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송아지가 많이 태어나는 목장이 필요합니다. 늙은 소는 젖이 잘 안 나오죠. 고기만을 팔던 산업경제에서 소의 젖과 함께 치즈를 만들어 파는 창조경제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연세대학교 미래융합부 교수 출신의 윤종록 차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창조경제에 관해 거침없이 의견을 쏟아냈다. “창조경제의 75%는 창업경제가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창업경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거죠. 개업과는 분명히 다른 개념입니다.”
윤 차관은 모호할 수 있는 창조경제를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했다. “농사로 보면 볍씨가 땅에 떨어져야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겠죠. 볍씨는 상상력입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볍씨에겐 비옥한 토양이 필요하겠죠. 이것이 정보통신기술이고 과학기술이겠죠. 우리의 강점 말입니다.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서비스 솔루션이라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이것을 저는 창조경제라고 설명합니다.”
윤 차관은 이어 “우리나라가 그동안 창조경제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에만 의존했습니다. 1%의 인력에 의한 R&D였죠. 여기에 나머지 99% 국민의 상상력을 자원으로 더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걸 I&D(Imagination & Development)라고 부릅니다. 창조경제는 R&D에 I&D를 더하는 겁니다.”
창조경제를 주창한 배경은 무엇일까? 윤 장관은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중심이 되는 발전전략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잘 사는데 국민이 못사는 경제구조의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 중심축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전환하자는 거죠.”
그렇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물었다. “부지런하게 손발 움직이는 요소 투입형 경제로 한국 경제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어요.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잠재성장률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하락했고 지니 계수는 20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창의적인 두뇌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시장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윤 차관은 창업 환경을 예로 들었다. “창조경제는 창업이 핵심이죠. 지난 10년간 창업기업에선 연 13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 반면 기존 기업에선 연 94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했습니다. 또 한국에서 벤처, 중소기업은 사업체 수의 99.9%(약 323만 개)를 차지하고 고용의 87%(1,263만 명)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활성화해야죠.”
창조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우선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 윤 차관은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말한다. “우리가 보약을 먹을 때 체질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창조경제를 위해선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이 필요합니다. 전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봐요.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와 세계화를 전제한 창업이 그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로 가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업체가 프로그램을 납품하면 기업에선 프로그램 유지·보수비용으로 보통 (프로그램 가격의) 7~8%를 기준으로 예산을 책정합니다. 외국은 보통 25%정도고요. 이번 정권에선 15% 정도로 올리도록 (기업들과) 약속했습니다.”
윤 차관은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함께 미래부의 소프트웨어 발전 방안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컴퓨터 언어를 가르칠 예정입니다. 이번 겨울방학 전까지 초등학생들이 컴퓨터 언어를 인터넷에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 학년 평균 45만 명 중 이 교육을 통해 5만 명 정도가 흥미를 갖게 되고 그 학생들 중 5명 정도가 빌게이츠 같은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미래부가 지원할 생각입니다.”
윤 차관이 말한 컴퓨터 언어교육은 세계적 수준의 정보강국으로 꼽히는 에스토니아에서 6세 때부터 의무교육으로 실시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추진 중에 있다. 최근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컴퓨터 언어 조기교육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컴퓨터 언어교육은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고민하고 있는 사안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회사의 모든 행정업무를 프로그래밍 언어로 진행하도록 추진했지만 업무 환경상의 이유로 실패한 사례도 있다. 윤 차관은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한 환경조성이 절실한 만큼 교육 일선의 역할을 생각을 한 것이다.
윤 차관은 창조경제를 위한 두 번째 체질개선 해법으로 ‘세계화를 전제한 창업’을 이야기했다. “창업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예입니다. 그들은 국내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한 창업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말하죠. 창업은 반드시 세계화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도 해외진출 지원에 적극적이죠.”
