협회에 따르면 가격이 15달러 이하인 버번 판매는 13% 성장한 데 비해 리가 1세기 전 개척한 슈퍼 프리미엄 버번의 판매는 97.5%나 증가했다.


이런 위스키 붐은 켄터키에 큰 호재다. 본고장에서 버번을 경험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 작년 60만 명의 방문객이 프레드 노와 같은 인기 마스터 디스틸러를 보기 위해 켄터키 전역의 양조업체들을 방문했다. 그레고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와일드 터키 Wild Turkey 브랜드의 마스터 디스틸러) 지미 러셀 Jimmy Russell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종교적 경험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에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크게 당황했다. 리서치회사 테크노믹 Technomic의 어덜트 베버리지 리소스 그룹 Adult Beverage Resource Group 이사 도나 후드 크레카 Donna Hood Crecca는 “20년간 위스키 산업을 다뤄왔지만 버번 위스키가 이런 성장세를 보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판매 수치가 바뀐 것은 버번의 이미지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정통성이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오랜 역사와 국내 제조라는 순수성을 가진 버번만큼 빼어난 정통성을 갖춘 술이 또 있을까? 보드카와 진은 어디서나 제조할 수 있다. 반면, 버번은 18세기 말 정착민들이 켄터키에 설치한 증류시설에서 최초로 생산, 독립전쟁 이후에는 개척자들에 의해 서부로 전파될 정도로 미국역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그 정통성은 덕분에 유명 인사들이 버번에 매력을 느꼈고, 나아가 전도사를 자청했다. 션 브록 Sean Brock, 데이비드 창 David Chang 같은 유명 셰프들은 호박 빛깔이 나는 퍼피 반 윈클을 찬양했다. 미국 케이블 방송 HBO의 드라마 시리즈 ‘트렘 Treme’의 작가로도 활동 중인 유명 셰프 앤서니 보딘 Anthony Bourdain은 퍼피가 등장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브레이킹 배드 Breaking Bad’의 작가 겸 감독 빈스 길리건 Vince Gilligan도 버몬트 Vermont에서 제조되는 호밀 위스키 휘슬피그 WhistlePig를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켰다(주 원료가 옥수수가 아닌 호밀이라는 점만 빼면 버번과 흡사하다). 여배우 밀라 쿠니스 Mila Kunis는 최근 짐 빔 브랜드의 홍보대사가 됐다.

버번 붐 덕분에 엄청난 이익을 누리고 있는 루이빌 Louisville의 시장 그레그 피셔 Greg Fischer는 “버번은 나이 든 사람들이 시가를 피우면서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였다”고 말한다. 작년 50개 주와 50개 국가에서 많은 관광객이 증류업체들을 탐방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관광객들은 루이빌에 머무는 동안 지역 식당, 바, 호텔 등에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다. 은퇴한 이들만 이런 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피셔는 “이제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도 이런 여행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지금보다 더욱 정통성이 강했던 옛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통성의 손실’은 위스키가 크래프트 양조업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도 설명한다. 2000년 미국 내 크래프트 양조장은 24개에 불과했다. 오늘날은 무려 430개 이상의 양조장이 있다. 대부분은 위스키를 양조하거나 양조할 계획이다. 이들의 진입은 대형 양조업체들의 혁신을 유도했다. 위스키 에드보키트 Whisky Advocate의 에디터 존 한셀 John Hansell은 “크래프트 양조장들이 미국 위스키 산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한다. 특정 맛이 첨가된 위스키도 그런 혁신의 결과물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위스키 양조업체들은 여성이나 히스패닉 고객들처럼 오랫동안 간과돼왔던 새로운 시장에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위스키뿐만 아니라 보드카 같은 다른 증류주들도 선전하고 있는 것 같다. 보드카 시장은 버번에 비해 3배나 더 크지만 최근 몇 년간 성장이 크게 둔화됐다. 음료 분야에 대한 연구자료 및 잡지를 출판하는 엠 생켄 커뮤니케이션즈 M. Shanken Communications의 애널리스트 플레밍 데이비드 Fleming David는 “시대별로 주기가 존재한다. 샤르도네 Chardonnay를 즐겨 마시던 베이비붐 세대를 생각해 보라. 미국은 언제나 증류주를 즐겨 마시던 나라다. 어떻게 보면 베이비붐 세대가 별종이었다”고 말한다.

