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롯데 vs 범삼성가 유통 패권 싸움

유통전쟁 2nd ROUND


지난 1월 19일 롯데면세점은 호텔신라가 인천공항공사와 루이비통과 면세점 유치 계약을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루이비통 면세점을 인천공항에 유치하려는 롯데면세점과 호텔신라의 치열한 경쟁이 호텔신라의 승리로 일단락된 직후였다. 수년 동안의 경쟁이 결국 소송전으로까지 비화됐다.

롯데면세점 측은 "루이 비통 신규 매장의 일부만 기존 신라면세점의 공간이고 나머지는 공항의 여객 대합실 공간" 이라며 "이걸 승인해주면 공항공사가 신규 면세점 사업권을 부여해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고 주장했다. 또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루이비통에 대해서만 10년의 계약기간을 보장해 주는 것도 형평에 어긋나는 특혜"라고 말했다.

롯데면세점과 호텔신라의 공방전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애경그룹의 AK면세점 인수전에서도 한차례 맞붙 었고 그때도 결국 소송전까지 갔다. 그땐 패배한 호텔신라가 롯데면세점에 소송을 걸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 이어 다시 김포공항 면세점에서도 맞붙을 태세다. 유통 산업은 장치 산업인 탓에 선점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명동 상권에서 롯데백화점이 신세계 백화점을 늘 매출 면에서 앞서는 건 목 좋은 지하철 역세권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형 할인마트에선 신세계 이마트가 롯데마트를 앞질렀다. 명품 아울렛 시장에선 여주 일대를 선점하면서 역시 신세계가 앞서갔다. 유통은 한편으론 속 도전이란 얘기다. 면세점 사업이라고 다를 게 없다.

오랫동안 재계의 라이벌은 삼성과 현대였다. 분야에 따라선 현대와 대우였다. 또 삼성과 LG였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내수 시장의 틀에서 벗어나면서 삼성과 현대차와 LG는 경쟁하기보단 상생하는 관계로 변화했다. 좁은 내수 시장에선 치고받을지 몰라도 해외 시장에선 서로 기술협력을 하면서 상호 이익을 추구했다.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은 라이벌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재용 사장과 (41) 정의선 부회장은 동지일 수 있단 얘기다.

대신 새로운 경쟁 관계가 생겨났다. 기존 대기업들의 내수 시장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내수 기업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전통의 내수 기업 롯데와 신흥 내수 기업 신세계는 강력한 맞수다. 여기에 호텔신라와 제일모직이 가담하고 있다. 유통 공룡 롯데를 범삼성가가 포위하고 있는 모양새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이 새로운 재계 라이벌 구도를 이루게 된 이유다. 신영자(69) 롯데쇼핑 사장과 이부진 (41) 호텔신라 사장이 또 다른 라이벌 축을 이루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롯데와 제일모직도 경쟁 관계다. 당장 SPA패션에서도 롯데는 '유니클로' 와 '자라'를 들여왔고 제일모직은 '망고' 를 갖고 왔다. 의류 브랜드 수입에서도 롯데와 제일모직의 경쟁은 치열하다. 신영자 사장과 이서현(38) 부사장이 맞붙은 모양새다.

호텔업에서도 호텔신라와 조선호텔이 롯데호텔과 경쟁하는 구도다. 조선호텔 정유경(39) 부사장 역시 롯데와의 경쟁 관계에 가담하고 있단 뜻이다. 여기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롯데쇼핑 장성윤(40) 상무도 명품과 제과 분야에서 정유경 부사장과 경쟁하는 모습이다. 장성윤 상무는 얼마 전 '블리스' 라는 식품 업체를 설립했다. 2010년엔 화장품 도소매업체도 창립했다.

어쩌면 이제 재계의 진짜 라이벌은 롯데가와 삼성가인지도 모른다. 양쪽의 관계는 국내 유통 시장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 정유경 부사장과 장선 윤 상무의 경쟁 관계는 국내에 에비뉴엘과 신세계 분더샵이라는 최고급 명품 백화점이 생겨나는 촉매제가 됐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은 이미 패션 시장에선 트렌드세터로 분류된다. 두 사람이 입고 나오는 옷은 그대로 상류 소비층의 유행이 된다.

이부진 사장은 흑백의상만 즐겨 입는 걸로도 유명하다. 대부분 아직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은 최고급 명품 의류들이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경쟁이 이른바 남성 시니어 시장까지 여파를 미치듯 롯데가와 삼성가 딸들의 경쟁도 크고 작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 양극화가 뚜렷해지면서 유통 왕자들의 입김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추세다. '88만 원 세대' 라는 책을 쓴 우석훈 박사는 말한다.

