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의 절대강자 CJ E&M이 아시아 최고 드라마 스튜디오로 발돋움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으며 지상파, 종합편성채널과 드라마 전쟁에도 나섰다. 글로벌 드라마 왕국을 건립하기 위한 CJ E&M의 드라마틱한 혁신은 이미 시작됐다. 이권진 기자 goenergy@hk.co.kr
수십 개 케이블 채널 가운데 대박 흥행 지수라고 불리는 시청률 2%대의 드라마는 과연 몇 편 이나 될까? 적어도 CJ E&M이 보유한 케이 블 채널들에선 이러한 시청률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부터 tvN을 통해 방영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로맨 스가 필요해’는 최고 시청률 3%에 육박하는 흥행 대박을 터트렸다. 10 월부터는 ‘꽃미남 라면가게’가 그 바통을 이어 받아 평균 시청률 2,5%대 를 유지하며 안방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같은 시간대 케이블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고수했다는 공통점 을 갖고 있다. 업계에선 케이블 채널의 시청률 2% 달성을 지상파 시청 률 20%와 맞먹는 수준으로 높게 평가한다. 지상파의 애국가 시청률이 2%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십 개의 케이블 채널 가운데 CJ E&M의 드 라마만 골라 챙겨 보는 시청자야말로 진정한 열혈 시청자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12월 5일 CJ E&M 본사에서 만난 최관용 드라마사업본부장은 말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케이블 채널은 지상파에서 편성이 좌절된 드 라마를 틀어주는 종착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지상파에서 소화하기 힘든 선정적인 소재를 다룬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죠. ‘로맨스가 필 요해’와 ‘꽃미남 라면가게’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버렸습니다. CJ E&M 의 드라마 사업에 터닝 포인트를 이뤄낸 상징적인 드라마였죠.” CJ E&M에선 2% 시청률을 뛰어넘는 드라마가 여전히 줄을 잇고 있다. 현 재 OCN에서 방영되고 있는 ‘뱀파이어 검사’와 ‘특수사건전담반 TEN’도 CJ E&M의 간판 드라마 리스트에 포함된다. CJ E&M은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케이블 시장에서 드라마 왕자의 면모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채널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는 잘 만들어진 명품 드라마가 한 몫을 단 단히 한다. 그래서 흔히 드라마를 채널의 ‘킬러 콘텐츠’라고 부른다. 최 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들이 명품 드라마를 선보이기 위해 업계 최고 수준의 개런티를 지불하면서까지 스타급 배우와 작가를 영 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CJ E&M의 케이블 채널을 주도 하는 핵심 콘텐츠가 드라마가 전부란 얘기는 아니다. CJ E&M에는 대 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도 있다. 지난 여름과 가을,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 Mnet이 ‘슈퍼스타K3’를 방영해 전국을 들썩이게 만 들기도 했다. 슈퍼스타K3는 시즌 3회째를 맞는 동안 15%에 가까운 시 청률을 올리며 CJ E&M의 효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청률 15%는 15년 케이블 채널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진 기록이다. 지상파 3개사도 슈퍼스타K와 유사한 포맷의 각종 오디션
“870억 원의 예산 책정에는 양질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투입하는 예산보다 더 많은 매출을 뽑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 담겨 있죠”
프로그램을 흉내 내기에 급급할 정도로 여전히 그 영향력은 현재 진행 형이다. CJ E&M은 드라마 시장에서도 슈퍼스타K 같은 명품 콘텐츠를 생 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관용 본부장은 CJ E&M 의 2012년 드라마 비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011년 14편이 었던 드라마 제작편수를 2012년에 2배 가까이 끌어올려 26편을 편성했 습니다. 제작비 또한 280억 원에서 870억 원으로 대폭 늘렸어요.” 870 억 원은 전년 대비 3배가 넘는 파격적인 예산이다. 이 수치는 지상파의 드라마 제작 예산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수준이다. 드라마 명가로 불리 는 KBS도 2011년 드라마 제작 예산으로 약 600억 원을 썼을 뿐이다. 게 다가 2012년에는 이 예산이 5%가량 감축될 전망이다. CJ E&M의 2012 년 드라마 예산은 이미 상반기에 방영할 드라마 제작에 대거 투입되고 있다. 최 본부장은 말한다. “제가 2010년에 드라마사업본부장으로 올 때만 해도 드라마 쪽에 이렇게까지 드라이브를 걸지는 않았습니다. 사 실 tvN이라는 채널도 당시엔 예능 중심의 채널이었죠. 하지만 이젠 CJ E&M의 대표적인 드라마 채널로 변신했 습니다. 불과 1년 안에 벌어진 일이죠.” 드라마 사업이 도약한 시점은 지난 3 월 CJ E&M이 다시 태어나면서부터다. CJ E&M은 방송 분야의 CJ미디어와 온 미디어, 영화 분야의 CJ엔터테인먼트, 음 악의 엠넷미디어, 게임의 CJ인터넷이 오 미디어홀딩스로 합병되면서 새롭게 닻을 올렸다. 이로써 CJ E&M은 tvN, Mnet, OCN, 채널 CGV, 온스타일, 스토리온, XTM 등 다수의 채널을 거느린 케이블의 명가로 다시 진용을 꾸리게 되었다. 