맥아보리를 원료로 하고, 무거운 스모키함으로 차별화되는 스카치와는 다르게 버번은 한 모금씩 마시기에 적합하다. 한센은 “버번의 활용은 매우 다양하다. 얼음을 띄워 마시기에도 좋고, 칵테일 재료로도 좋다. 뿐만 아니라 음식과 곁들여 마시기에도 일품이다”고 말한다. 칵테일 관련 부분이 핵심이다. 맨해튼, 올드 패션드 Old Fashioned 등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 중 다수는 버번을 베이스로 한다.

그리고 버번의 가격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버펄로 트레이스의 브랜드 매니저 크리스 컴스톡 Kris Comstock은 “제대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기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한 병에 수백 달러, 혹은 수천 달러를 호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버번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버번 붐은 미국 내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잭 다니엘(엄밀히 말하면 버번이 아니라 테네시 위스키 Tennessee whiskey에 아주 가깝다)로 대표되는 미국 위스키는 전 세계 소비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주로 독일이나 호주 같은 선진국 판매에 집중해 왔다. 런던 유로모니터의 선임 주류 애널리스트 제러미 커닝턴 Jeremy Cunnington은 “3~4년 전까지만 해도 버번은 심각한 판매부진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갑작스러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인기가 더욱 확산될 여지도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선진국 시장의 경우 미국 위스키 바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젊고, 모험심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빔의 위스키 총괄 매니저 크리스 보더 Chris Bauder는 “맥아 혼합물 덕분에 더욱 진해진 버번의 달콤한 맛에 외국 소비자들이 강한 흥미를 느낀다”고 설명한다. 실례로 2012년 대 프랑스 버번 수출량은 4배 증가해 1억 1,100만 달러를 기록했다(최근 유럽연합과 다른 국가들이 체결한 무역협상으로 인해 대부분 증류주들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 점도 수출증가에 기여했다). 버번이 처음 일본의 바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이었다. 그때 이후로 버번은 언제나 일본 고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10년간 대 일본 버번 수출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달 산토리가 빔 인수에 프랑스의 페르노리카 Pernod Ricard 같은 유럽기업들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산토리는 빔 주주들에게 주당 83.5달러를 지불할 것을 제안했다. 24억 달러가량의 부채를 떠안는 것은 물론, 당시 67달러의 시가에 25%의 프리미엄을 얹어준 것이다.

개도국에서의 수요는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소비자들은 미국 제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들이고 있다. 버번의 대 멕시코 수출은 지난 10년간 6,591% 증가해 1,350만 달러를 기록했다. 심지어 무슬림 국가들도 버번에 목말라 있다. 2002년 97만 달러에 그쳤던 대 아랍 에미리트 수출은 10년 만에 820만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브라운 포맨의 홍보 책임자 릭 버벤호퍼 Rick Bubenhofer는 “작년 제프 Jeff(잭 다니엘의 마스터 디스틸러)와 함께 두바이 Dubai에 갔다. 아랍국가임에도 약 700명의 바텐더가 (행사에) 참석했다. 그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몰려드는 바람에 제프를 스테이지에서 끌어내려야 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런 인기와 그에 따른 공급에 대한 부담은 양조업자들에게는 기분 좋은 문제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이긴 하다. 콤스톡은 “현재 보유한 10년산 버번은 10년 전에 만든 것이 전부다. 계속 양조를 하겠지만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추세에 따라, 양조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양조장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잭 다니엘의 모기업 브라운 포맨은 테네시 Tennessi 주 린치버그 Lynchburg에 양조장을 증축하는 데 1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또 켄터키의 우드포드 리저브 양조장을 증축하고, 앨라배마 Alabama 주에 새로운 배럴(오크통) 공장을 짓기 위해 각각 3,000만 달러와 6,000만 달러를 투자 중이다. 빔이 소유한 마커스 마커는 최근 공급망을 확대하기 위해 82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고 헤븐 힐 Heaven Hill은 주요 양조시설의 가동률을 50% 늘렸고, 저장고를 5개 더 늘렸다.

