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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음질 뮤직 플레이어로 아이리버의 부활을 노려라"

아스텔앤컨으로 승부수 던진 박일환 사장의 생존전략

지난 10년 동안 아이리버는 온탕과 냉탕을 경험했다. 과거 MP3 플레이어 명가로 불리던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2011년 9월 박일환 사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아이리버는 다시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13분기 만에 처음으로 흑자전환을 했다. 새로운 뮤직 플레이어를 출시하고 태블릿PC와 전자책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아이리버가 과거 쓰라린 경영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사진 이종철 국장 bellee@hk.co.kr


박일환(54) 아이리버 사장은 어깨가 무거웠다. 아이리버 회생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보였다. 아이리버 사장 직에 취임하기 전부터 그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박일환 사장은 2011년 8월 아이리버 홈미팅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9월 1일 신임 사장 취임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지체할 수가 없었다. 홈미팅은 다음 분기를 대비해 임직원들과 경영 전반을 함께 논의하는 공개회의였다. 하지만 단순히 4분기 경영전략만을 논의하자고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2012년 아이리버의 생존전략을 결정해야 할 중요한 회의였다. 패자부활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박 사장의 어깨에는 아이리버 임직원 130여 명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지난 12월 13일 서울 서초구 아이리버 하우스에서 만난 박일환 사장은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1개월 동안 줄기차게 임직원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리버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아이리버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지 서로 묻고 답했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아이리버의 주력 제품인 MP3 플레이어의 시장규모가 매년 수십 %씩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임직원들에게도 확실하게 전달했어요. 아이리버만의 독자적인 생존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아이리버는 존재 자체만으로 한국 벤처의 희망이었다. 삼성전자, 애플, 소니 같은 거인들의 틈바구니에서 MP3 플레이어 사업에 주력하며 끝까지 살아남은 몇 안되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2000년 중반에는 MP3 플레이어 세계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팟 시리즈를 상대할 만큼 강소기업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열풍은 MP3 플레이어 업계에겐 쓰나미 같은 재앙이었다. MP3 기능까지 흡수한 스마트폰이 삽시간에 MP3 플레이어를 대체하는 아이템으로 급부상하면서 MP3 명가 아이리버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일환 사장은 말한다. "사실 MP3 플레이어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 갑론을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맥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몇몇 MP3 모델은 생산을 계속 유지하고자 합니다. 아이리버는 뮤직 플레이어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다양한 뮤직 플레이어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리버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공을 들여 신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기존 MP3 플레이어와 확연하게 차별화된 아이리버만의 뮤직 플레이어로 승부를 걸 때입니다."


아이리버의 정체성

"가수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이나요? 기타리스트가 어디쯤에서 연주하는지 말해보세요." 인터뷰 도중 사장실 바로 옆에 붙은 음악 감상실로 자리를 옮긴 박일환 사장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감상실에는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가 흐르고 있었다. 대형 스피커를 진동시키는 뮤직 플레이어는 다름 아닌 아이리버의 신제품 아스텔앤컨(astell&kern)이었다. 아스텔앤컨은 초고음질 음원을 들을 수 있는 하이-파이 오디오 플레이어다.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휴대성이 좋은 제품이다. 평소엔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스피커와 연결해 감상을 하면 소리가 형체를 갖는다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박일환 사장은 말한다. "무대가 보일 정도로 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돼야 비로소 하이-파이 오디오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음원을 느끼려면 기존에는 장비 투자비용으로 많게는 수천만 원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시스템의 크기도 무척 컸지요. 하지만 판매가격 69만8,000원인 아스텔앤컨이 이런 시스템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스텔앤컨이 아날로그 오디오 장비를 단순히 디지털 기기로 전환시킨 것은 아니다. 박 사장은 이 제품을 통해 국내 뮤직 플레이어 음원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구상도 하고 있다. "아이리버는 아스텔앤컨에 최적화된 음원을 직접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일이죠. 초고음질인 MQS(마스터 퀄리티 사운드) 음원이 지금 아이리버 뮤직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어요."