"거대 기업들이 자리를 비운 내수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기업들이 모두 기존 대기업의 방계 가문이란 건 살펴볼 문제입니다.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하기보단 기존 경쟁자들이 경쟁 구도만 바꾼 모양새로 새로 출현하고 있습니다." 롯데가와 삼성가의 경쟁은 소비 생활 시장 전반에 걸쳐서 이어지고 있다.

신동빈middot;정용진의 사람들



신동빈 회장은 2월 10일 인사를 통해 자기 사람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롯데그룹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이인원 본부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게 대표적이다.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그룹 안에서 처음 전문 경영인 출신 부회장이 됐다. 정책본부 이재혁 운영실장과 채정병 지원실장과 황각규 국제실장도 모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신동빈의 사람들이 대거 일보 전진한 셈이다. 사실 신동빈의 사람들이 롯데그룹의 전면에 등장한 건 2006 년 정기 인사 때였다. 당시 롯데그룹은 무려 111명이나 되는 역대 최대 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의 양만 남달랐던 게 아니다. 인사의 질도 특별했다. 모든 계열사 사장을 교체하는 파격 인사를 시행했다. 그때 이인원, 이재혁, 황 각규, 채정병 같은 신동빈의 사람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롯데가 인수합병 시장에서 큰손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신동빈 회장한테 이인원 부회장이 있다면 정용진 부회장한텐 허인철 부사장이 있다. 허인철 부사장은 신세계그룹의 중추인 경영지원실 실장을 맡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과 핫라인이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다.

허인 철 부사장은 8년 동안 정용진 부회장과 경영지원실에서 손발을 맞췄다. 경영지원실 개발담당 임영록 상무와 재무담당 조경우 상무와 윤명규 기업윤리실천사무 국장과 한채 양 기획관라담당 상무 역시 신세계의 핵심 인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허인철 부사장은 삼성물산 출신이다. 신세계 계열사 사장들 가운데에도 삼성 출신들이 상당수다. 신세계 백화점 부문은 박건현 대표가 맡고 있다. 이마트 부문은 최병렬 대표가 책임진다. 모두 정용진 부회장 체제가 확립되면서 전면에 부상한 인물들이다.

신동빈 회장이나 정용진 부회장 모두 그룹 승계를 끝냈고 손발이 맞는 자기 사람들로 조각까지도 마무리했다. 삼성그룹 이재용 사장이나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 이 아직 자기 사람이나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통 산업의 특성대로 필요할 때 속도를 낸 결과다. 무엇보다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내수 침체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오너 리더십은 필수적이다.

"경제학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말했습니다. 유통은 자본주의의 종말이라고요." '88만 원 세대' 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말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생산하지 않고 가치만 덧붙이는 유통이 산업을 지배할 때 자본주의가 붕괴될 거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20세기 후반부터 21 세기 초반까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미국에선 월마트가 GM이나 BP를 누르고 포춘 500대 기업의 최정상에 올랐다. 금융업이 제조업을 누르고 미국 경제의 근간이 됐다. 그 탓에 미국 경제는 금융 위기를 맞아 비틀거렸다. 반면에 한국 경제가 금융 위기를 견뎌낸 것은 탄탄한 제조업 기반 덕분이었다. 우석훈 박사는 말한다. "어쩌면 한국 경제 역시 유통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단 점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신동빈 회장이나 정용진 부회장 역시 단순한 유통 물류 회사에서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신세계는 PL상품을 개발하고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내수 기 업에서 조금씩 탈피해왔다. 롯데 역시 금융과 제조업 기반을 다져왔다. 그러나 역시 두 회사의 힘은 유통에서 나온다. 미국처럼 한국 역시 갈수록 유통의 힘이 커지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 덧붙인다.

"무엇보다 거대 재벌가가 유통의 끝단까지 장악하면서 내수 시장의 활기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는 신동빈과 정용진이라는 두 유통의 왕자를 얻었지만 그만큼 역동성은 줄어들었고, 단 두 개 회사의 경쟁구도로 단일화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양쪽 모두 계열 분리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신세계는 백화점과 이마트 법인을 분리했다. 롯데그룹 역시 롯데면세점의 계열 분리가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상황이다.

신동빈 회장이 맨 처음 롯데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게 된 건 위기 때문이었다. 2000년 롯데가 고질적인 유통 비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신동빈 회장은 경영윤리위원장을 맡으며 사내 자정에 앞장섰다. 문화적 혁신을 진두지휘하면서 롯데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정용진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신세계윤리경영실은 자칫 왜곡되기 쉬운 유통 거래를 투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지금도 '신세계 페이 Shinsegae Pay'라고 불리는 클린 경영 문화는 신세계 경영의 근간이다.

두 사람 모두 과거의 악습을 제거하고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롯데와 신세계가 미국의 월마트처럼 유통 혁신을 주도해온 건 사실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장의 왕자가 됐다. 이제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에겐 둔화되고 포화상태인 한국 유통 시장 안에서 서로 상생하고 모두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것이 왕도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