또 양조업체들은 최대한 빨리 위스키를 배럴에 채우고 있다. 1977년 이래 처음으로 양조업체들은 약 500만 배럴을 숙성시키고 있다. 켄터키 주의 모든 성인 남녀는 물론 아이들에게 한 통씩 돌리고도 한참 남을 정도의 양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제조과정이 부실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작년 마커스 마커는 공급을 지속하기 위해 상표에 표시되는 프루프 Proof 도수 *역주: 미국의 독자적 도수 단위로 일반적인 알코올 함유량의 2배다를 90에서 84로 줄일 것이라 발표한 이후 공개적인 맹비난을 받았다(이후 이 계획을 철회했다). 버펄로 트레이스나 헤븐 힐 같은 다른 기업들은 일부 브랜드의 숙성 연도를 삭제함으로써 숙성 연도가 짧은 위스키를 믹스할 수 있게 했다.

1950~60년대와 같은 버번 생산량 증가를 보면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이 떠오른다. 이러한 붐이 얼마나 지속될지다. 그리고 만약 갑작스럽게 끝나게 된다면 양조업체들은 또 다시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될까? 한셀은 “모두가 (버번) 버블 붕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경험해 본 일이며, 또 다시 재현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1970년대 텍사스 석유업계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시적인 붐을 영원한 성장으로 착각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 것이다. 위스키 업계는 하나같이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지만, 소매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은 회의적이다. 브루클린 Brooklyn에 위치한 BQE 리쿼스 BQE Liquors에서 위스키를 관리하는 마이클 돌레가 Michael Dolega는 “무척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양조장에서는 질 높고, 잘 숙성된 버번이 동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결국 이런 품질저하에 신물을 내고 다른 술로 눈을 돌릴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이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곧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셀은 이번에는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대부분의 양조업체들은 와인, 데킬라, 코냑, 보드카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갑작스러운 위스키 붐 붕괴에 대한 완충장치를 갖췄다. 그리고 과거 위스키 붐이 거의 국내에 한정돼 있었다면, 이번은 세계적인 추세다. 때문에 모든 시장이 동시다발적으로 위스키로부터 등을 돌릴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붐이 끝난다면, 크래프트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신산업이 모두 그러하듯, 크래프트 업계는 신생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그중 소수만이 성공을 위한 경영 능력과 품질, 재능을 갖추고 있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크래프트 붐을 1990년대 말의 크래프트 맥주 붐과 비교한다. 한셀은 “당시 너나 할 것 없이 맥주 양조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2000년대 초 경기침체가 찾아왔을 때 수백 개의 신생 양조업체들이 도산했다. 한셀은 “위스키 양조업체도 유사한 사태를 겪을 것”이라고 말한다. 맥주 양조업계가 겪은 큰 구조변화 덕분에 시에라 네바다 Sierra Nevada와 도그피시 헤드 Dogfish Head 같은 선두 크래프트 맥주업체는 이후 10년간 사업을 확장할 독무대를 얻게 되었다.

지금 위스키 업계는 1959년과 같은 파티를 즐기며, 당시 뒤따라왔던 ‘숙취’는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현재 버번 판매는 과거 붐 붕괴 전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미국인들의 삶에서 버번의 입지는 전보다 훨씬 더 확고해지고, 중요해졌다. 그레고리는 “버번은 더이상 단순한 술이 아니라 문화의 일부가 됐다. 야구로 치면 이제 겨우 2~3회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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