그리 고 대대적인 기업 체질 변화를 겪으면서 추진했던 새로운 전략이 바로 드라마 콘 텐츠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최관용 본부 장은 말한다. “870억 원의 예산 책정에는 양질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치밀한 계 산이 깔려 있습니다. 투입하는 예산보다 더 많은 매출을 뽑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 담겨 있죠.” 드라마는 CJ E&M의 주된 수익원으로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있 다. CJ E&M의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전체 매출은 9,123억 원, 영업이익 은 633억 원이었다. 이 가운데 드라마가 포함된 방송분야가 매출의 절 반을 차지하고 있다. 드라마가 벌어들이는 매출 규모에 대해서 최관용 본부장은 “주로 해당 채널로 벌어들이는 광고 수익이기 때문에 다른 시 간대의 프로그램과 구분해서 드라마의 매출 기여도를 산출할 수는 없 다”며 “그렇지만 드라마가 방송부문에서 비중 있는 캐시카우 역할을 하 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tvN과 OCN 등에서 방영되 는 드라마의 시청자 연령층은 대개 20~30대다. 이들은 유행에 민감하 고, 비교적 빠른 주기의 소비성향을 지녔다. 이런 특성 때문에 광고주 들이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CJ E&M의 채널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tvN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에 PPL 광고를 하고 있는 외국 자동차 업체의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지상파 3사에서 광고를 틀면 어떤 시청 자가 볼지 파악이 잘 안됩니다. 타깃 층이 불분명하단 얘기죠. 반면에 tvN은 특정 연령층의 시청자가 즐겨 보기 때문에 확실히 전략적인 광 고가 가능합니다. 지상파의 약 10~20% 수준인 광고단가를 고려한다면 케이블 드라마는 전략적으로 접근할만한 시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실 CJ E&M의 명품 드라마들은 오 랜 케이블 채널 운영 경험과 과감한 사업 비전이 만난 결과물이다. 국내 케이블 채 널의 15년 역사는 CJ E&M이 주도해 성 장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긴 세월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CJ E&M은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을 지상파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드 라마 제작 환경 면에선 오히려 지상파를 압도할 정도다. CJ E&M 드라마본부에서 PD들은 멀티플레이어처럼 자신의 역량 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 드라마 PD는 드 라마의 시작과 끝을 모두 총괄 관리하는 사람이다. 작품을 기획하고, 작가와 대본 회의를 거치고, 촬영감독을 직접 섭외해 현장을 꾸려나간다. 드라마가 방영되면 마케팅에도 관여하며 콘텐츠의 부가가치 도 끌어 올려야 한다. 그만큼 막중한 자리라는 얘기다. 최관용 본부장은 말한다. “지상파에선 드라마 감독, 촬영감독, 촬영 장비만 외주 제작사에게 지원하는 구조를 고수합니다. 나머지 일거리 는 외주 제작사가 전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작사가 작가를 섭외하고 나머지 현장 스태프도 직접 꾸리는 식이죠. CJ E&M에선 드라마 PD를 연출 PD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건 지상파에서 쓰는 표현이에요. CJ E&M에서 PD는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기획, 제작, 마케팅을 두루 하 고 있습니다. 이게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CJ E&M에는 이러한 멀티플 레이어 PD들이 20여 명이나 모여 있다. 이들이 CJ E&M의 드라마틱한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 멤버들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CJ E&M의 자체 제작 드라마 시스템이 그들이 과거 주로 방영해 왔던 중독성 강한 미국 드라마, 일명 미드와 닮았다는 것이 다. 대표적인 미드 시리즈인 ‘CSI’와 ‘스파르타쿠스’ 등은 OCN과 채널 CGV를 통해 수년째 전파를 타면서 20~30대라는 충실한 시청자 층을 확보했다. 최관용 본부장도 “미드의 제작 시스템과 CJ E&M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드 학습효과 로 지상파와 종편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소재와 창의적인 아이템의 드 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수사물의 저변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뱀파이어 검사’ 같은 드라마다. 매회 뱀파이 어인 남자 주인공이 검사로 나와 복잡한 사건을 하나씩 풀어간다는 줄 거리다. 심지어 CJ E&M은 지상파에서 꺼리는 일본 배우도 과감히 등 장시켰다. ‘소녀K’라는 드라마에선 일본 유명 배우를 출현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상파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더 다채 로운 드라마 장르를 제작할 수 있었다. 최관용 본부장은 덧붙인다. “솔직히 지상파 드라마 PD들은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 있습니다. 소재나 내용 면에서 감시와 규제가 철저하잖 아요. 그래서 단막극장 같은 걸 하고 싶어하죠. 짧은 호흡의 미니시리 즈라면 자신의 색깔을 그나마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드라마를 연출하는 PD도 창작자라는 얘기다. 