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책 판매가 예전만 못하다. 출판업계는 새 트렌드에 맞춘 전자책 렌털서비스를 도입, 새로운 독서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 서비스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아 보인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교보문고. 국내 최대 오프라인 서점인 이곳에 가면 한편에서 ‘샘(Sam)’ 홍보 부스를 볼 수 있다. 샘은 교보문고가 2월 출시한 전자책 단말기의 이름인 동시에 전자책 렌털 서비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교보문고는 국내에서 사실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전자책 대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홍보부스에서는 단말기 샘을 여러 대 전시해 행인들이 오가며 손쉽게 샘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교보문고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전자책 대여 서비스에 대해 설명해준다.
“연간 약정을 맺으시면 매달 5권에서 12권까지 전자책을 빌려볼 수 있고, 단말기 또한 저렴하게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샘을 홍보하는 교보문고 직원은 말한다. 샘 서비스를 받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연간 약정비용은 월 1만 5,000~3만 5,000원 정도. 대여 가능한 권수에 따라 비용이 다른데, 대략 권당 약 3,000원에 전자책 한 권을 빌려보는 셈이다. 실제 종이책을 구매하는 값에 비해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고객 반응은 어떨까? 출시 초기에는 40일 만에 회원 1만 명을 넘길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6월 현재 총 회원 수는 1만 2,000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 단말기는 1만7,000대가 팔렸다.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 환경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그렇지만 초반의 열기가 지속되지 못하는 건 좋지 않은 신호다. 이유가 무엇일까?
“연간 회원제로 운영하다 보니 초기에 가입자가 몰리고 일정 시간 이후에는 신규 유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의 진영균 씨는 말한다. 그렇지만 그 분기점이 너무 빨리 왔다. 고객 반응이 당초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진 씨도 인정한다. 교보문고는 올해 안에 가입자 10만 명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내부적으로 세운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렌털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한다. 우선 빌려볼 수 있는 책 종류가 제한되어 있다는 게 한계다. 출시 초기 샘 회원이 빌려볼 수 있는 책은 약 1만3,000종. 교보문고가 보유하고 있는 전자책이 총 13만 종이니, 약 10분의 1정도만 대여해 볼 수 있다. 향후 출간되는 책 중 어떤 책을 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뚜렷한 원칙이 없어,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출판업계의 일부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도 또 다른 장벽이다. 출시 당시 한국출판인회의는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가 출판 생태계를 위협한다”며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책 판매 수익을 감소시킬 것이란 우려다. 5월에는 “교보문고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출판사에게 샘 서비스 참여를 강요하고 있다”며 불공정행위 사례를 조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교보문
고 측은 “그런 일 없다”며 맞서고 있다.
리디북스나 예스24처럼 전자책을 판매하는 업체 역시 렌털 서비스에는 보수적인 입장이다. 당장 매출감소가 우려된다. 교보문고 사례를 보자. 교보문고는 올해 전자책 렌털 매출을 약 22억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교보문고가 지난해 전자책을 팔아 거둔 매출이 약 140억 원임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렌털 규모는 판매 대비 6분의 1 정도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자책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전자책 판매 시장도 채 정착되지 않았는데, 대여 서비스까지 나오면 시장이 받아들이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어요.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한 달에 다섯 권을 빌려볼 정도면 상당한 독서 애호가예요. 신간서적이나 베스트셀러가 렌털로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회원들이 그걸 인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잡음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보문고는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며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대여가능한 책 수는 2만 5,000종으로 2배 늘었다. 동참하는 출판사도 초기 230개에서 450곳으로 증가했다. 법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과 학교, 유치원 등과 접촉하고 있다.
다양한 판촉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샘 회원에겐 66만원 상당의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e컬렉션 150권을 10만 원에 제공하고 있다. 또 휴가철 맞춤 판촉 이벤트도 예정돼 있다.
교보문고는 장기적인 포석을 두고 있다. 전자책 시장이 성장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긴 하지만, 결국 종이책 시장을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교보문고는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다. 현재는 산업초기라 반발도 많고, 시장규모도 작지만, 결국 모두에게 큰 이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샘 서비스의 경우 예정대로 10만 명 회원만 확보하면, 연간 매출도 230억 원이 넘는다. 지난해 전자책 판매 매출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게다가 매달 꾸준하게 들어오는 안정적인 수익원이다.
출시 당시 허정도 교보문고 대표이사는 다음과 같이 서비스 취지를 밝혔다. “샘 서비스는 전자책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사회적으로 독서인구를 늘리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독자는 합리적 가격으로 책을 읽고, 출판사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익을 발견하고, 서점은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독자, 출판사, 서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샘 서비스를 통해 위기에 빠진 종이책 시장을 견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해외에서는 세계적인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2011년 11월 전자책 대여서비스를 도입했다. 연간 79 달러(약 9만 원)를 내고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에 가입하면 전용 단말기 킨들을 통해 매달 전자책 한 권을 빌릴 수 있다. 아마존은 프라임 서비스를 통해 전용단말기 킨들의 판매량을 늘리고자 했다. 글로벌 투자리서치기업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아마존 프라임 누적 가입자 수는 약 700만~1,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프라임 고객이 아마존에 안겨주는 이익은 일반 아마존 이용자보다 1인당 평균 78달러(약 8만 8,000원)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존은 프라임 고객에게 부가적 혜택을 많이 얹어준다. 유료 영상물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아마존에서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 등을 구매할 때에도 매번 빠른 배송비 25달러(2만8,000원)를 면제해 준다.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혹할 만한 서비스다. 실제 아마존은 프라임 이용자 1인당 연간 11달러를 손해 보면서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대신 경쟁사 고객을 뺏어오고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를 본다.
렌털 고객은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소유보다 본래 가치를 중시한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선 전자책만큼 렌털에 어울리는 업종도 없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는 책장에 쌓여가는 책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지만, 전자책 독자라면 머릿속에 쌓이는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출판사 이익과 상충한다. 전자책 렌털 서비스가 성공하려면, 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독자는 합리적 가격으로 책을 읽고, 출판사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익을 발견하고, 서점은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독자, 출판사, 서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