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다가 상장폐지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운용사와 증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투자 위험은 이미 충분히 고지된 사안”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제15민사부는 최근 ‘ACE 러시아MSCI(합성)’ ETF 투자자 32명이 한국투자신탁운용과 NH투자증권·메리츠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9억 67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지난해 4월 소송이 접수된 지 약 1년 8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해당 소송의 발단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였다. 전쟁 발발 이후 지수 사업자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러시아 관련 지수 가치를 사실상 ‘0’에 가까운 0.00001로 평가절하하면서 이를 추종하던 ACE 러시아MSCI(합성) ETF의 가치가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이후 상품이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고 자산 거래가 중단되는 과정에서 운용사와 스와프 거래 상대방이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우선 해당 ETF가 구조적으로 매우 높은 위험을 내포한 상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ETF는 투자설명서상 위험 등급 1등급으로 ‘매우 높은 위험’에 해당했으며 러시아 단일 국가 지수를 추종하는 특성상 정치·외교·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상품이었다.
투자자들이 문제 삼은 ‘설명 부족’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ETF의 거래 구조를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ETF는 거래소에 상장돼 불특정 다수가 실시간으로 거래하는 상품인 만큼 운용사가 투자설명서 공시 등을 통해 위험 요인을 고지했다면 개별 투자자에게 별도의 개별 설명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상황과 관련해서도 운용사의 귀책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쟁 발발 직후 운용사가 괴리율 확대와 변동성 급증에 대한 투자 유의 공시를 반복적으로 실시한 점과 기초지수를 산출하던 MSCI가 러시아 주식 가격을 사실상 ‘0’에 가깝게 적용하기로 한 조치는 운용사가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적 사정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합성 ETF 구조와 관련한 투자자들의 핵심 주장도 운용사가 선관주의의무나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증권사들의 괴리율 관리 책임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괴리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니라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합리적인 유동성 공급 노력을 다하면 되는 수단채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전쟁 발발 이후 급격한 수급 쏠림과 지수 산출 중단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추가 설정과 매도 호가 제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 점을 고려할 때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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