그래서 CJ E&M의 창의적인 제작 환경은 만드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도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 명작 드 라마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요즘 CJ E&M의 드라마 사업본부는 종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어 쩌면 종편의 진짜 경쟁자는 지상파 3사가 아니라 바로 CJ E&M일지 도 모른다. 종편에서 내놓는 모든 드라마의 시청률이 1%에 채 못 미치 고 있기 때문이다. 최관용 본부장은 말한다. “드라마 편성 면에선 종편 가운데 JTBC가 조금 앞서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른 종편과는 다르게 JTBC만이 드라마 제작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계열 사인 드라마하우스라는 드라마 제작사를 통해 SBS와 KBS에 각각 ‘바 람의 화원’과 ‘공부의 신’을 방영해 히트를 쳤죠.” 최관용 본부장은 CJ E&M에 오기 전에 바로 이 드라마하우스의 대표로 있었다. 잠시나마
“앞으로 드라마의 해외 진출 성패는 한류 스타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해외 현지 사정에 맞은 맞춤형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종편 드라마를 준비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종편에서 준비하고 있는 콘 텐츠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인물이란 얘기다. 그는 덧 붙인다. “CJ E&M은 지난 15년 동안 방송 콘텐츠에 1조5,000억 원을 투 입했어요. 그런 노력 끝에 최근에서야 드라마 제작에 대한 안정적인 시 스템을 갖출 수 있었죠. 지상파의 강점은 바로 오랜 경험을 통해 구축한 방송 인프라입니다. 종편에게 필요한 건 시간입니다. 콘텐츠만으로 색 깔을 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2012년 국내 드라마 시장은 CJ E&M의 제작편수 확대와 종편 개국 으로 약 3배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CJ E&M은 지상파와 종편을 상대 로 한정된 광고 시장에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한다. CJ E&M의 드라마 사업부 앞에는 새로운 시장 발굴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떨어져 있다. “국내 시장만 가지곤 드라마 사업이 적자가 날 게 뻔합니다. 돌파구는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무대에 진출하는 것입니다.” 최관용 본부장의 말이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에서도 좁은 사각의 링처럼 치열한 공방이 벌어 지고 있다. 지상파에서 검증받은 드라마들이 한류 바람을 타고 일본시 장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배용준 주연의 ‘겨울연가’ 빅히트 이후 최근 주목할만한 드라마는 바로 장근석과 소녀시대 윤아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드라마 ‘사랑비’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드라마 가운데 최고가인 4억 4,000 만 원을 받고 일본 포니캐니언사에 선판 매됐다. CJ E&M도 이러한 공세에 밀리 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꽃미남 라면가게’는 케이블 드라마 역대 최고가 로 일본에 판매됐다. ‘로맨스가 필요해’는 케이블 드라마 최초로 오는 1월 일본 지상 파 TBS에서 방영된다. 지상파가 어퍼컷 을 날리면 CJ E&M도 스트레이트 펀치로 맞받아치고 있다는 얘기다. CJ E&M은 이미 Mnet USA, Mnet Japan, tvN 아시 아 등 한류 엔터테인먼트 채널을 운영하 면서 글로벌 감각도 키운 상태다. 이제 드 라마의 글로벌화만 남았다. CJ E&M은 아시아 무대를 더 큰 드라 마 시장으로 동반 성장시키려 한다. 최관 용 본부장은 말한다. “시장에 진출만 하는 게 아니라 교류를 해야 합니 다. 잘 팔릴 때 비싸게 불러서 팔고 돌아서는 게 전부는 아니죠. 일본이 나 중국도 드라마 시장 환경이 어렵긴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 의 진정한 산업화라는 것은 결국 건강한 자본이 들어가 같이 윈윈하고, 수익을 배분하고, 그 자본이 시장에 다시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 는 것이죠.” 최관용 본부장은 12월 일본 출장길에 오른다. CJ E&M이 자체 제작 한 드라마 6개의 기획서를 일본 실정에 맞게 만들어 시장을 노크할 생 각이다. 그는 말한다. “드라마 시장은 아직까지 B to B 산업입니다. 드 라마가 잘 돼 주제가 OST가 히트를 치면 일반 다운로드 시장에서 수익 이 좀 생기는 정도죠. 그 매출도 극히 미미합니다. 결국 일본 방송사나 콘텐츠 유통업체들과 수익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는 예기죠. 제 가 준비한 기획서에는 그들이 원하는 드라마 내용, 배우, 마케팅에 대 해 일본 관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 드라 마의 해외 진출 성패는 한류 스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해외 현지 사 정에 맞춘 맞춤형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관용 본부장은 자신한다. “현재 아시아를 아우르는 한국의 콘텐 츠는 K팝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한국 드라마가 그 중심에 서게 될 겁니 다. CJ E&M은 아시아 NO.1 드라마 스튜디오를 꿈꾸고 있습니다.” CJ E&M의 글로벌 드라마 왕국 건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