MQS는 스튜디오 현장에서 녹음한 원본 그대로의 음원을 말한다. CD와 MP3는 이 음원을 줄이고 또 줄여 디지털화시킨 축소판이다. MQS의 용량이 보통 150Mb인 반면, MP3는 10Mb에 불과하다. 아스텔앤컨이 기존 뮤직 플레이어보다 음질의 해상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일환 사장은 "음원 시장이 LP판에서 테이프로, 그리고 CD에서 MP3로 진화했다"며 "이제 MP3에서 MQS로 시장의 판도가 빠르게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리버는 국내 대부분의 음반 제작사와 MQS 음원 서비스 계약을 발 빠르게 체결했다. 해외 시장 MQS 서비스 전문기업과도 업무제휴를 진행 중이다. 아이리버가 아스텔앤컨과 MQS를 통해 콘텐츠와 서비스와 디바이스를 모조리 결합하는 새로운 뮤직 플레이어 시장을 열고 있는 셈이다. 아스텔앤컨은 아이리버의 강점과 정체성을 모두 드러낸 작품이다. 이상원 아이리버 사업부장은 말한다. "지난 2006년 무렵 아이리버 창업주인 양덕준 사장이 궁극의 포터블 뮤직 플레이어를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잠정 보류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리버는 디지털기기를 만드는 회사지만 동시에 오디오 전문회사이기도 했어요. 음악과 소리를 잘 아는 회사란 얘기죠. 결국 아이리버가 오랫동안 품었던 뮤직 플레이어의 열망을 박일환 대표 체제에 와서 비로소 이뤄낸 셈입니다."

아스텔앤컨은 오디오 기기를 만드는 회사가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을 만들던 회사가 뛰어들기에는 기술 장벽이 높은 편이다. 삼성과 애플도 시도하지 못한 영역이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리버 개발팀은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했다. 기술진들은 아스텔앤컨에 들어갈 회로를 구성하고 그 소리를 듣는 일을 반복했다. 원하는 소리가 안 나오면 수백 번 고쳐서 다시 들어야 했다. 박일환 사장은 "기술자가 음악과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으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제품"이라며 "삼성과 애플이 무한대의 기술력과 자본을 투입해도 몇 년간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인의 정신과 기술력을 보유해도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 결코 탄생할 수 없는 제품이란 얘기다.

사실 아스텔앤컨의 개발과 출시는 아이리버 임직원들의 사활을 건 도전이었다. 아이리버와 같은 규모의 기업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제품을 선도적으로 출시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스텔앤컨의 개발 프로젝트가 과거 아이리버의 생존 방식과 달랐다는 점이다. 아이리버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적은 돈과 인력으로 삼성과 애플을 상대해야 했다. MP3 플레이어의 플랫폼을 매번 새롭게 바꾸면서 치고 나가기보다 특정 기능을 부각시키거나 디자인을 강화해 거대 기업들과 경쟁해야 했다. 반면 아스텔앤컨의 전략은 이와 달리 무척 혁신적이다. 새로운 시장을 간파하고 시장에 적합한 플랫폼을 담은 디바이스를 출시했다. 관련 콘텐츠도 자체 서비스했다. 아이리버가 다른 기업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자신만의 방식인 퍼스트 무버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일환 사장은 강조한다. "보통 중소기업들은 패스트 팔로 전략을 바탕으로 생존전략을 짭니다. 그런데 아이리버에는 과거 뼈아픈 교훈이 있었습니다. 바로 애플의 공습이었죠. 아이리버가 애플의 아이팟 시리즈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는 애플이 자체 음원 서비스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플만의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동시에 세계 시장을 뒤흔든 거죠." 아이리버는 과거의 패배를 곱씹으며 지난 6~7년 동안 심기일전했다. 아스텔앤컨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이유다. 그렇다면 아스텔앤컨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어떨까. 이상원 사업부장은 말한다. "저희도 놀랄 만큼 상당히 뜨겁습니다. 출시한 지 2달이 넘어가고 있는데 예상 판매량보다 3배 이상 더 팔리고 있습니다. 특히 소수 마니아 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구매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죠. 대중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박일환 사장도 아스텔앤컨의 대중화에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아날로그 TV에서 디지털 TV로 전환되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순식간에 보급이 이뤄졌습니다. 비디오에서 그랬다면 음악에서 그러지 말란 이유가 없겠죠. 아이리버의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HD급 음악을 들어라!'입니다."


