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오태광 원장은 국가 바이오분야 책임연구기관으로서 향후 연구원을 이끌어나갈 모토를 이렇게 밝혔다. 오 원장은 이어 "최근 BT 분야는 타 학문과 융복합을 통해 전문화·대형화되고 있는 추세"라면서 "이러한 기술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대형 인프라와 어젠더 과제, 그리고 BT 중심의 융복합 원천기술인 바이오화학·바이오 헬스케어 등을 집중 육성해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Q.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생명공학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정부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을 포함해 굵직한 이슈들이 제기되는 등 어려운 시기임에 틀림없지만 연구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거둔 우수한 성과들은 이런 노력의 방증이라 하겠습니다. SCI 논문이 전년대비 12% 이상 증가한 441편 발표됐으며 영향력 지수(IF) 10이상의 우수논문도 17편으로 질적·양적 성장을 모두 이뤘습니다. 기술료 수입액 역시 12억원에서 19억원으로 61% 증가했습니다.
올해는 출연연들에게 많은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외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연구원 개인의 역량을 결집,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발판 마련에 주력할 것입니다.
Q. 임기 동안 생명연을 이끌 모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생명연은 1985년 설립 이래 열악한 국가 생명공학 분야를 정립했고, 오늘날 바이오시대를 여는 주역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국가가 필요로 하는 대형 원천연구 성과 도출이 다소 부족하고, 바이오 중심체의 역할을 담당할 국가사회 및 시장수요에 부합하는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래기술의 메가트렌드라 할 수 있는 융합·개방형 연구에 대한 능동적 대응력도 취약점으로 파악됩니다.
이에 연구원 창립 30주년이 되는 오는 2015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경영목표로 '비전 1530'을 제시하려 합니다. 생명연을 세계 1등 연구기관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전문연구소 체제를 도입하고 글로벌 플랫폼, 국가 인프라와 어젠더, 차세대 바이오 융복합 등 3대 분야를 중점 추진할 예정입니다. 또한 그 일환으로 연구·행정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발전전략을 확보하고, 스스로 변화와 개혁의 주역이 되는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유도할 생각입니다.
Q. 평생을 과학기술계에 몸 담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최근 일부 출연연에서 연구비의 부적절한 사용과 무분별한 기술이전 문제가 있었습니다. 출연연의 연구자들은 국민과 국가의 기대에 걸맞은 강한 책임감에 더해 당연히 사회적, 윤리적 책임의식도 갖춰야 합니다. 개발된 기술의 내용과 범위에 대해 냉철한 가치 평가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과학기술은 현재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한 수많은 효율적 신기술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협력의 중요성입니다. 서로 협력해서 연구하면 여러 분야의 기술혁신을 동시에 모색할 수 있는데다 연구성과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이는 다각적이고 폭넓은 시각을 바탕으로 실패의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길이기도 합니다.
70년대에는 단순히 '우수한 유전자', 즉 특출한 연구자에 의해 인류가 발전한다고 봤지만 지금은 '협력하는 유전자'가 발전의 동력이 됐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자라는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는 통섭, 융합과 복합 연구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Q. 연구원의 체질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최근 BT 기술은 타 학문분야와의 융·복합에 기반해 전문화,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트렌드에 적극 부응하고, 출연연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을 5개의 전문연구소 체제로 바꾸는 근본적 체질 개선을 하려합니다.
각 전문연구소들은 당연히 국내외 글로벌 우수기관과의 공동연구로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전문연구소마다 별도의 행정지원 및 기술경영체제도 도입됩니다. 연구소장이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갖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창의적 대형 성과의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물론 내·외부 전문가의 엄정한 평가를 통해 성과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지원이 중단되는 유연한 조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연구역량 강화를 목표로 내부의 우수 인재를 적극 양성하면서 외부 인재의 유치도 적극 추진할 방침입니다. 그 일환으로 책임자급 연구원에게 기술경영 교육과정 수료를 의무화해 효율적 연구풍토를 조성할 것입니다.
Q. 일선 연구자를 중심으로 연구성과 평가방식의 개선 요구가 적지 않습니다.
적절한 평가제도 확립의 중요성은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 시스템 하에서 이뤄지는 단기적 결과 중심의 평가는 다수의 소형과제들이 연구의 주축을 이루게 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행정업무가 많아져 연구에 몰입하기도 어렵습니다.
아직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연구성과 평가시스템의 개선방안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국가가 요구하는 대형 원천 연구프로젝트와 국가 인프라 구축 등을 유도하기 위해 개인 연구자 중심의 현 평가제도는 반드시 개선할 계획입니다.
Q. 바이오 분야에서의 역할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는데.
생명연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중시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미래 대형 융복합 연구를 수행하고, 국가차원의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며, 산·학·연·관을 지원할 수 있는 바이오 연구의 구심체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소형 과제로 바이오분야의 전 부분을 연구하다보니 대학이나 기업의 연구와 많은 부분 중첩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 생명연 고유의 대형 원천연구 분야를 만들겠습니다. 또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기초연구 연계형 응용연구를 수행토록 할 것입니다.
이는 국가 바이오 경제의 초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국가연구기관으로서 생명연의 대내외적 존재감을 확립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 믿습니다.
Q. 마지막으로 과학계 원로로서 젊은 과학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많은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기피현상이 여전합니다. 불과 7~8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의 하나가 과학자였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과학강연을 들으며 자녀를 과학자로 키우는 길을 묻는 부모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교사, 연예인, 의사 등에 편중돼 있는 실정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듯이 기억해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과학은 이미 상당히 발전을 했고 학제간 융합에 의해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면서 수많은 새로운 직업 계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미래에는 과학과 문화, 인문, 경제 등이 상호 융합된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직업에 대한 기준도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 자명합니다.
저는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듯 젊은 세대들이 과학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때까지 저를 포함한 모든 과학자들은 청소년들이 과학에 대해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사회 곳곳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과학자로 자라나 창의적이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는 그날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입니다.
오태광 원장 프로필
학력
1978년 서울대 농과대학 식품공학 학사
1982년 서울대 대학원 미생물효소학 석사
1986년 서울대 대학원 미생물효소학 박사
경력
198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2002~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미생물 유전체 활용기술 개발 사업단장,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2012~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SCI 'Science Citation Index'의 약자. 과학논문 색인 인용지수를 뜻한다.
영향력 지수(IF, Impact Factor) 저널에 게재된 논문들이 인용된 회수를 전체 논문의 수로 나눈 것이다. 해당 저널의 영향력을 나타낸다고 해서 이렇게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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