윤 차관은 세계화를 전제로 한 창업이야말로 앞서 말한 창조경제를 통한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좋은 예가 있다. 이스라엘의 젊은 창업가 9명이 만든 전자상거래 업체 ‘페이팔’은 인터넷 보안방화벽의 안정성으로 글로벌 기업이 됐다. 후에 이베이에 18억 달러를 받고 매각한 후 유튜브를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궜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2조 원을 이스라엘 벤처 펀드에 투자해 후배 창업가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두 가지 해법을 말한 윤 차관은 창업가를 응원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기존 기업들이 바게닝 파워를 이용해 창업가들을 어렵게 해선 안 됩니다. 창업가는 을이 아니라 갑이 되어야 합니다. 기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국민들이나 학자들 사이에는 창조경제가 다른 기존의 경제정책과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윤 차관의 생각을 물었다. “기존 경제는 모방, 응용을 통한 추격형 성장이었고 창조경제는 창의성에 기반한 선도형 성장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경제적 성장이 우선이 아니라 국민 행복이 우선이라는 점입니다.”
또 “창조경제는 기존 지식경제의 핵심가치를 계승하되 일자리 창출, 경제적 약자 배려, 동반성장 등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실패를 패배와 낙오로 인식했던 것을 혁신의 바탕이라는 인식으로 전환한 것 또한 차이점입니다.”
그렇다면 창조경제 시대를 맞이한 기업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윤 차관은 미국 카프만 Kauffman재단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역할을 우회적으로 주문했다. “세계 최대의 비영리 법인인 카프만 재단은 기업가 정신을 연구, 확산시키고 혁신적인 벤처 기업들의 창업을 주도했습니다. 미국 경제는 어려움 속에서도 창업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25년간 미국 일자리의 3분의 2는 5년 미만의 창업기업에 의해 창출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미국은 끊임없이 벤처 창업이 일어났어요. 그것이 실업률을 낮추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생각합니다.”
카프만 재단은 엔젤투자자 교육과 벤처캐피털 전문가 양성 등 창업을 위한 사회적 기반 마련을 돕는다. 또 디즈니와 함께 창업·경영 시뮬레이션 게임프로그램을 개발해 매년 2,000만 명의 학생이 창업·경영을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일반인의 창업 기반 마련을 위해 전국 300여 기관 운영으로 10년간 4만 2,000여 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했다. “중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을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창업하고 회수 가능한 창업 생태계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윤종록 차관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 창업환경 말입니다. 젊은이들이 뛰어들 창업의 수영장에 융자가 가득해요. 투자의 물에 뛰어들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융자는 담보가 필요하죠. 창업 실패하면 패가망신입니다. 하지만 투자는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아요.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벤처 창업자금 생태계 육성방안(이하 벤처 육성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윤 차관이 말한 벤처 육성방안에는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의 선순환을 통해 국내 벤처의 생태계를 실리콘밸리처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녹아 있다. 벤처 육성방안은 성공한 벤처 1세대가 후배에 대한 재투자와 멘토링 기반을 견고하게 구축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 벤처 창업의 고수익·고위험 구조에 부합한 지원이 되도록 창업기업의 자금 구조를 융자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더불어 엔젤투자의 활성화, 기술혁신형 M&A 활성화, 성장 단계별 맞춤 투자, 회수 시스템 구축으로 벤처 생태계의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내용이다.
윤종록 차관은 1%의 R&D에 99%의 I&D가 합쳐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혁신은 하이테크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상상력에서 출발해 기존 기술과 융합해 일어납니다. 상상력을 망상으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상상력도 소통이 필요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창조경제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사례를 들었다. “2003년이었죠. 당시 인텔은 노트북과 CPU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상당한 위기에 처해 있었죠. 그런데 이스라엘 인텔연구소에서 듀얼코어를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텔은 세계최초로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노트북을 내놓았죠. 반도체 전문가가 개발했을까요? 아닙니다. CPU를 두 개로 나눠 역할을 분담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건 연구소의 운전병 출신 기사가 제안했어요. 자동차의 기어박스를 응용했다고 하더라고요. 인텔은 기사회생했고 당시 주가는 10배 넘게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