아이리버의 새 얼굴들

지난 2010년 아이리버는 탈MP3 플레이어를 선언했다. 당시 박일환 사장의 전임자였던 이재우 전 사장은 말했다. "앞으로 아이리버의 사업은 MP3 플레이어에서 전자책 중심으로 옮겨가게 될 것입니다." 박일환 사장 체제에 들어서면서 아이리버의 체질은 더 혁신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박 사장은 말한다. "아이리버의 장점은 IT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아는 임베디드 시스템(Embedded System)을 보유한 몇 안되는 중소기업이라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아이리버는 전자책 사업은 물론 태블릿PC와 스마트폰 사업 등에서도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아이리버는 전자책 사업을 기점으로 스마트 기기 사업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박일환 사장은 전자책 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전자책 사업은 전자교과서 시장이 열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입니다. 아이리버가 독식할 수 있는 시장은 아니지만 기술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시장 우위에 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국내 전자책 시장 환경은 그리 녹록한 편이 아니다. 과거 전자책 단말기 시장에서 아이리버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9년 무렵 아이리버는 국내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최초로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출시했다. 아이리버는 삼성전자 때문이라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삼성전자 때문에 시장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가 단말기 사업 진출 1년 만에 철수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당초 기대와 다른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 것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핵심 개발 인력과 자금을 스마트폰 개발에 쏟아붓기 시작하면서 전자책 사업을 잠정 보류했다. 결국 스마트폰 열풍이 MP3에 이어 아이리버 전자책 단말기 사업에 도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아이리버는 2010년부터 해외 시장을 적극 두드리며 반전의 기회를 탐색했다. 아이리버는 구글북스와의 협업을 통해 전자책 스토리HD를 2011년 무렵 북미 시장에 출시했다. 당시 스토리HD는 미국 IT전문지 PC매거진이 "세계에 있는 6인치 e북 중 최고의 대안"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아마존의 전용 전차책인 킨들의 대항마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HD스토리는 미국 시장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상원 사업부장은 설명한다. "북미 시장에서 더 이상 활로를 찾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생산원가 이하로 후려치는 아마존 킨들과는 싸움 자체가 안되니까요. 아마존은 자체 콘텐츠가 풍부하기 때문에 단말기에서 마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죠. 하지만 아이리버는 아마존과 상대하면서 다른 교훈을 배웠습니다. 콘텐츠가 없는 껍데기 싸움은 의미가 없다는 거죠."

아이리버는 다시 국내 시장에 집중하며 새로운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12년 1월 아이리버는 교보문고와 콘텐츠 부문을 협업하면서 전자책 스토리 K를 출시했다. 가격도 9만9,000원으로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시장에선 아이리버와 교보문고의 합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판매량도 기대 이상이었다. 박일환 사장은 말한다. "교보문고와는 2009년부터 제휴를 맺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양사가 전자책 시장에서 호흡을 맞춰온 셈이죠. 앞으로도 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겁니다." 시장과 투자자들은 박일환 사장과 아이리버에 대해 더 큰 혁신을 기대하고 있다. 박일환 사장의 남다른 경영능력 때문이다. 그는 TG삼보컴퓨터에 입사해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CEO까지 지낸 인물이다. 2000년 중반 법정관리인 신분으로 위기에 빠졌던 TG삼보컴퓨터를 기사회생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PC분야 전문경영인인 박일환 사장이 아이리버에 어떤 변화의 씨앗을 심을지 기대 되는 이유다. 박 사장은 말한다. "앞으로 아이리버는 PC사업에 주력할 겁니다. 데스크톱 PC 제조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태블릿PC 개발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미 저희는 2011년 7월 LG유플러스와 합작해 아이리버탭을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내놓을 태블릿PC는 아이리버탭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할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히는 거죠."

과거 박일환 사장은 태블릿PC 개발에 대해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그는 2000년 중반 TG삼보컴퓨터에서 태블릿PC와 비슷한 개념인 모바일 인터넷 디바이스(MID)를 만든 경험도 가지고 있다. 박 사장은 말한다. "출시는 못하고 개발만 한 모델이었죠. 솔직히 태블릿PC 개발은 아이리버에서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PC회사는 주로 하드웨어만 가지고 있어요. 대부분 소프트웨어는 MS 같은 글로벌 기업에 의존하고 있죠. 하지만 아이리버는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보기 드문 회사입니다."

기술력은 물론 디자인 능력까지 두루 갖춘 아이리버와 PC 전문가인 박일환 사장이 꿈꾸는 태블릿PC는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박 사장은 아이리버의 차기 태블릿PC에 대해 다음과 같이 힌트를 줬다. "아이리버는 애플처럼 콘텐츠와 서비스 그리고 하드웨어를 다 결합한 제품을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이나 아수스 태블릿PC처럼 태블릿 단말기만 생산하지도 않을 생각이죠. 아이리버가 공략하려는 모델은 애플과 삼성전자 딱 중간 지점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강력한 콘텐츠를 지닌 회사들과 연대해 차별화된 태블릿PC를 출시할 겁니다." 아이리버의 이러한 생존방식은 아이리버다운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아이리버가 기존 태블릿PC 시장 경쟁에 뛰어든다는 건 너무 늦은 일이다. 아스텔앤컨처럼 아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않는다면 아이리버는 어느순간 삼성전자의 갤럭시탭과 경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박 사장은 말한다. "이제 아이리버는 경기장을 새로 찾는 일에서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이 열린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이리버의 부활

아이리버는 2012년 1분기에 매출 378억 원, 영업이익 7억 원을 기록했다. 13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한 값진 성과였다. 사실 아이리버의 흑자전환 성공보다 더 극적인 변화는 매출 비중에 있다. 2012년 6월 기준 아이리버의 B2B 매출비중은 49.4%에 달한다. 반면 MP3와 MP4 플레이어의 비중은 13%로 확 줄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B2B 매출은 거의 없었고, MP3 플레이어의 매출은 아이리버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아이리버의 수익구조가 안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박일환 사장은 말한다. "아이리버는 10년 가까이 B2C 일변도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시장 패러다임이 흔들리니까 주력했던 모든 B2C가 무너진 거죠. 저는 취임하기 전부터 B2C와 B2B의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사업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리버 B2B를 이끄는 핵심 캐시카우는 KT와 협업한 키봇(태블릿PC가 결합된 교육용 로봇)과 교보문고 전자책 단말기다. 대부분 아이리버가 수년간 공을 들여 관계를 맺어온 파트너 기업들이다. 박일환 사장은 "급변하는 IT업계에서 아이리버처럼 작은 규모의 플레이어들은 혼자 할 수 있는 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파악하고 그 다음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리버의 비즈니스 연대는 아이리버 기사회생의 촉진제가 될 전망이다. 최근 박일환 사장이 눈독을 들이는 분야는 이동통신재판매(MVNO) 시장이다. 과거 아이리버는 2011년 9월 LG유플러스와 공동으로 스마트폰 바닐라를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있다. 아이리버가 강점을 보이는 학생 시장을 공략했지만 반응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애당초 일반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리버가 잘할 수 있는 경기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닐라폰의 실패는 아이리버가 새롭게 스마트폰 사업을 수립하는 데 값진 교훈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일환 사장은 말한다. "아이리버는 MVNO 사업자와 협업해 이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겁니다. 이미 몇몇 사업자들과 긴밀한 대화를 진행 중입니다. 현재 MVNO 시장에는 예전 피처폰 모델이나 중국에서 만든 저가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들도 경쟁력 있는 단말기를 공급받길 원합니다. 거기에 아이리버가 진입할 시장이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리버는 그동안 삼성전자, 애플과 같은 공룡 기업들과 시장에서 정면 싸움을 벌여왔다. 한때는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2000년 중반 IT시장이 자본집약적인 구조로 재편되면서 추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아이리버는 새로운 성장방식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자신만의 정체성과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시장에서 한판 승부를 벌일 참이다. 아이리버의 미래는 아이리버를 사랑하는 외부 사람들이 함께 꾸려 나가고 있어 더욱 빛이 난다. 박일환 사장은 말한다. "1년에 걸친 아스텔앤컨 프로젝트 기간 동안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리버를 좋아하는 고객들도 자발적으로 동참하셨죠. 보유하고 있는 오디오 기술의 경험과 지식을 아이리버 개발팀에 나눠주셨습니다." 아스텔앤컨은 박일환 사장과 아이리버의 임직원, 고객들이 함께 만든 역작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아이리버에게 더욱 기대되는 점은 아스텔앤컨처럼 혁신적인 DNA가 배어 있는 제품들이 속속 출시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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